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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닥노닥 May 06. 2024

그럴 것 같지 않다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에두르다

1. 에워서 둘러막다

2. 바로 말하지 않고 짐작하여 알아듣도록 둘러대다


  이곳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어둠이 환영받을 곳은 없으므로 나는 빛이어야 했다. 그러니 진회색의 구름들이 드리운 것 같이 칙칙한 나의 글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어야 했다. 때로 진심을 보일 길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사람에게 보여주었던 것을 제외하고 내가 아는 이에게 보인 없으니, 글도 주인을 닮아 꽤나 쓸쓸한 운명을 타고났구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러다 종이마저 검게 물들일 같은 새까만 어둠이 나를 에둘러 싸면 나는 글을 쓰지 않는다. 바람이 불고, 그 바람에 어둠을 몰아낼 때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어둠 속에 들어앉아 있다. 나조차 감당 못할 어둠을 내보이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 그러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 나는 괜찮다는 안부가 되기도 하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에둘러 말한다.


  삶을 사는 것은 복권을 긁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동전처럼 단단하고 각 진 물건으로 은박을 벗겨내면 복권의 결과를 알게 되듯 시간이 나의 삶을 박박 긁어대면 내 삶의 참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어릴 적에는 거의 긁지 않은 복권을 갖고 있어서 나의 미래에 대해 한없이 큰 희망을 품었었다. 그러나 시간에 꽤나 드러나버린 지금의 내 삶을 바라보고 있자니 기대감은 반감됐으며 결과는 실망스럽고 세월의 격차 앞에 수심에 잠겼다. 잘못된 스케치에서 좋은 그림이 나올 리 만무하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새벽에 출근하는 게 좋다. 다시 마주한 세상이 처음보다는 밝을 것이라는 확신에 기인한다. 일을 마치고 나온 하늘은 어김없이 새벽의 어둠보다 밝기에 어쩌면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루하루가 긁지 않은 새 복권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내가 살아낸 시간들을 설명하는 수많은 방법 중에 하나로 말하자면, 

10대에는 누군가에게 기지 말자는 목표로,

20대에는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자는 목표로, 

그리고, 30대에는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말자는 목표로 살아가고 있다고 간단하게 말할 있다.


구구절절하게 나의 과거에 대해 얘기할 만큼 대단히 불행하거나 엄청난 사연이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감옥 속에서 그렇게 자라왔던 것 같다. 각자가 자기 앞의 생이 가장 힘든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러했다. 새롭게 맞이한 30대에 당신의 목표를 잘 지키고 있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 있게 그러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퇴근하면서 마주한 반쪽짜리 볕 한 줄기에 흔들리고 있다. 어젯밤 내린 비의 후유증으로 하늘의 절반을 먹구름이 점거한 상태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나머지 절반의 하늘에서 해가 일순간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쥐도 새도 모르게 내 안에 숨어있던 갈 곳 없는 희망이 피어났다. 잡초처럼 지칠 줄 모르는, 목적지도 없는 정처 없는 희망, 기대감 따위가 또 분수도 모르고 터져 나온 것이다. 


경제용어 중에 'Dead Cat Bounce(데드 캣 바운스)'라는 말이 있다. 주가가 급락하다가 일시적으로 소폭 회복된 것을 의미한다. '죽은 고양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잠깐이나마 튀어 오른다'는 비유에서 유래했는데, 이때 투자자들이 하락이 끝난 바닥으로 오해하고 주식을 매수하게 되면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부제가 '내 일상대로 국어사전'이라 영어를 쓰고 싶지 않았지만,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북한이 시장경제체제이거나 조선시대에 주식시장이 정착되었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의 희망이 죽은 고양이와 같은 것일까?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가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란다. 다만, 그것에 걸려 넘어져 겁을 잔뜩 먹은 어른은 쉽사리 손을 뻗을 수가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겁쟁이 어른인 나는 기대조차 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 결국 실패다. 

돌이켜보니 내 삶의 모든 순간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 비굴할 정도로 눌려 살고 있고, 기대지 않고서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희망에 감당 못할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새로 만들어낸 빳빳한 지폐 같은 나의 목표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 삶이 소풍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것 같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그럼 삶이 지옥이냐고 묻는다면 그럴 것 같지 않다고 답하고 싶다. 미간을 찡그리며 답을 요구하는 당신에게 나는 그 사이 어디쯤으로 회귀하게 되지 않겠냐며 반쪽짜리 하늘을 가리키며 에둘러 말할 것이다. 

마치 모순된 2가지 책무를 지닌 나라의 골치 아픈 할아버지가 하듯 말이다. 


그렇다. 

나는 괜찮다는 말을 이렇게 길게 에둘러 말하고 있다.


사진: Unsplash의 Matheo J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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