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하면서도 짠한 김 부장 이야기
지난 주말에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몰아서 시청했다. 나 또한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스토리에 공감하면서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것들이 정답은 아니겠지만, 글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써본다.
주인공 '김낙수'는 25년간 회사를 위해 치열하게 영업했고, 임원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기업 부장' 타이틀은 그에게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상무 자리를 남겨 둔 시점에서 주위의 시선과 평가 속의 김 부장은 '무능한 관리자'였다. 업무를 팀원들에게 위임하고 책임지려 하지 않고, 모든 상황을 승진의 잣대로만 바라봤다. 팀원들의 역량을 잘 이끌어낼 역량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역량도 없어 보였다.
가족을 먹여 살려 준 회사에 은혜를 갚을 날이 더 남았다고 말하는 김 부장은 하루아침에 아산 공장의 안전관리 팀장으로 발령받는다. 그 후로 김 부장은 조직에 대한 배신감과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며 고충을 겪는다. 잠시 유배 보내졌다 승진해서 본사로 복귀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상황은 흘러갔고, 결국 김 부장은 조직의 불합리함에 맞서 퇴직을 신청한다.
인생의 절반을 회사에 헌신한 김낙수는 좋지 않은 엔딩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 '월급은 끊겨도, 월세는 평생 간다'는 속임에 넘어가, 설상가상으로 상가 분양 사기를 당한다. 퇴직금은 모두 날리고, 빚만 남았다. 공황장애까지 겪고 나서야 그는 그제야 눈앞의 현실을 뼈저리게 마주하게 된다.
인생의 트로피였던 '서울 자가'도 팔아야 했다. 김낙수는 그럼에도 밑바닥부터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세차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갈 시스템을 만든다. 그의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를 비로소 내려놓고, 김낙수는 이제 좋은 남편으로서, 좋은 아버지로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사람이 될 준비를 마쳤다.
기업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누군가는, 언젠가는 책임자가 되고 관리자가 된다. 조직은 냉정하고, 원하는 대로 상황은 흘러가지 않는다. 그런 정글같은 시스템에서 인생의 절반이라는 시간을 보낸다면,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변한다.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회사는 잘못은 없다. 다만, 회사는 혼자 굴러가지 않기 때문에 이런저런 영향을 주며 한 사람의 정체성을 휘두른다. 그래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김 부장은 퇴직한 후에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돈과 명예를 잃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과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를 깨달았다. 25년이 걸렸다. 헛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인생을 놓고 보면 너무 긴 세월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한 직장을 오래 다닌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품어본다.
드라마 속 권 사원, 정 대리, 송 과장, 김 부장... 우리들의 직함. 직급이 올라갈수록, 급여가 상승할수록, 긴 세월이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갈 것이다.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라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며, 자신을 잘 돌봐야 한다.
회사를 다니면서 얻게 되는 점과 잃게 되는 점들에 대해 늘 생각해보는 편이다. 월급이라는 숫자도 중요하지만, 내가 가꾸어가는 인생의 시간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20년, 30년 걸려서 얻게 될 것들을 지금도 얻을 수 있고, 빨리 깨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도 부단히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애쓴다.
드라마 마지막 화에서 김낙수의 아내가 김낙수와 맨발 걷기를 하면서 나온 짧은 대사가 아른거린다. "김낙수, 넌 왜 이렇게 짠하냐..., 위대하다 김낙수!" 열심히 일해도 '짠하다'는 그 현실, 그게 틀린 삶도 아니어서, 또 정답도 아니어서 참 짠하다.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런 말하기 참 짠하지만, 김 부장처럼 되고 싶지 않다. 세상이 변했다. 평생직장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만큼 나 자신을 가꿀 시간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될 사람이라면, 그러고 싶다.
어쩌면 김 부장처럼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만한 끈기도 없고, 회사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갈 자신도 없다. 그래서 이렇다 저렇다 할 짬이 못된다. 그저, 직장인이어도 삶을 꾸준히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누려야 할 것들은 즐길 줄 아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느낄 뿐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미래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궁금하다. 현실 감각이 없는 건 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나답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김 부장이 될 수는 없으니깐,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나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답게', 그리고 '나와 함께'.
나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감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하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