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고 싶은 과거(하)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바꾸고 싶은 과거(하)





정수호도 결국 상해 및 폭행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차의 뒷좌석에 앉아 관할 경찰서 형사계로 가게 되었다.



정수호는 억울했다.

경찰대학을 다니고 있는 예비 경찰관으로서, 정의감이 넘치는 청년으로서, 피해를 당하는 젊은 여성을 범죄로부터 구해주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야간에 젊은 여성이 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었고, 자신은 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 있었다.


그랬기에 정수호는 당연히 그 여성을 도와주어야 했고, 그렇게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정당방위를 뒷받침해 줄 증거가 없기 때문에 쌍방 폭행의 피의자 신분으로 체포가 된 것이었다.


결국 아무나 타지도 못하는 경찰차 뒷좌석에 타고 경찰서 형사계로 연행되어 가는 신세라니...

너무나 당황스럽고 억울한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자신의 행위가 그럴 수밖에 없는 정당한 행위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입증할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었다.


현장에 분명히 피해 여성이 있었지만 그녀의 인적사항이나 연락처, 진술 등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이 정당성을 전혀 얻지 못하였다.


옳은 일을 했지만 오히려 상해 사건의 피의자 신분되어 경찰서로 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정수호는 꿈속에서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입증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정수호는 부모님에게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이제껏 한 번도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쳐드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이 졸지에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연락을 할 수는 없었다. 불량배들과 합의를 하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부모님에게 연락은 할 수 없었다.


질풍노도의 10대 청소년기에도 말썽 한번 피우지 않았던 정수호는 지금에 와서 상해 사건의 피의자 입장에서 상대방과 합의를 위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절대로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부모님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연락을 할 수 없었다.



지구대 경찰관들의 인솔하에 경찰서 형사계 당직팀 사무실로 정수호와 불량배들이 들어가고 있었다.


형사계 당직팀 사무실에는 먼저 접수된 사건들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무실에서 조사를 하고 있는 형사들은 4명이었다.


사건이 또 들어오자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조사를 하고 있던 형사들은 피곤에 찌든 퀭한 눈으로 형사계 출입문 쪽을 일제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머리를 쭉 뻗어 사방을 살피며 경계를 하는 미어캣과 비슷해 보였다.

피의자신문조서 등 수사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와중에 또 다른 사건이 밀려들어오는 것에 대한 경계심 또는 부담감의 표현일 수 있겠다고 정수호는 생각했다.



정수호의 입장에서는 학교에서 막연히 상상하던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무언가 무겁고 긴장감을 주는 그런 분위기가 형사계 사무실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자신이 먼저 실습의 과정이 아닌 실제 사건으로, 그것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 형사계를 방문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밤 12시가 되기 몇 십분 전에 벌써 피의자들로 꽉 찬 형사계 사무실을 바라보면서 정수호는 경찰서 형사들의 업무 강도가 장난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무탈하게 대학 생활을 마치고 졸업을 하게 되면, 자신도 이런 곳에서 근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상상을 잠깐 해 보았다.


자신이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감을 잡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상상을 하고 있는 대학생 정수호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가만히 공부를 하면서 밤샘을 할 때도 그 피로감이 엄청났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닌,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들과 상대 피의자들 혹은 피해자들을 밤새 상대해야 하는 저 형사들은 정말 대단한 존재들 같았다.


경찰서 형사계까지 온 사람들,

피의자들 혹은 피해자들은 감정이 매우 격앙되어 있고 흥분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자신들의 주장과 진술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양측의 그런 진실 공방과 고성과 하소연과 수다를 밤이 새도록 들어주면서, 때로는 양쪽을 달래가면서, 때로는 호통을 치면서, 까만 밤을 정말로 하얗게 새우도록 조사를 하고 서류를 작성하는 사람들.

형사계 당직팀 형사들이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도 바로 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중천에 뜬 상태에서도 각종 진술서와 서류들을 정리하고 수사보고서를 작성하고, 그 모든 자료들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결재를 받은 뒤에야 오후에 겨우 퇴근을 하는 당직팀 형사들. 그것이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다.


그리고 그다음 날 또 출근해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범죄자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각종 사건들을 접수해서 처리해야 하는 그런 생활을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하는 사람들이 저들 형사계 당직팀 직원들이었다. 정말 경찰이라는 직업은 3D업종에 속하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수호는 그 길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경찰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은 3학년 재학 중인 상태에서, 상해 사건으로 자신이 경찰서 형사계 사무실에서 졸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될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이제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태였다.



그러나 정수호 자신은 떳떳했다. 옳은 일을 하다가 경찰서에 오게 된 것이 아닌가.

그것을 충분히 피력하고, 설명하고, 주장하면, 결국 ‘사필귀정’이라고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수호는 학생답게 순수하고도 호기롭게 그렇게 생각했다.


상해 사건의 담당 형사는 조형구 형사였다.

조형사는 세 명의 불량배들에 대한 조사를 먼저 시작했다.

대머리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민머리, 그리고 곱슬머리, 스포츠머리 불량배 녀석들을 순서대로 조사를 하면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다.


세 녀석들은 모두 똑같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했고, 현장에 젊은 아가씨는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상대방인 정수호와 시비가 되어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만약 현장에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면 녀석들은 성희롱 범죄 혐의가 추가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정수호가 젊은 아가씨를 현장에서 빨리 달아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지금은 오히려 정수호 자신에게는 불리하고, 상대방에게는 유리한 상황이 되고 있었다.



세 명의 불량배 녀석들은 피의자 조사를 마치고 나자 모두 병원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추후에 상해진단서를 제출하겠다고 진술하였다. 조사를 다 받은 세 녀석들은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하니 돈을 달라고 정수호에게 말했다. 그러나 정수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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