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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인생을 이해하는 일

열망, 고독, 그리고 불멸의 이야기

by 미리


대전시립미술관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시'를 관람하고 왔다. 미술은 잘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화가 고흐에 끌리는 무언가가 있음을 느꼈다.


이전에 <아는 만큼 본다>는 제목의 글을 발행했을 때, 그 글에서 '네덜란드 미술관에서 온종일 반 고흐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로망을 실현시키기에 앞서, 국내에서 먼저 고흐 작품의 일부를 마주했다.




전시 관람 전 날, 《반 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한 서사가 담겨 있었다. 책 서두 옮긴이의 말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화가의 작품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과 생각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하다." 책을 읽을수록, 그의 고독한 내면과 예술에 대한 열망이 점점 깊어가며 다가왔다. 그의 작품들은 제각기 그의 인생이었다.



고흐는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엄격한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성인이 될 무렵부터는 미술품 매매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후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했지만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거듭된 실패 끝에 고흐는 전업화가의 삶을 살기로 했다.


'싫든 좋든 나는 가족에게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존재, 나쁜 놈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멀리 떠나 있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했다. '고질적인 가난 때문에 이런저런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고, 온갖 필수품이 내 손에는 닿지 않는 것만 같다. 우울해질 수밖에 없고, 지독한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고흐가 계속 그림을 그려나가는 데에는 동생 테오의 꾸준한 경제적 지원이 있었다. '동생아, 너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서 모두 갚으려면 내 전 생애가 그림 그리는 노력으로 일관되어야 하고, 생의 마지막에는 진정으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아니다. 언젠간 내 그림이 팔릴 날이 오리라 확신하지만, 그때까지 아무런 수입도 없이 돈을 쓰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면 종종 우울해진다.'



'지금까지 한숨 돌릴 여유도 없이 살아왔다.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내를 갖고 기다리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고, 내 그림들이 언젠가는 지금껏 사용한 돈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믿는다.'


'내 그림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고흐는 자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879점의 그림을 남겼다. 그의 생전에는 단 한 점의 그림만이 팔렸다. 훗날 그는 서양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으며, 삶이라는 예술을 완성한 '불멸의 화가'로 남았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 in 대전 전시에서는 시기별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주목할만한 작품으로는 《자화상》, 《감자 먹는 사람들》, 《씨 뿌리는 사람》,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 등이 있다.



전시 내부는 촬영이 불가했다. 그래서 이동하는 시선마다 오로지 작품에 눈길을 주었다. 사진을 선명하게 찍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었다. 코 앞 가까이에 있는 고흐의 원본 작품들을 느낌대로 취향껏 감상했다. 작품의 세계관을 다 이해하진 못하지만, '너무 잘 그렸다' 한 마디의 감상만으로도 화색이 돌았다. 적어도 고흐만의 화풍과 색채의 미가 이렇구나 정도는 알게 되었다.



유명 작품들이 여럿 있었지만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물렀던 작품은 《파란 화병 속의 꽃들》이었다. 가만히 서서 작품을 시선에 담아 가듯이 찬찬히 감상했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모든 색채가 다 담겨 있었다. 가장 먼저 채워 넣은 아래쪽 꽃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한 화병에 꽃들이 시선이 부담스러워지기 직전까지 가득 꽂혀 있었다.



《파란 화병 속의 꽃들》 엽서 이미지


처음에는 색채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갔다. 그러다 그와 대비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왜 이토록 많은 색을 썼으며, 왜 이렇게 한 화병에 꽃들을 가득 채워 넣었을까? 비싼 물감을 아끼지 않고 써가며, 부족해 보이지 않도록 표현한 듯 느껴졌다.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어떠한 결핍이 보였다.


꽃이 행복을 상징한다면, 희망을 상징한다면 그것이 가득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과하게 표현된 게 아닐까? 괜스레 이 작품에 눈길이 가서, 모든 작품을 다 둘러본 뒤 굳이 길을 돌아와 마지막으로 또 한 번 눈에 담았다. 생각을 자극했던 유일한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물론 오래 시선이 머문 작품들이 있었다. 《자화상》을 포함해 아래 여섯 작품이 인상 깊었다.



기념품 숍에서 엽서 한 장과 전시 작품 우표를 샀다. 건물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우표 스티커를 꺼내 각자 인상 깊었던 작품을 골라보았다. 친구는 내가 가장 기억에 남은 《파란 화병 속의 꽃들》 작품 바로 옆에 있던 다른 꽃 그림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쉬면서 눈에 아른거리는 '좋은 것들'을 그 순간에 간직했다.







1888년 10월 24일 고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언젠가는 내 그림이 물감값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어쩌면 네 영혼 안에도 거대한 불길이 치솟고 잃는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쬐러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온 힘을 다해 내부의 불을 지키면서, 누군가 그 불 옆에 와서 앉았다가 계속 머무르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늦든 오고야 말 그때를 기다리겠지. 물론 모든 걸 계산하고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래도 더 나은 변화가 온다면 나는 그걸 얻은 것으로 생각할 테고, 기뻐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결국에는 뭔가 되고야 마는구나!"



고흐의 말대로 결국에는 되고야 말았다. 그의 불타는 열정을, 그 불을 쬐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의 위대한 작품을 보기 위해 시간 내어 달려온다. 제 각기의 시선으로 작품 앞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감탄하고, 감명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실이 왠지 괜스레 감격스럽게 느껴진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고자 했다. 작품 작품마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얕은 시선으로 넓게 보려고 했다. 고흐의 생각과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책을 읽어보고, 배경 삼아 작품을 감상했다.


가난, 고뇌, 고독, 고통, 광기, 이러한 단어들이 그의 생애에 걸쳐 따라다녔지만 훗날 우리는 그를 '불멸'이라는 단어로 칭한다. 그는 불멸의 화가다.


한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글로 담아내기 참 어려웠다. 특히 책 속에 담긴 고흐 내면의 고독과 생각들을, 값진 내용들을 글 서두에 제대로 요약해내지 못했다. 어려운 게 당연하다는 한계를 느꼈지만 그럼에도 꽤나 값진 경험이었다!






나는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노력을 멈춘다면,
나는 패배하고 말 것이다.

묵묵히 한 길을 가면 무언가 얻을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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