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리 Apr 13. 2024

이젠 팩트도 의심해봐야 한다

보이스피싱을 당할 뻔했다


요 며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평소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는 편이서 세 번 정도 부재중이 떴다. 그러다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도대체 누구길래 싶었다. 근무 시간이었지만 대기 손님이 없어서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잠시 전화를 받아봤다.



"안녕하세요 OOO회원님 되시죠?"


(근무 중이라 죄송합니다 하고 끊으려다 참아봤다)

"네 맞는데요. 어디시죠?"


"다름은 아니고 회원님 예전에 유료 로또 업체 이용해 보신 적 있으시죠? 퍼스트로또 업체요"


(3년 전에 실제로 잠시 이용해 본 적이 있었다)

"음,.. 네 맞는데요."


"그 업체가 사기 업체로 밝혀져서 지금 법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배상 도와드리는 대행업체로 선정됐고, 회원님이 명단에 계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차례대로 배상이 진행 중입니다. 혹시 그전에 결제는 카드 방식 이셨나요?"


"카드로 결제했긴 했어요."


"카드 결제 방식이면 좀 더 배상이 편하긴 합니다. 6주 정도 소요되는데 앞에 사천분 정도 있어서 처리되는 대는 시간이 걸립니다. 기다리시면 되기는 하는데 정보 확인 차 전화가 올 수 있어요."


(사기업체 법인 계좌의 경우, 입금된 순서대로 피해자에게 배상이 진행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사천 분 정도 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아 그런가요. 그럼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본인들 대행업체가 나온다고 했다. 검색을 했는데 코인 업체였다. 신규 코인 회사라고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코인으로 받아서 수익 내는 만큼 가져가면 된다는 환불 방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듣다가 말을 끊고 물어봤다.


"말이 안 되는 거 같은데 혹시 배상 진행 공문이나 사건번호 같은 걸 알 수 있을까요?"


그랬더니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서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설명을 좀 더 들어달라고 했다. 굳이 환불 안 받아도 상관없다고, 일 하는 중이라서 안될 것 같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분명 보이스피싱 같은데 허술해도 자칫 속을 수 있겠다 싶었다. 네이버에 좀 더 찾아보고 신종 보이스피싱 사기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배상을 미끼로 2차 피해를 가하는 수법이다. 참 허탈하다. 보이스피싱이 아무리 사람들의 심리를 악용한다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사기를 치고 싶을까 싶다. 화가 나기도 했다.


전화를 건 그 사람은 본인이 하는 행위가 직업의 일종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전화를 돌리는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게 돈을 버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걸까 참 안타까웠다. 보이스피싱범도 직업이 되어가는 이 사회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직업이 은행원이다 보니 한 달에 두어 번은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손님들을 만난다. 교통법 위반 범칙금 고지서 형태의 URL을 눌러본 경우, 자녀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송금해 달라는 경우, 허위 결제 사기 문자 등 여러 사례가 존재한다. 가끔은 손님께 '와 이건 진짜 당할 수밖에 없겠네요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법도 있었다.


피해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인증번호 몇 번 알려줘 버리면 있는 돈 다 빼가고, 예금을 담보로 대출도 해서 빼가고, 신규 대출도 일으킨다. 악성앱이 깔려버리면 손 쓸 방법도 없다. 몇 번의 조작으로 돈을 다 빼가버린다. 휴대폰 갤러리에 신분증 사본 사진이 있으면 더 쉽게 피해를 입는다.



최근에는 코인 관련 보이스피싱 피해 손님 두 명의 업무를 처리해 드렸다. 경찰서 제출용 이체 확인증을 출력해 달라고 하셨는데 송금 횟수가 두 분 다 10건이 넘었다. 합계 금액은 억 단위였다. 자세히 여쭤보지 않았지만 코인 투자 수익을 높여준다는 말에 송금을 하신 것 같았다. 불필요한 말은 아끼고 업무를 해드렸지만 안타까웠다.



보이스피싱 수법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교해지고, 그러다 보면 접점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가까운 가족부터 주변 지인까지 피해자가 될 우려가 있다. 요즘에는 범죄 악성앱이 설치되면 은행 본점 관련부서에서 바로 실시간으로 전화가 간다. 전화를 받고 상황을 파악한 뒤 거래 일시 정지를 풀러 영업점으로 온다. 악성 수법이 다양해진 만큼 선제적 대응법도 늘고는 있다. 그럼에도 그 상대적 속도가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제 환불 배상 업체 사기 전화를 받고 한편으로는 '환불해 주는 게 진짜 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팩트를 기반으로 한 내용이었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코인이라는 내용을 듣고 알아 차린 것뿐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혹시나'가 '설마'가 되고 '아뿔싸'가 될 수 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 근절을 주제로 글을 시작하지는 않았다. 해결방안을 생각해 보고 싶다라기 보다는 나도 피해를 입을 수 있고, 이런 사기가 갈수록 일반적인 사고보다 정교해질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함을 말하고 싶다. 배상을 받고 싶고,  투자 수익을 내고 싶고, 빨리 문제를 해결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보이시피싱범에게 수단으로 빼앗기기 전에 판단을 일단 보류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수밖에 없다.



잠재적 사기로부터 여러모로 자유로워지기 어려워졌다. 내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소중한 지인이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팩트마저도 의심해봐야 하는 피곤한 세상이 됐다. 사기 유도 문자도, 광고성 사기 문자도 그만 받고 싶다. 그런 문자를 차단하는 과정이 쌓여가는 만큼 마음도 피곤하고 무겁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