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주에 오니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더니
무릎까지 쌓여 시골버스는 가다가 멈추었다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내려
택시를 타고 부모님이 사시는 집 앞에서 내려
대문 열고 들어가니
아버님이 “아가 눈이 머리에도 왔네! 하며
싸리 빗자루 들고 눈을 털어 주셨다
가만히 서서 눈 털며 쳐다보니
배불뚝이 누렁이가 나를 보자마자 도망갔다
낯선 여자의 방문이 불안한지
마루 밑에 들어가 꼼짝도 않는다.
며칠 지나는 동안 누렁이에게
조기 군것 몇 마리 주니
냄새를 맡았는지 누렁아! 부르기도 전에 문 앞에 지키고 있다가
야옹! 야옹! 나를 부르며 몸을 비비며 애교까지 떤다.
어느 날 바가지에 먹다 남은 밥을 잔뜩 주었더니
누렁이가 달려가
“야미야미 쩝쩝 크르릉!”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누렁점박이와 누렁검정점박이가 달려와
같이 먹자고 하니
날카로운 소릴 지르며 혼자 먹고 나오니까
기다리던 새끼고양이들이 먹는다.
고양이도 서열이 있나 사람은 맛있는 게 생기면 그저 자식 주느라
어미는 굶고도 행복해하는데, 고양이는 안 그런 모양이군. 하며 마당을 보니
또 하얗게 눈이 펑펑 내린다.
검은 고양이가 쌓인 눈을 먹고 있다
검둥아! 왜 눈을 먹니? 물으니 야옹!
“배가 고파서요”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멸치 국에 밥 말아 검둥이를 주니
힐끔힐끔 눈치 보며 한 입 먹는데,
어디선가 누렁이가 쏜살같이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남의 집에 왜 와서 밥을 먹는 거야? 하는 듯 검둥이 머리를 쾅 박고는 누렁이가 먹는다.
검둥이는 밖으로 도망가고,
누렁이는 맛있다고 다 먹고는 달려와
야옹하며, 검둥이는 이 집 고양이가 아녜요 주인님! 저런 녀석은 오거든 혼 줄을 내서
쫓아버리셔요 한다.
그래도 사이좋게 나누어 먹고 서로 잘 지내야지
누렁아! 새끼들 데리고 어서 추운데 들어오렴.
그날 저녁은 바람이 씽씽 불어
눈보라가 더 억세게 몰아쳤다
문이 꽝꽝거리고
내 마음도 걱정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눈보라 치는 마루에 앉아
검둥이는 추운데 어디서 잘까?
배고파 눈을 먹는 장면이
자꾸만 자꾸만 떠올랐다.
검둥이는 어디로 간 거지? 걱정하는데
마당 저쪽 나무 옆으로 검둥이가 지나가다
나를 보았는지 야옹! 하고 아는 체한다.
검둥아! 추운데 이리 와하며
먹을 것을 주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나타났다.
어서 먹어 배고프지? 하니 고맙다는 신호를 보내며 누렁이가 무서운지 선뜻
닦아 서지 못해서 밥그릇을 밖으로 가져다주었더니, 검둥이는 밥 먹으며
주인님 원래 이 집은 제가 살던 집인데,
할아버지는 날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었고
난 행복했는데 너무 귀여워해주시니
한번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 살고 싶었지요.
그래서 어느 날 방에 들어갔는데,
할아버지는 엄청 화나서 발로 탁탁 차며
이 못된 검둥이 녀석,
감히 내방엘 들어와! 이제 이 집에서 나가!
하시는 거예요.
그땐 정말 할아버지가 무서워 잠시 도망갔는데,
다시 와서 자려고 하니까
어느새 누렁이가 새끼들을 데리고 와서
자면서 자기 집이라고 으르렁! 거리는 거예요
그때부터 저는 집을 잃어버리고
여기저기 떠돌며 나무 밑에서
자고 다니는 노숙자 신세가 되었어요.
누렁이는 자기 집이라고
절 얼씬도 못하게 하고 기가 막혀요
어디서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 뽑아버리고
사는 것처럼, 밥도 못 먹게 해요
누렁이는 너무 무서워요.
그랬구나! 검둥아!
어서 먹어 누렁이 오면 막아 줄게
그래주시면 너무 좋지요.
검둥이는 밥을 맛있게 쩝쩝 먹는데
누렁이가 나타났다.
누렁아! 검둥이 먹게 놔둬!
넌 조금 전 먹었잖아! 하니
누렁이 못 마땅한 표정으로 검둥이 근처에
앉아 지키고 있다
너 검둥이 두고 봐 주인님 가면 넌 아주 혼내줄 거야 누렁이는 눈 흘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풀 위에 앉아 지키고 있다
검둥이는 신이 났는지 얼른 먹고 달아난다.
야옹! 야옹! 누렁이는 새끼들을 데리고 나타나 주인님! 검둥이는 이제 밥 주지 마셔요 나쁜 놈 이에요 이 집을 지키는 건 누렁이 저예요
하며 마루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난 말이다 누렁아 서로 사이좋게 나누며
사랑하며 사는 게 좋아
검둥이랑 사이좋게 지내
싸우는 건 딱 질색이거든
그리고 원래 이 집은 검둥이 집이잖아
너는 아니야
검둥이랑 잘 지내
누렁이는 아니라고 야옹! 야옹!
하다가 삐졌는지 어디로 가버렸다
다음 날이다 아버님이 방에서 소리를 지르고 난리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놀라서 달려가 보니,
누렁이가 아버님 잠든 사이
아버님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함께 자고 있다가
들킨 것이다
이 나쁜 고양이 어딜 들어와서 분수도 모르고
내 옆에 붙어 자는 거야!
아니 방에 흙도 묻었네!
아버님은 화가 잔뜩 나셔서
빗자루로 고양이를 때리려고 하니
누렁이 가족들이 혼비백산을 해서
어디론가 달아나고 말았다
그날부터 검둥이가 다시 집으로
들어와 마루 밑에 살게 되었는데
참 이상한 것이
그렇게 무섭도록 소리치고 할퀴던
누렁이가 조용해졌다
서열이 바뀐 것이다.
아 고양이의 서열은 힘이 센 것이 아니라
주인이 예뻐하는 순서이구나!
나는 그때 알았다.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집 마당엔 검둥이가 살고
한 달 뒤 귀여운 새끼를 셋을 낳아서
마당 안에 고양이들이 느릿느릿 걸어 다닌다.
* 10년 전 귀촌하면서 쓴 일기를 보니
새로워서 정리를 하면서 누렁이와 검둥이 사진을 보니 그때보다는 많이 늙은
고양이들이 참 새롭게 느껴집니다
고양이 보다 내가 더 늙었을 터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