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

by 정글월

사유지 '우토란트' 1부 끝.




살아있는 권력





내사가 시작된 후 며칠 지난 어느 날,


강력1팀 사무실에서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형사들의 타이핑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정수호는 자신의 책상에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여러 가지 파일을 받은 후, 형사과장과 경찰서장의 승인을 받고 수사의 전 단계인 내사에 착수했지만 그 파일들이 아직 증거로 사용되기에는 불완전한 상태였다.


제보자의 신원에 대해서 아직까지 밝혀진 것이 없는 상태이고, 그렇기에 제보자에 대한 참고인 진술서나 참고인 진술조서를 작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감도 있었다.

정수호 자신이 내사에 대해서 느끼는 심적 부담감이 아니라,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형사과장과 경무관 승진을 염두에 두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경찰서장이 느낄 심적 부담감, 그것이 정수호에게는 부담이었다.

현직 정치인이 결부된 사건은 솔직히 말단 형사팀장이나 형사들에게 부담이 있다기보다는, 경찰서 과장이나 서장 그리고 그 위에 있는 지방청 부장들이나 지방청장에게 오히려 큰 부담일 것이다. 물론 경찰청장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정치인들과 장관급 고위 공직자들은 종종 살아있는 권력으로 표현된다.

그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것은 자신의 직을 걸고, 심하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현실이다.


정수호가 처음 형사과장실에 들어가서 제보받은 내용을 보고할 때에, 경찰서에서 감당할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망설이는 듯한 말을 형사과장에게 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수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형사과장이 말년에 무탈하게 정년퇴직을 하고 편안한 노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지만 제보를 받은 이상 그 제보를 무시하거나 방치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업무 매뉴얼대로 형사과장에게 일단 보고를 한 것이었고, 보고를 받은 형사과장도 역시 경찰서장에게 보고를 한 것이었다.


형사과장이나 경찰서장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부하 직원인 강력1팀장이 제보를 받았다고 하면서 여러 가지 사진 파일과 동영상 파일, 그리고 문서 파일까지 출력해서 보고를 할 때, 설사 그 내용이 아무리 힘 있는 정치인과 결부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보고를 받는 면전에서 묵살하거나 덮어버리자고 대놓고 지시하거나 회유할 형사과장이나 경찰서장은 아니었다.


또한 원칙적인 업무 분장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형사과 강력팀 소관 사안도 아니었다.

골드바가 있는 사진 파일 등의 제보된 내용으로 유추해 보자면, 뇌물죄나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사안이므로, 대개 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이나, 지방경찰청의 반부패 범죄수사대 또는 더 상위 단계인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 담당할 사안이지, 일개 경찰서 강력범죄수사팀에서 수사할 사안은 아닌 것이었다.


제보자의 신원이 전혀 파악되지 않는 상태, 그리고 증거라고 제출된 사진 파일 속의 인물들과 골드바에 대한 내용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사진만으로는 명확하지 않고 너무 추상적이었다.


만약 당사자들 앞에 골드바 사진을 증거라고 내밀면서 추궁을 한다면, 그 당사자들은 얼마든지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이고,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그런 사진이었다.


사람들의 인체에 이식된 마이크로 칩이 불법적으로 이식이 된 것인지 아니면 합법적으로 이식된 것인지 그것도 역시 불분명한 상황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단 내사로 진행하라고 경찰서장이 지시한 것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정수호였다.

내사로 진행해서 사진 파일 등이 조작된 것이거나 해프닝으로 밝혀진다면 내사 종결로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의혹이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때 가서는 정식 수사로 전환을 해서 진행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방경찰청 반부패 범죄수사대 혹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사건을 이첩해서 그들이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정수호는 하고 있었다.


“강형사! 사진 파일 속 정치인들과 우토란트 그룹 회장인 김진성에 대한 신원사항 등 기초 자료 보고서 다 작성이 됐나?”

생각에 잠겨있던 정수호가 강진구 형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예, 팀장님. 거의 다 마무리되었습니다. 잠시 뒤에 결재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김진성 회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손목에 착용한 시계에 대한 보고서도 마무리되었으면 같이 결재 올려놔.”


