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을 결정하고 며칠 뒤, 지도교수님께 연락을 드렸다. 학부 4학년 때부터 석사, 박사 과정까지 도합 7년이 넘는 시간을 그분 아래에서 보냈다. 전공 지식도 지식이지만,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신 분이기에 나에게는 은인과 다름없는 분이다. 학교를 떠난 뒤에도 매년 한 번씩은 찾아뵈었고, 가끔 후배들을 위해 특강을 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은 조금 더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인생의 큰 분기점이 될 육아휴직 소식을 알리고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휴직 기간의 부족한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최근 내가 느끼는 AI의 위협을 주제로 후배 대상 특강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특강 주제는 'AI의 위협과 우리의 대응'이었다. 사실 대응책에 대해서는 나조차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두 달 뒤의 기술 변화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왜 이 시점에 휴직을 결정했는지, 그 이유 중 하나가 이 거대한 변화에 대응할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를 여담처럼 남기며 강의를 마쳤다. 2시간의 강연료는 곧 다가올 휴직기의 든든한 용돈이 되었다.
문제는 특강 뒤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발생했다. 내 휴직 계획을 들은 교수님의 반응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휴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더라도 짧게 하고 빨리 복직해라."
교수님은 강하게 조언하셨다. AI의 위협은 본인도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지만, 나의 직무 역량과 소프트 스킬이라면 충분히 이 파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오히려 지금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속도를 내야 할 때라고 하셨다. 나를 높게 평가해 주시는 마음은 감사했지만, 이미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던 나로서는 힘이 빠지는 소리였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는 길, 마음 한구석에 숨겨두었던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커리어가 중단되는 것에 대한 실존적인 공포다. 음악을 듣다가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재생하면 정확히 멈췄던 지점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커리어도 과연 그럴까.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9년간 쌓아온 평판과 전문성이라는 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
하지만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교수님의 반대는 역설적으로 나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인재'라는 평가를 확인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이 휴직 기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쓰느냐에 달려 있었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이번 휴직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플러스가 될 자양분을 확보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정신은 맑아졌다.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긴장감이 생겼다.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을 위해 이 소중한 기간을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은사의 우려 섞인 조언이 오히려 내 결심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예방주사가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