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지난 토요일에 회사 연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 본점에 다녀왔다. '직무 페스티벌'이라는 대회였는 데, 예선 시험을 통과한 뒤 본선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재작년에 팀전으로 참가해서 우승을 한 경험이 있는 데, 팀원들 활약 덕분에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프리라이더(?) 같은 마음의 짐이 있었다.
재작년 당시를 돌아보면, 공부가 참 하기 싫었었다. 일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던 시기였고, 교재를 보면서도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예선전에서도 본선에서도 팀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과정과 결과 모두에서 떳떳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함께했던 팀원 중 한 명이 새로운 팀을 꾸렸고, 한 번 더 함께 해보자고 제의를 해왔다. 조심스럽게 거절했지만, 어쩌다 보니 또 상황상 참가 결정이 나고 말았다. 바로 코 앞의 예선전을 앞두고, 퇴근 후 틈틈이 공부하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예선전을 치렀고, 다행히 이번에는 본선에 진출했고, 팀전 성적도 본선에 올랐다.
본선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참 신기하게도 재작년과 같은 직무, 같은 교재, 같은 내용인데 이번에는 진도가 잘 나갔다. 공부의 효율성도 높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 하기 싫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이번에는 노력이 유의미했다. 공부도 타이밍인 걸까? 아니면 여유가 생긴 걸까?
본선 당일, 이른 아침 기차를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스물몇 팀 중에서 본선에 오른 다섯 개의 팀, 무대 한가운데에 우리 팀의 자리가 있었다. 경험이 있는 데도 막상 긴장됐다. 그래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실력이 들통날까 두려운 그런 소극적인 감정은 없었다. 내가 맡은 직무의 문제는 틀리지 말고, 팀에 보탬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스무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중간 점검 결과, 팀 점수는 공동 1등을 달리고 있었다. 남은 열 문제는 스피드 퀴즈 방식이었는 데, 다른 팀들이 워낙 버저를 빨리 눌러서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결국 우리 팀은 간발의 점수 차로 준우승을 했다. 우승 팀만 주목을 받는 현실을 고스란히 마주하며... 각자의 개인전을 준비하러 자리를 옮겼다.
개인전은 직무별로 100명이 참가해서 5등까지 수상하는 구성이었다. 마음가짐은 딱 이랬다. '팀전하는 김에 이것도 해보는 거지, 설마 뭐 등수 안에 들겠어.' 그렇게 부담 없이 문제를 풀어갔다. 10 문제 중간점수가 집계됐는 데, 3등에 내 이름이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두근두근했다. '이러다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계속해서 정답을 제출하다가 한 문제를 틀렸다. 보기 3번이 긴가민가했는 데 제출했고, 정답은 4번이었고, 나는 탄식했다. 아는 선지였는 데 빨리 제출해야 한다는 마음에 실수를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3문제쯤 남았을 때, 중간 결과가 공개됐고, 내 이름은 7등에 있었다. 거의 다 와갔다.
남은 세 문제도 정답을 제출했다. 스무 문제가 어찌나 많게 느껴졌는지. 최종 점수 집계까지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놓친 한 문제가 너무 아쉽다는 생각, 그리고 앞에 두 명을 제쳤을까 하는 생각. 결과가 발표됐고, 5등 안에 내 이름은 없었다. 팀전과 마찬가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일상으로 출근해서 결과를 물어보는 동료들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우승팀과 1등부터 5등까지만 공개되는 이 현실. 5등까지 커트라인이 심지어 나와 같은 한 문제 오답이었다고 해서 더더욱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냉정하지만 그게 경쟁의 산물이고, 그게 모두가 될 수 없을 뿐이었다. 실수도 실력이고, 운도 실력이니깐 말이다.
"성공이라는 말에 따라오는 수치와 성과만 바라보면 기쁨을 느끼기 어려워집니다. 숫자 뒤에 사람 있어요. 저는 이 말을 되새기며 벅찬 감정을 더 깊이 느껴봅니다."
-<헤맨 만큼 내 땅이다> 김상현-
우승팀 외에 본선에 치열하게 임했던 사람들이 있고, 5등 안에 들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제각기의 노력과 간절함이 있다. 예선도, 본선도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다.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우리 모두 도전했다. 이번에는 팀원들에게 실력으로 보탬이 됐고, 그 과정도 즐겼고, 과거보다 한 뼘 더 성장했다.
노력에도 타이밍이 있고, 아쉬운 건 그만큼 성장 중이라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성장을 스스로 체감하는 기쁨을 누렸다. 결과보다 빛나는 깨달음을 얻었다. 재작년에는 우승을 했고, 그게 다였지만, 이번에는 숫자 바깥 너머에 속했다. 내가 속해보니 그제야 보인다. 숫자 밖의 사람을 볼 줄 아는 것. 제각기 사람들의 서사를 응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은행을 그렇게 다니기 싫어하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그럼 나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을 나열할 수밖에 없다. 고인 물이 되기 싫다고, 성취감이 좋다고, 나의 도파민은 이런 데서 나온다고.
재작년에는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었는 데, 왜 이번은 그때와 다를까 싶었는 데,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이제는 무엇보다도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잘 안다. 참 신기하다. 같은 경험이라도 다른 생각과 감정이 든다는 것이, 그게 바로 성장의 과정인가 보다. 정글과도 같은 사회에서 나는 이렇게 또 살아간다.
"Winning isn't everything."
"But loosing isn't anything."
"Look at it this way. We learn more from loosing than we do from winning. If you keep on doing different things, you're going to win just as much as anyone else. Just keep trying, CharlieBrown."
-스누피 에피소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