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혼자다'라는 말이 있지만, 결국 우리는 관계를 기반으로 살아간다. 회사라는 조직에도 당연히 인간관계가 성립한다. 상사, 동료, 후배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과 부대껴 일을 한다. 직장 내 스트레스 중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인간관계를 꼽듯이, 우리는 '사람' 때문에 힘이 든다.
근래에 사람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다. 은행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손님으로 맞이한다. 은행원은 '반 관상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떤 손님은 의자에 앉기만 했을 뿐인데도 짐작 가기도 한다. 한날은 그런 손님이 내 앞에 앉았다. 어떤 업무 도와드릴까요?라는 물음에 손님은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라고 화두를 던졌다.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입출금통장에서 2만 원이 두 달 연속으로 18일에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들어갔다고 말씀하셨다. 거래내역을 보니, 25일에 통장에 잔고가 없어서 그다음 달 잔액이 생긴 날에 돈이 출금된 것이었다. 손님은 그럴 거면 자동이체 날짜를 왜 설정해 놓은 거냐고 흥분했다. 자동이체와 자유적립식 상품에 관해 설명을 드렸더니, 설명은 필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갑자기 돈이 빠져나가서 연체 생길 뻔한 거는 어떻게 책임질 거냐는 말까지 나왔다. 신경질 내며 화를 내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마주해야 했다.
책임자 분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는 데, 계속 같은 말이 오고 갔다. 결론적으로는 은행 시스템을 못 믿겠다며 해지해달라고 하셨다. 그렇게 상황은 종결됐다.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고도 했다. 돈이 갑자기 빠져나간 것도, 회차가 꼬이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날이 선 말투와 표정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인류애를 상실하는 기분이 들었다.
문제는 그 주에 이런 류의 손님이 두 명 더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감정 에너지를 유독 많이 소모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 돈을 벌어다 주는 구조지만, 가끔은 '사람'이 무서울 정도로 버겁다. 나도 물론 모든 손님들에게 친절할 정도로 완벽하지 않다. 그걸 인정하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려 한다. 그런 노력은 이렇게 가끔 무방비로 상처를 입는다. 일이 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서비스직이고, 감정이 남는 일은 이래서 힘들다.
은행원은 2-3년마다 지점을 옮기다 보니 여러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는다. 신입이었던 첫 지점에서는 매 순간순간마다의 일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에, 주위에 동료를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직원들도, 내가 힘들게 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 때문에 티를 낼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간 두 번째 지점에서는 감사하게도 좋은 동료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인생을 살면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이라고 느낀 동료와는 친구로 잘 지내고 있고, 마음이 잘 맞았던 대리님과 과장님과는 자주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일과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어 준 그곳에서 좋은 사람을 발견하고, 진심을 다할 줄 아는, 보이지 않는 많은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6개월 전, 지금 지점에 발령이 났을 때 그래서 걱정이 앞섰다. 그전처럼 좋은 사람들을 더 이상 못 만나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이 한동안 들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맞는 사람이 생겨났다. 점심을 같이 먹고, 수다 떨고, 같이 일하는 그 시간이 문뜩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 또한 내 인생의 소중한 일부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마주한다. 그렇기에 마음 맞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안다.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동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어느 한 날은 좋아하는 과장님과 수다를 떨다가 문뜩 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람 때문에 힘든데, 사람 덕분에 즐겁다.' 딱 이 한 문장이 선물같이 찾아왔다. 생각을 붙잡고 곰곰이 생각해 봤다니, 은행원이라는 직업이 참 그런 것 같았다. 사람 때문에 힘든 게 너무나도 맞는 데, 한편으로는 사람 덕분에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 보다도, 이런 알아차림이 마음에 더 와닿았다.
누군가는 일을 배우는 기쁨과 일을 해내는 성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얻는 즐거움 또한 중요한 것 같다. 같은 고충을 느끼면서 존재하는 그 시간도, 퇴근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같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도 다 즐겁다. 일만 하다가 퇴근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게 인생이다. 그래서 지금의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에 지금처럼 최선을 다하려 한다. 언젠가는 지나가는 인연일 테지만, 지금은 지금이니깐 말이다. 일이 힘들어도, 사람 때문에 속상하더라도, 이런 소소한 즐거움 하나를 붙잡고 수많은 내일을 맞이해 보려 한다.
나의 고통은 사람이고, 나의 생존도 사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