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라는 숙제

걱정도 불안도, 쉼이 필요하다

by 미리


어느덧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 잠들기 직전, 문뜩 '쉼이라는 숙제'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메모장에 그 한 줄만을 기록하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전 아홉 시, 푹 잔 것 같으면서도 개운하다고 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무게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강제로 벗어났던 요 며칠이었다. 연휴 시작에는 친구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늘 가는 해운대, 늘 머무르는 호텔, 늘 가는 여행 코스, 늘 먹는 음식들 ··· 늘 해왔던 것들을 또 하고 왔다. (백화점 서점에서 책을 사고, 단골 곱창집에서 저녁을 먹고 해변을 산책했다. 다음 날은 소갈비 점심 특선을 사 먹고, 호텔 라운지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좋다고 느낀 것들이 늘 똑같이 좋아서, 행복을 반복할 수 있어서, 그리고 그런 우리가 있어서, 좋았다.


행복은 우연히 만나기도 하지만 고스란히 짜이기도 한다. 하나하나 풀어보기만 하면 되는 선물 꾸러미 같은 것은 것들이 행복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이 선물인지를 알고,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 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좋아하는 것들을 또 좋아하는 그런 시간들은, 짧든 길든 행복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알게 된다. 행복하고 싶을 때마다 행복하면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행복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행복이 그렇다 한들, 매일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 일상이다. 행복은 순간이라는 말도, 찰나라는 말도 그래서 존재한다. 좋았던 순간을 뒤로하고 익숙한 집으로 돌아온 뒤, '나머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를 고민했다. 쉬는 건 그냥 쉬는 건데, 어떻게 하면 잘 쉴 수 있을까를 또 고민한다. 쉬는 것도 숙제처럼 느껴진다. 누군가가 숙제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닌 데, 누가 누가 더 잘 쉬었나 상을 주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가만히 누워서 쉬다가도 벌떡 일어나 책을 집어 들고, 책상 의자에 일단 앉아본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연휴 마지막 날 뭐 하나라도 생산해내고 싶은 마음을 다잡고 써내려 가고 있다. 의식의 흐름대로, 이 또한 쉬는 것이라고 믿으며, 글 한 편 발행하고 나면 뿌듯해질 그 순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그 불안을 자각하고 챙겨가며 동시에 쉼을 생각한다.



연휴 기간, 김남금 저자의 <출근하기 싫은 날엔 카프카를 읽는다> 책을 읽었다. 그 속에서 들여다본 문장들을 빌려서 쓰기를 이어가 보려고 한다. "우리는 일상과 이상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무기력에 빠지곤 한다. 마음에 안 드는 현실에서 달아나려고, 아니 버티려고, 여행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려고. 몸은 습관적으로 마땅히 할 일을 하지만, 마음은 계속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리는 것도 삶의 일부이고, 쓸모가 있다. 마음속에 쌓인 불만과 불안도 진짜 삶이다. 우리는 모두 진짜 삶을 살고 있다."


내일의 출근과 내일의 할 일들이 떠올라서 흔들리는 나에게 책은 이렇게 말한다. "삶을 송두리째 잃지 않으려면 노동은 필요하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 시간을 견디며 얻는 것과 잃는 것 등이 나를 이룬다.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외롭다. 반복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그럼에도 다음 날 일어나서 삶의 전쟁터로 출전하는 성실함과 평범함의 그 힘을 믿는다. 이것이야말로 어른의 삶을 살아내는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차피 어디 가든 비슷한 문제가 지속되는 게 인생이고, 그게 어른으로 사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연휴 기간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좋아서 읽는 건 지, 좋을 것 같아서 읽는 건 지 알 수 없지만 읽고 나면 그래도 무언가가 채워진다. 뿌듯하다는 감정 하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것이 '읽는 기쁨'이고, 이 책 한 권을 내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독서'다.

책 몇 권 읽었다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거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읽는 행위로써 나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려고, 글을 쓰는 행위로써 나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연휴도 어느덧 곧 해가 넘어간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도 없고, 이 껄끄러운 불안을 어찌할 방도도 없다. 문뜩 어제 보았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 이홍위의 서사가 떠오른다. 영화를 감상하면서 눈물이 해방처럼 쏟아 흘러내렸다. 왕이기를 떠나서 좋은 벗이 되어 주고,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었던, 그래서 더더욱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하는 마음이 애석했다.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고뇌고, 고난이었으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련에 비하면 나의 일상은 얼마나 단조로운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껏 해봐야 하기 싫은 출근이 고뇌고 고난일 뿐인, 이 삶의 무게가 한순간 가벼워짐을 느낀다. 밀린 일들은 출근하면 어찌 되건 해결되고, 막상 출근하면 별 거 없다는 게 인생의 진리다. 물론 이런 생각만으로 홀가분해 질만큼 인생은 시시하지 않지만 말이다.


글 한 편이 무사히 완성되어 가니, 이제 남은 시간은 온전히 쉬어야겠다. 사서 하는 걱정도, 불안도 좀 쉴 필요가 있다. 휴식도 노력이 필요한 이 상황이 밉지만, 불안이 나의 긍정을 지배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북돋아 주어야겠다.


행복할 줄 아는 만큼, 잘 쉴 줄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란다. 그저 쉴 줄 몰라서 의무감에 썼을 뿐이지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