그 남자

by 호윤 우인순 시인

자기는 완벽한 사람이라고 떠들며

으스대는

그 남자는 늘 말이 없다

그저 혼자만의 세계에 푹 빠져

서재에서 밤새워 책 읽으면서

아내가 말이라도 걸면 화부터 낸다


그 남자가 떠들 때는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뿐이다

명강의라고 손뼉 치고 인기가 좋았다는 말

누구든지 오면 젊었을 때 신문에 나온 이야기

상탄 자랑뿐이라

아내는 하도 들어

남편이 어떤 말을 할지 안다


아내가 외출하고 들어와

밖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든지

친구들 소식, 새 옷이나, 가족사진을 보에 주고

꽃밭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면

"무슨 놈의 여자가 말이 많아

말 많은 여자는 딱 질색이야"

퉁명스럽게 "커피나 가져와" 한다


그 남자는 늘 아내가 못마땅하다

어쩌다 지갑이라도 떨어트리면

"왜 그리 사람이 똑똑지 못하나"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고 떨어트리기도 하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어요 하면

나는 완벽하고 똑똑한 사람인데

"집에서 놀면서 정신은 어디 두고 다녀" 한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침묵을 지켰

말을 해보았자 트집 잡고 똑똑지 못한 여자라고

듣기 싫은 소리나 할 것이라

아침 드세요, 커피 드세요, 나갔다 올게요

꼭 필요만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부부가 사는 집이 아니라

한 지붕 위에 각각 다른 방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해도 같이 커피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인데

이웃집 살아도 그렇게 침묵 속에

자기 할 일만 하고 못 본 체 하지는 않을 터인데


그 남자는 외출 나갔다 아내가

티브이라도 보면 "무슨 그런 걸 보고 있어"

하며 채널을 돌리며 "책이나 보지 그래" 했다


부부가 사는 공간은 공동체라서

티브이 채널도 사실은 서로 의논하며

돌려야 하는데, 내가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양보할래 물어보든지

언제나 독재자이다 그래서 아내는 티브이를

안 보고 자기의 취미를 택해서

조용히 해드폰을 하고 음악을 듣든지

책을 보다 글을 쓰든지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 남자는

책 보는 것이 싫증이 났는지 눈이 아프다고

책도 안 보고 방 안에 앉아

주변 사람들이 다 수준 이하라고 소리치며

티브이만 보고 킬킬 웃는다

집안은 늘 조용히 참묵이 흐르고

티브이 소리만 시끄럽게 떠들며 가끔씩

그 남자의 웃음소리만 껄껄 들리고,

침묵이 집의 온기와 따스함을

아마도 잡아먹었는지

싸늘한 침묵이 무서운 괴물이 되어

그 집안을 싸늘하게 춥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어느 날인가 침묵이

그 남자를 잡아먹을 것 같다


사람이 사는 집은 늘 노랫소리 들리고

깔깔 웃는 웃음소리와 오손도손 대화가

들려야 하는데 싸늘한 침묵이 온도를 내려

집안이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얼음이 꽁꽁 얼어 얼음동굴이 되어

침묵이라는 괴물만 판을 치고 돌아다니는

그 집에서 그 남자는 그 괴물과 손을 잡고

춤을 추는 것일까

아내는 침묵이 자신의 목을 졸라 질식할 것 같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햇살이 곱게 내리는 공원벤치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이라도 듬뿍 받아야

집에 들어가면 웃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부터 침묵을 지키는 그 남자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일부러 말도 걸어보았다

"오늘은 따끈한 된장찌개 할 건데 괜찮아요"

"이거 맛있어 보여서 사 왔어요"

떡을 내놓았다

그래도 말이 없는 그 남자는 어느 날부터

가끔씩 웃기도 했다


여전히 침묵을 지키면서 가끔씩

티브이를 킬킬 거리며 보다 일어나서

아내를 보며 웃기도 했지만

여전히 침묵 속에서 그 남자는

티브이 속으로 점점 기어들어가 놀고 있다

잠이 들고 티브이만 떠들어댔다


침묵이 조금씩 그 남자를 먹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보았던 짧은 단편 영화처럼

자기만 잘났다고 우기는 남자가

침묵 때문 죽는 걸 보았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은 늘 사람과 어울리며

떠들고 웃고 살아야 하는데

침묵이 흐르면 나중엔 침묵이 서서히

그 집을 잡아먹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 남자를 구해주고 싶었는데

그 남자는 점점 더 티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세상사람들이 다 못나보여서

아무도 상대하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딱해서 기도를 시작했으나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그 남자는 침묵 속에서 나올 수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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