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파트 분양 계약서가 아닌 '지역주택조합 조합가입 계약서'
그가 둘러본 주택홍보관 내부는 정말 멋지고 훌륭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112㎡(구 34형) / 84㎡(구 25형) / 59㎡(구 18형) 등 각 사이즈에 맞는 다양한 내부 구조와 시설들, 아파트 단지 내 각종 편의시설과 아파트 각 동의 위치와 방향 등이 인쇄된 화려한 책자, 축소형 아파트 모형, 실제 크기와 똑같은 아파트 내부 구조에 알맞게 배치된 빌트인 가전제품과 가구들, 화려한 실내장식 등 정말 멋진 아파트를 보는 것 같았다. 평생 이런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그런 순간이었다.
그가 도우미의 안내를 받고 들어가 앉은 사무실 테이블에는 자신을 ‘김실장’이라고 소개하는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먼저 앉아있었다. 김실장은 멋진 슈트에 향기 좋은 향수 냄새를 풍기며 그를 맞이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선생님. 주변 시세의 70%도 안 되는 가격에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분양받으신다면, 선생님께서는 정말 운수대통 하시는 겁니다.”라는 귀가 솔깃해지는 말에 이어서 계약서에 빨리 도장을 찍고 싶게 만드는 요란하고 현란한 말들이 김실장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면서 분위기를 리드하고 있었다.
“현재 아파트가 들어설 곳의 지주들로부터 이미 80%가량 땅을 구입할 수 있는 '토지사용동의서'를 받아 놓았습니다. 지구단위 구역의 토지 80%만 구입하게 되면 국·내외에 이름이 잘 알려진 시공 예정사인 대기업 ○○건설사가 착공을 시작할 겁니다. 그리고 약 2년 뒤에는, 늦어도 3년 뒤에는 고객님의 아파트 입주가 가능하실 것입니다. 주변 아파트에 비해 약 30% 정도 저렴한 비용으로 아파트를 받으시는 겁니다.” 라며 환한 미소를 띤 김실장이 홍보용 책자를 건네주었다.
김실장의 말을 듣고 나서 화려하게 인쇄된 아파트 홍보용 책자를 보고 있던 그는 ‘사업이 잘 진행되면 정말 늦어도 3년 뒤에는 내가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겠구나.’라는 흐뭇한 생각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생길 정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김실장의 결정적인 몇 마디 말 때문에 그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사악한 뱀의 혓바닥에서 나오는 달콤하지만 맹독이었다는 것을 그는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선생님, 머뭇거리시면 정말 좋은 아파트 놓치십니다. 일단 가계약금 조금만 있으면 됩니다. 중도금도 다 무이자로 대출을 해 줍니다. 최종 입주 때 잔금도 은행에서 대출해서 입주하시면 됩니다. 막말로 입주 후 4년 뒤면 이 아파트의 가치는 2배, 3배, 그 이상 더 뛰어 있을 겁니다. 이미 다른 분들이 계약을 많이 하셔서 이제 몇 개 밖에 안 남았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늦기 전에 계약을 하시는 게 가장 좋은 재테크입니다. 자! 여기 싸인만 하시면 됩니다.”
어느새 그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가계약금 500만 원도 그들이 알려주는 계좌로 이체하고 있었다.
김실장을 비롯한 그들은 이미 수 백 명이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자료와 기록도 보여주었다.
건설 예정사인 ○○건설은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건설사였다. 총천연색의 홍보 책자에도 당당히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 실적 및 국내 실적 등이 인쇄되어 있어서 더욱 믿음을 주었다.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어 사업이 추진되지 않으면, 업무대행비만 제외하고 나머지 금액은 모두 이상 없이 환불을 해 줍니다.”라는 확신에 찬 김실장의 말솜씨에 그는 계약을 안 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펜을 들어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실장으로부터 건네받은 ‘계약서’, 그리고 화려한 컬러로 인쇄된 두꺼운 홍보용 책자와 서류들을 가지고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2년 뒤, 늦어도 3년 뒤에는 나도 내 집, 내 아파트에 입주를 하겠구나.'라는 들뜬 마음과 함께.
그는 들뜬 마음에 거실 소파에 앉아 아파트 홍보용 책자를 재차 뒤적이고 있었다.
‘2년 뒤, 늦어도 3년 뒤에는 내 명의로 된 멋진 새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이 단란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겠구나. 물론 대출금을 갚으려면 힘들겠지만, 그래도 내 아파트가 생기지 않는가?’ 라며 행복한 상상을 했다.
심지어 그는 이런 생각도 했다.
'요즘같이 아파트 가격이 비싸게 올라가는 시기에 시세보다 저렴하고 서울과도 가까운 수도권에 내 아파트를 마련하기가 어디 쉬운가?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지역주택조합 아파트를 알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얼마나 순진하고도 무지한 상태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된 일이 생겼다.
바쁜 며칠을 보내고 우연히 계약서를 다시 찬찬히 보던 그는 순간 머리 한쪽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고 섬뜩해지는 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지옥 같은 덫에 걸리고 깊은 수렁에 빠졌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계약서를 천천히 살펴보던 그의 눈에 확 들어오는 글자가 있었다.
『(가칭)△△△지역주택조합 조합가입 계약서』
'어? 이거 뭐지? 아파트 분양 계약서가 아니었나? (가칭)△△△ 지역주택 조합의 ‘조합가입 계약서’였어? 아파트 분양 계약서가 아니라 ‘조합’에 가입하겠다는 계약서였잖아? 아, 이거 좀 꺼림칙한데? 하지만 어쨌든 내가 조합원이 되었으니 조합에서 조합원들과 추진위원회, 그리고 시행사 등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서 아파트 잘 지어서 입주하면 되는 거잖아.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다 좋은 것이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처럼 ‘지역주택조합’의 ‘지’ 자도 잘 모르면서, ‘시세보다 저렴한 아파트’라는 말에 현혹된 그는 당시에 ‘지역주택조합’의 무서움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2~3년 뒤에는 나도 아파트에 입주하게 될 것이다'라는 그저 막연한 장밋빛 미래만 생각하고 있었던 그였다. 그는 너무나 막연히 긍정적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서는 계속 경고의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2016-10-13 07:20 연합뉴스 보도 자료 참조
https://www.yna.co.kr/view/AKR20161012158600064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