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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Jul 13. 2023

내가 당신이라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시선으로, 내가 당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내가 낳았지만 내 딸의 오만함을 마주할 때마다 어색하다. 모성애는 어쩌면 본능이 아닐지도 모른다. 커가는 딸을 보며 모성애에 대한 의구심과 정말 모성이 본능이라면, 정이 떨어지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 사이에서 쉼 없이 진자 운동하였다.


돌아보면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켜켜이 쌓여온 하루들 사이사이로 딸의 존재는 나를 짓눌러 땅에 발을 붙이게 하는 애증의 멍에였다. 처음 마주할 때는 온 우주의 신비를 다 모아놓은 것 같아 감히 만지기 두려웠지만, 그 아이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나에게 매섭게 원망과 질책의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그 눈빛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시간은 변함없이 똑같은데, ‘엄마’라는 이름을 달고 나서는 죽을힘을 다해도 모자라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 양이었다. 그걸 쪼개고 쪼개 누군가에게 바쳤는데, 보답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겨울 바다의 바닷물보다 차가운 그 아이의 눈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었다.

대단한 삶을 살 거라는 포부에 찬 생각을 먹지는 않았지만,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초라할 거라고도 생각은 못했던 만큼, 마음 한 켠이 아릴 정도로 슬프다. 산전수전 겪을 만큼 겪은 나이라, 몸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하얀 공허함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모르지 않다. 수십 년째 엄마라는 연극에 갇혀있지만, 나도 또 다른 연극에서는 딸이었고, 세상 누구보다 귀한 존재였던 것 같은데, 삶의 낭떠러지 앞에서 나의 엄마에게 보냈던 원망의 마음은 이제 갈 곳을 잃은 지 오래다. 다시 만나면 내 삶이 너무 버거웠다고, 너무 외로웠다고 얘기하면 마음이 좀 풀리려나. 이렇게 혼자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한다면, 내 딸도 어느 순간 나를 원망하려나.   


이제 그 아이의 나이도 내일모레면 30이다. 만감이 교차한다. 혼자서 저렇게 자라주어 고맙다고는 생각하면서도 가끔 그 아이가 나이 들었답시고, 어쭙잖게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게 안쓰럽다. 


몇 번의 해가, 몇 번의 여름이 지났을까. 예측가능하지만, 마주하면 그렇게 견디기가 힘든, 다시 여름이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오늘도 세상에 어둠이 하늘에 스며드길 기다린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에게 오롯이 털어내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이 물줄기 벗 삼아 하늘로 쏘아 올린다. 내가 감당하기엔 훨씬 버거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진 것 같은데, 하늘에 있다는 저 사람은 바쁜지 한 번을 굽어 살피질 않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지. 나도 이렇게 어려운 삶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똑같이 살아내고 있을 텐데 하며 내가 내 마음 다스려야지. 


사진: Unsplash의 Riccardo Pel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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