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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Dec 19. 2023

서점에서 잘 놀다 갑니다

혼코노 말고 혼서점


오늘도 어김없이 삼일문고로 퇴근했다. 유난히 추운 날씨의 언 몸을 녹이기에 서점은 딱 적합했다.



역시나 별다른 목적 없이 서점 문을 열었다. 잠깐 둘러보다 오늘따라 삼일문고 필사 코너에 시선이 갔다. 책상에는 필사하기 좋은 책들과 다이어리, 펜이 놓여있었다. 그리곤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글자를 한 자 한 자 눌러쓰며 느껴지는 손끝의 감각에 위안과 안정을 얻기를 바랍니다."





의자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준비했다. 놓여진 필사 다이어리들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여러 사람이 쓴 필사 문장들과 방문록 느낌의 일기가 담겨 있었다. 어린아이, 학생, 직장인, 엄마 등 다양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손글씨가 있었다. 사람들의 글에 온기가 있었다.



"저는 2023년 올해 수능을 친 고3입니다. 대학 발표만을 기다리며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필사 코너에 들러 좋은 글 많이 보고 힘을 얻고 갑니다. 제 글을 읽을 다른 분들께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글 솜씨가 없네요. 다들 좋은 이유로 이곳에 오셨을 텐데 존경하고 응원합니다. 행복하세요!
 -12ㆍ10-"


이 글을 눈으로 보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행복한 마음으로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그렇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의 하루-
아침에 공부하러 나왔다. 나이 50대에. 인생 2막이 열리리라. 걱정반 설렘반. 하지만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한다. -23.12.14-"


배움과 함께 새 출발을 시작한 이 글을 쓰신 분을 응원하고 싶다. 겸손한 마음도 든다. 글쓴이의 인생 2막이 더할 나위 없이 좋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사 코너에 있던 책 중 시집을 선택해 읽었다. '밤을 채우는 감각들'이라는 책이었다. 자기계발서 위주의 독서법으로 시를 눈에 담으려고 하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어느 부분에 공감이 되는지, 짧은 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의무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를 버리고 계속 읽어나갔다.



페르난두 페소아 작가의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시가 유독 눈에 밟혔다. 그래서 필사 다이어리에 시를 차근차근 필사했다.


필사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시인이 죽은 날 남긴 말)


어쩌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

오른손을 들어, 태양에게 인사한다.

하지만 잘 가라고 말하려고 인사한 건 아니었다.

아직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손짓했고,

그게 다 였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초연한 감정이 온전히 느껴졌다.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지는 것 같다. 태양에게 아직 너를 눈에 담을 수 있어서 좋다고 뜨겁게 손짓했을 모습이 상상됐다. 필사를 하면서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었다.






필사 하나를 하고 다시 서점을 어슬렁 거렸다. 시집도 좋은 것 같아서 시집 코너에 발길을 다. 우연히 한 권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가볍게 보다가 작가미상의 짧은 글이 눈에 들어왔다.



"-세 잎 클로버-

한 번쯤 네 잎 클로버를 찾으러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처럼 행운을 얻기 위해서. 어디 있는지 모를 행운을 찾으려 수많은 세 잎 클로버를 밟고 지나가는 그대. 혹시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는가?바로 행복이다. 보이지도 않는 행운을 위해 지금의 행복을 짓밟지 마라."



머리가 약간 띵해졌다. 네 잎 클로버만을 찾았던 지난날들을 부정하게 된 순간이었다. 세 잎 클로버들에게 미안해졌다. 우리가 그렇게 추구하는 '행복'을 꽃말로 가진 세 잎 클로버라니. 내 발 밑의 행복을 먼저 챙겨야겠다고 느꼈다.



시집을 가볍게 읽고, 좋아하는 자기계발서 코너에도 가서 책 구경을 했다. 켈리 최 대표님의 '100일 아침 습관의 기적'이 눈에 띄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책을 빠르게 읽었다. '골든 모닝'이 핵심이었는데 모닝 루틴에 대해서는 따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서점 문을 나서기 전, 예전부터 구매하려고 했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책 권을 샀다. 오래 머물렀다 그냥 가기에는 미안해서 오늘은 책을 들고 문을 나섰다. 나오고 나서 문뜩 이런 생각이 기분 좋게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혼자 잘 놀다 갑니다~'라는 뉘앙스의 감정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내기도 했고, 에너지를 얻고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글 제목이 뚝딱 나왔다. '서점에서 잘 놀다 갑니다'.






퇴근 후 혼자 시간을 즐길 공간이 있어 참 좋다.


혼코노(혼자코인노래방) 대신 혼서점은 어떠신가요?라는 물음으로 글을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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