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저금통

by 호윤 우인순 시인

남편은 날마다 서재에서 그리스 신화를 읽고

정리했다 나는 본척만척 온갖 관심은 그리스 신화에

있어서, 나는 그저 밥 해주는 가정부 같았다

그 집 가정관리사나 부모님 전문 의료 담당관

아니 간식 담당, 텃밭 가꾸고 정원 관리하는

여러분 무엇일까요 나는


그는 늘 책을 주문하고

서재를 도서관처럼 목록표를 만들고

정리해서 잘 정돈 되어 있다고나 할까

아마도 신화와 결혼한 남자 같았다


그 덕분에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도 내방에서 밤 새워 그림 그리거나

글을 읽거나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 하였고

남편은 가끔씩 피아노를 치면 커피를 타다 주고

박수를 쳐주며 웃었다

그림도 그리고 있으면 쉬는 시간에 와서

보며 잘그리네 시골에 두기 아깝지 하며 갔다

그러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천생 연분 아닌가

보통 부부가 이러고 살았으면 싸움 날 터인데


남편은 서재에서 밤을 새워 책을 읽었다

각국의 신화도 읽고 우리나라 신화도 읽었는데 특히 그리스 신화에 남다른 애정이 많아서

그 방면은 박사 수준이었다

그래서 남편의 꿈은

그리스로 여행을 가는 것이었다

구순 넘은 부모님 모시러 55년 만에 고향에 오니

어른 모시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고

고향도 낯선 타향이라서 시기심 많은 코 흘리기 시절 동창들 가까워지기는 더욱 어려왔다


6.25 전쟁 당시 겨우 일곱 살 어린 나이들 친구들

살기 어려워 초등학교 마치고 농사를 짓고

살아 부모 잘 만나 초등 삼 학년 때 광주로 갔다

서울 유학 가서 대학졸업하고 은행 가서 지점장 하다

대학원 나와 박사학위 따고 교수하다 내려온

고향친구를 부럽기도 하고 아니꼬워 보이기까지 해서 뭐 하나 바로 말하지 않고 비비 새끼줄 꼬듯

꼬으니 남편은 마을로 나가지 않고

책만 보며 부모님 모셨다


칠순 아들과 구순 부모님


구멍 뚫린 고목같은 부오님과

같이 늙어가는 아들을 쳐다보면

다 같은 노인들처럼 보였다


어느 날 부터 저 노인들을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남편의 삶은 어디로 갔을까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시절 대한민국 장남은 다 그리 살았는데

왜 나는 그리 생각이 자꾸 드는 걸까

저 남자가 저리 살으니 여행한번도 못하고

그저 삼시세끼에 간식까지 해주어아하는

옆에 사는 나는 도대체 무어람

그리 투덜거리면서도 안사람의 역할을

빈틈없이 하는 나도 같았다


부모님 때문 훌쩍 떠나 그리스 구경 한번 해보고

싶어도 여행 갔다 온 사이 어쩌라도 될까

못 떠나고 그리워만 하는 아들이 붏쌍해

나는 화가 났다

어느 날 남편은 커다란 돼지 저금통을 사 왔다

"부모님 다 여의면 우리 그리스 여행 가자"

외치며 (나에게 미안은 한가 보다 속으로 투덜댔다)


틈만 나면 저금통에 오만 원 종이돈을 꾸겨넣는다

동전도 500원짜리만 골라 넣는다


저금통이 꽉 차서 다시 돼지를 사다 채우고

또 사 와 돼지가 세 마리 꿀꿀거린다


돼지들이 남편의 꿈으로 가는 길잡이라고

시간만 나면 앉아 돼지를 보며

웃는다


아버님 수술 세 번에

아버지는 어린아이가 되어 바라는 것이 많고

어머니도 아이 되어 소리치고

병원으로 어디로 끌고 다니며

억지소리를 해도 남편은 효자라

책상 위에 나란히 서서 웃는 돼지 저금통을 보며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부모님 다 돌아가시면 나는 자유인이다

"우리 그때 그리스 여행 가자"

"그동안 못해준 것들 다 보상 해줄게 미안해 !" 하며

투덜거리는 나를 달랜다


그까짓 며칠 훅! 하고 다녀오지

사람 참 미련하기는 부모님 어찌 될까

꼼짝 않고 버티고 있는 망부석 같은 사람

나는 늘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러던 중 아버님 고관절 다치셔서 입원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 기저귀 갈고, 아버님 닦아드리고

남편은 병간호 하면서 병원 생활이 익숙해질때쯤

남편의 마음도 어두워지고

몸도 쇠약해졌다


나이 칠십이 면 노년의 황금 같은 시간인데

그렇게 허비하고 나니

남편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고

내 황금 노년기도 없어지고

나는 칠십대로 달려갔다


부모님은 모두 하늘 길 뜨시고

땅속 깊이 지하에 살고 계신데

아들은 자유를 얻었는데

만세라도 부르며 그리스 여행을 떠날 줄 알았는데

배 불데기 돼지들은 비만인데


남편은 돼지 저금통은 못 본 체 하고

그리스 가는 꿈도 잊은 채

몸이 아파 누우니


돼지 세 마리 나란히 줄 서서

그리스 가는 꿈을 못 잊은 채 꿀꿀!

그리스 여행 가자! 소리치고 소리쳐도

모른 체 하고 누워있다

하늘 길 떴다


남편은 지금은 그리스 도시를

헤매고 다니는지 궁금하다

자유를 찾아 기쁨의 행진곡이라도 연주하고

있을까 자유를 찾았는데 만끽할 여유도 안주고

신은 그를 데려갔다


그의 마지막 말

다시 태어나면 종손집 장남 안하고

부모는 절대로 안 모실꺼라는 말

아마 다시 태어나도 그는 또 모실거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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