“예, 알겠습니다 팀장님.”


“그런데, 내가 이해가 좀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 김진성 회장이 착용하고 있는 그 시계가 시중 가격으로 5천만 원이라고 했었지? 우리나라에 단 3개밖에 없는 희귀한 명품 시계인데 왜 가격은 예상외로 저렴한 수준이지? 물론 우리 같은 소시민들한테는 5천만 원도 엄청나게 큰 가격이지만, 희소성에 비해서는 가격이 너무 싼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야. 내가 알기로는 시계 하나가 몇 억원이나 하는 제품이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거든. 그런데 왜 국내에 단 3개만 있다는 그 시계의 가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 그게 이해가 안돼서 말이야.”


“팀장님, 그게 이유가 있더라구요. 그 시계는 한정판 시계라서 단 100개만 제작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 100개만 있는 제품인데요. 국내에는 딱 3개만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 시계회사의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제작한 것인데요, 그 시계를 디자인하고 만든 유명한 시계 제작자 ‘로한 슈미트’라는 사람의 사인을 시계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전에 미리 시계 회사와 직접적인 거래 관계가 있는 회사들의 CEO라던가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주문 제작을 한 제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가격은 일괄적으로 개당 4만 달러, 즉 한화로 5,200만 원 정도로 책정이 되었던 시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애초에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없는 그런 시계입니다. 시중에 알려진 가격도 최초에 책정된 가격이 알려진 것이고, 실제로 만약 누군가가 그 시계를 구매를 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수 억 원은 지불해야만 살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세상에 단 100개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팔려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 사연이 있는 시계이기 때문에 그 희귀한 시계를 손목에 착용한 사진 속 인물은 우토란트 그룹 회장인 김진성 씨가 맞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얼굴은 안 나왔지만요…. 보고서에도 그런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아,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 그렇다면 그 시계를 손목에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평범한 일반인은 절대로 아니라는 말이군. 김진성 회장이 맞다고 봐야겠군. 강형사가 조사 많이 했네. 수고했어. 다른 조에서도 추가로 확인된 내용이 있으면 언제든지 수시로 알려줘. 내사 진행 보고서도 잊지 말고 그때그때 작성하고.”


“예, 알겠습니다.”

강진구 형사가 대답했다.


“팀장님, 저희도 마이크로 칩에 대해서 조사한 내용을 지금 보고서로 작성 중인데요.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일단 구두로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김강수 형사가 말했다.


“인체에 이식하는 마이크로 칩은 원래 미국의 어느 회사에서 최초로 개발한 것인데요. ‘베리칩’이라는 명칭의 마이크로 칩입니다. 스웨덴에서는 수년 전에 실제로 수 천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이식을 하고 출입증, 교통카드, 기차표 등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이용하고자 스스로 원해서 이식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보된 내용처럼 우토란트 사유지 내, 특히 어반(Urban) 구역에서 근무하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이식했다는 칩에 대해서는 공개된 자료가 전혀 없습니다. 국내에서 인체에 삽입하는 마이크로 칩을 실제로 사용하는 곳은 모 의학연구소에서 심장이나 뇌 기능과 관련해서 의학연구용으로 마이크로 바이오 칩 등을 사용하는 경우는 있다고 하는데요. 우토란트처럼 사유지에서 사적인 그룹 형태에서 마이크로 칩을 사용하고 있다는 자료는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애완견이나 애완묘 등 동물들에게 삽입해서 관리하거나 도난이나 분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동물에 이식하는 경우는 제법 많이 확인이 됩니다. 따라서 인체에 삽입된 마이크로 칩과 관련해서는 아무래도 내부자, 즉 우토란트 어반 구역에서 근무하고 있거나 생활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직접 제보를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수고했어 김형사.”


정수호는 마이크로 칩과 관련해서는 우토란트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고, 전에 정수호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던 김연수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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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월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꿈 많던 학창시절에 시, 수필, 소설 등을 끄적이며 작가가 되겠다고 호기롭게 객기를 부렸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야 진짜 작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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