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를 찍기로 했다

by 마흔로그

회의실의 공기는 평소보다 진지했다. 유리벽 너머로는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동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9년 전,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 조직에 입사했을 때부터 내게 익숙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그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겠다는 보고를 하러 이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미 두세 달 전부터 휴직 가능성을 충분히 언급해 왔지만, 정식으로 뜻을 전하는 자리는 확실히 무게가 달랐다. 팀장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들었다. 9년 동안 나름의 성과를 내며 쌓아온 평판과 커리어. 그는 아마도 내가 조직 안에서 꽤 괜찮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안정감 속에서 지낸 시간이 길었다.


만류하거나 붙잡지는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내 결정을 받아들였다. 분위기가 조금 유연해진 후, 그는 자신이 과거에 육아휴직을 하며 느꼈던 긍정적인 경험들을 들려주었다.


"팀장님께서 예전에 해주신 육아 휴직 경험에 대한 말씀이 큰 용기가 됐습니다. 덕분에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원만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하지만 자리로 돌아오니 현실적인 고민들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나는 40대 초반의 외벌이 가장이다. 내 월급은 우리 세 식구의 유일한 수입원이다. 육아휴직 급여가 올랐다고는 해도, 한 가정의 생계를 온전히 책임지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경제력을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휴직을 선택하는 것이 자칫 무책임한 결정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저 아이와의 시간이나 휴식이 필요해서 내린 결정은 아니다. 9년 차 R&D 직무를 수행하며 회사 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왔지만, 우물 밖의 상황은 달랐다. 특히 최근 AI의 급격한 발전은 공학도인 나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지금처럼 조직이 부여한 미션만 충실히 수행하다가는 머지않아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지난 9년이 조직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휴직 기간은 나를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비하고, 내 커리어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기 위한 재정비가 절실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과정에서 얻게 될 소중한 가치다.


휴직 시작일인 3월 21일까지 이제 6주가 남았다. 인수인계 사항을 정리하고, 휴직 중 할 일 목록을 작성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메울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변화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이 휴직이 우리 가족의 앞을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담담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다음 단계를 준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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