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호가 형사를 선택하게 된 동기부여의 첫 단추,
그러나 젊은 혈기와 의협심과 순간의 경거망동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그의 인생을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게 한 사건이 있었다.
시간은 정수호가 푸릇푸릇했던 청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수호는 한때 경찰대학을 다녔던 학창 시절이 있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경찰대학에 입학해서 학교생활을 매우 보람 있고 알차게 보내고 있었다.
그가 3학년 겨울방학 때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정수호는 3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에 며칠간 다니러 왔었다.
때는 12월 초 어느 날 늦은 저녁이었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지 한참 지난 시간이었다.
정수호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돌면서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약 2킬로미터 정도 되는 공원 둘레를 두어 바퀴 정도 돌고 있을 때였다.
공원을 달리던 정수호는 어디에선가 여성의 비명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 여성의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남성의 목소리로 욕설이 몇 번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정수호는 순간적으로 어떤 여성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소리가 났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공원 내 향나무와 회양목이 촘촘히 심어져 있어 잘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누렇게 변한 겨울 잔디 위에 쓰러져 있었다. 가로등은 있었으나 불빛은 그리 밝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술냄새를 풍기며 시시덕거리는 세 명의 불량배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정수호는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저기요! 아가씨.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세요? 왜 여기 쓰러져 계신 거예요?”
정수호의 목소리를 들은 불량배 셋은 모두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정수호를 바라보았다.
셋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크고 대머리인 녀석이 정수호를 쏘아보며 말했다.
“야, 인마! 그냥 가던 길 조용히 가라!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알았어?”
“당신들 뭡니까? 여자 한 명을 남자 셋이서 희롱하는 겁니까? 아니면 폭행하는 겁니까? 당장 멈추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여성분을 보내주시죠.”
정수호는 점잖게 말했다.
“야, 이 새끼야! 그냥 가던 길 가라고 했잖아! 이 아가씨가 우리한테 먼저 욕을 했어. 우리가 차비가 없어서 돈 좀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이 아가씨가 먼저 대뜸 경찰에 신고를 한다나 뭐라나 그러면서 우리한테 먼저 욕을 했다고. 그러니 참견하지 말고 꺼져라. 우린 이 아가씨랑 좀 더 볼일이 있거든.”
오른쪽에 서 있던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녀석이 말했다.
“저기요. 차비는 제가 빌려 드릴 테니까, 저 여성분은 그냥 보내주시죠. 아가씨! 이쪽으로 나오세요. 이 분들 차비는 제가 빌려주겠습니다. 괜찮으니까 어서 일어나서 이쪽으로 나오세요.”
정수호가 젊은 여성에게 빨리 나오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자 넘어져 있던 젊은 여성은 재빨리 일어나 핸드백을 움켜쥐고 약 5미터 정도 떨어진 정수호의 뒤쪽으로 뛰어와 숨었다. 그녀가 입은 검은색 코트에는 누렇게 변하고 바싹 마른 잔디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본 불량배 세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낄낄대고 웃었다.
그러다가 가운데 서 있던 덩치 큰 대머리 녀석이 정수호에게 말했다.
“야! 너 돈 좀 있니? 정말 우리한테 차비 좀 빌려줄 수 있냐? 네가 저년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거냐? 만약 네가 우리한테 차비를 좀 넉넉하게 빌려주면, 저년이 우리한테 욕한 거 그냥 봐줄게. 우리가 지금 택시를 타고 급하게 바로 가야 할 일이 생겼는데 말이야. 백만 원만 빌려주라.”
“아, 그러세요? 잠깐만요. 그럼 이 아가씨부터 먼저 보내고 나서 제가 돈을 빌려드릴게요.”
정수호는 불량배들에게 말을 하고는 이내 자신의 뒤에서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말했다.
“아가씨! 이 분들 돈은 내가 빌려 줄 테니까, 빨리 저기 대로 쪽으로 뛰어가세요. 가서 택시 타고 집으로 가세요. 빨리요!”
겁에 질려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된 젊은 여성은 정수호의 말을 듣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로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곧 그녀의 모습은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라서 불량배 녀석들은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야, 인마! 너! 이제 그 년 대신에 우리한테 차비 백만 원을 꼭 빌려줘야 한다. 네가 먼저 빌려주겠다고 말을 했으니 약속은 지켜야지. 안 그래?”
스포츠머리를 한 녀석이 말했다.
“아, 네. 잠깐만요. 내가 지갑을…. 아, 맞다. 내가 달리기를 하려고 집에서 나오다가, 뛸 때 불편할 것 같고 또 분실할 우려도 있어서 집에 지갑을 놓고 왔네요. 그걸 깜빡했습니다. 아~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지갑이 있었으면 내가 돈을 좀 빌려 드리려고 했는데, 아~ 이거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정수호가 운동복 상하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지는 행동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이 새끼가 우리를 병신으로 보나? 야, 이 새끼야. 너 우리하고 장난 까냐? 너 우리가 우습게 보여?”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실실 웃으며 정수호를 노려보던 왼쪽에 있던 곱슬머리 불량배 녀석이 말했다.
“아니요. 정말 지갑이 있었는데, 집에서 나올 때 그 지갑을 두고 나온 걸 깜빡했습니다. 그건 정말입니다. 그렇지만 뭐 지금 생각을 해보니, 내가 형씨들한테 돈을 빌려줘도 나중에 돌려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들이 하는 행동이나 말씀하시는 모양새를 보니까 말이죠. 그럼, 형씨들 조심히 들어가세요. 경찰에 신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그냥 빨리 각자 집으로 들어가세요. 그럼 나는 이만 바빠서….”
정수호는 불량배들에게 오른손을 한번 흔들고는 뒤를 돌아서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수호가 뒤로 돌아서 두 걸음도 채 가지 않았을 때, 갑자기 뒤에서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덩치 큰 대머리가 달려들었다.
“야! 이런 건방진 새끼! 너 오늘 뒤져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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