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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Jan 09. 2024

서점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퇴근 후 서점은 감성적이다


최근 이런저런 이유로 퇴근 후 서점을 못 갔다. 핑계의 고리를 끊기 위해 오늘은 서점으로 향했다.



오늘은 목적이 있는 방문이었다. 서점에 가서 찬찬히 읽고 싶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인데 내일 독서모임의 선정 도서이기도 하다. 밀리의 서재에 있어서 어제부터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가볍게 넘기며 읽으니 이렇게 읽어도 되나 싶었다. 종이책으로 읽으며 저자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돌아다니며 즉흥적으로 읽고 싶은 책들을 골랐을 테지만 오늘은 절제하며 한 권만 집어 들었다. 겸허한 마음가짐을 갖고 책을 읽어 나갔다. 죽음을 곁에 둔 시기의 이어령 선생께서 전하는 이야기에 담담하게 빠져들었다.



이어령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삶의 끝이 아닌 한가운데서부터 죽음을 그려보고, 죽음을 늘 기억하려 하셨다. 죽음이 진짜 곁에 와있는 나날에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끝이지만 글 쓰는 사람은 다음이 있어. 죽음에 대해 쓰는 거지. 벼랑 끝에서 한 발짝 더 갈 수 있다네." "나는 기도하네. 오 주여, 나에게 용기를  주옵소서. 끝없이 내 몸뚱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죽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조금 더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바라지 않고, 죽음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했던 이어령 선생님. 의연한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책에는 이어령 선생의 한평생 지혜가 담겨있다. 과학, 종교, 철학, 인문학 전반에 걸친 선생님의 통찰력을 가만히 앉은 채로 소개받았다. 내일 독서모임을 위해 공유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은 메모해 뒀다. '죽음'을 이어령 선생 말씀처럼 모른 채 덮어두면 안 될 것 같다. 독서모임을 통해 삶 속에서의 죽음에 관해 깊게 생각해 봐야겠다.







책이 다소 두껍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에 가려고 서점 대문을 밀고 나왔는데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내리는 눈의 속도처럼 빠르게 감성에 젖어들었다. 펑펑 내리는 눈을 올겨울 처음 봤는 데 그게 서점 문 밖을 나온 순간이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그 와중 문뜩 아까 읽은 책에 나온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서양 사람은 눈을 표현하라고 하면 빗자루로 쓰는 소리를 내. 한국 사람은 눈이 펑펑 내린다고 하거든. 소리가 없어도 '펑펑'이라고 표현하는 거야. 얼마나 낭만적인가."




눈이 많이 오지 않는 지역에 살아서 겨울이 오면 펑펑 내리는 눈에 대한 기대가 항상 있다. 그런 눈을 오늘 봤다. 퇴근 후 집으로 갔으면 눈이 온 지도 몰랐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오늘도 서점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는 성취감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 느낌을 흩날리는 눈이 그래도 낭만적으로 표현해 주는 듯했다.




아파트 주차장 실내로 들어서기 전에 눈을 뜨고 흩날리는 눈을 다시 바라봤다. 어둑어둑한 밤에 하얀 눈을 마주하는 데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가운 공기, 눈 내리는 색다른 풍경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서 고독을 느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집에 들어오자마자 메모장에 끄적였다. 눈처럼 흩날린 감정을 요약하자면 '지금 잘하고 있어'이다. 



퇴근 후 서점, 독서, 그리고 글쓰기. 매일을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찾아온 거라 생각한다. 사실 오늘의 글쓰기는 서점에서 읽은 책이 주제가 아니었다.



오늘의 '퇴근 후 서점'은 색다른 풍경을 선물해 줬다.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지만 오늘만 느낄 수 있던 감정이었다. 그래서 피곤하지만 하루가 가기 전에 글을 발행하고 싶어 부랴부랴 써 내려봤다.




서점에 관한 주제의 매거진이지만 감성 에세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것 또한 서점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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