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순 없다.
지금까지 월급쟁이로 살아오면서 힘겹게 모아 둔 돈을, 조그마한 아파트라도 하나 장만하려고 차곡차곡 모아 오던 그 돈을, 가만히 앉아서 부동산 사기꾼들에게 모두 빼앗길 수는 없었다.
B는 직장 동료 조카도 지역주택조합 사업의 피해자가 되어 이미 납입한 돈을 되찾기 힘든 상태라는 생생한 얘기를 듣고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직장에 하루 휴가를 내고 자신이 가입한 조합에서 사업을 추진 중인 주소지로 차를 몰았다.
B는 그곳에서 자신의 눈으로 직접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지,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것이 어느 정도 되는지,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지 등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은 옛날 주택들, 상가 건물들, 공장 건물들, 공터 등이 혼재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개발이 필요해 보이기는 하였다.
카센터 앞에 차를 잠깐 세우고 사장님에게 타이어 공기압 체크를 부탁하며 물었다.
"이곳에 지역주택조합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데 혹시 사장님은 그런 얘기 들어보셨나요?"
"그런 얘기가 들리긴 합디다. 그런데 그게 뭐 쉬운 일인가요. 몇몇 지주들은 땅을 팔긴 했다고 하던데 그 이후로 다른 지주들이 더 높은 금액을 요구하고 있어서 쉽지 않을 거라던데.... 왜요? 여기 조합에 가입하셨어요?"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관심이 있어서요. 이 지역에요."
B는 자신이 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서 그렇게 말했다.
"글쎄요. 관심을 안 갖는 게 나을 거예요. 주민들이 다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들어서는 거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일부는 찬성하지만...."
"사장님은 어떠세요? 아파트 들어서는 거요."
"여긴 내 건물이 아니라서요. 나도 건물주한테 월세 주는 사람이고, 건물주가 여길 팔면 나가야 하니까 난 일단 반대죠. 근데 어차피 지주들이나 건물주들의 의견이 중요하지 세입자들이야 뭐...."
B는 카센터 외에 다른 몇몇 주민들을 만나서 자연스럽게 같은 질문을 건네 보았다. 그들의 대답은 카센터 사장의 대답과 대동소이했다.
'그래! 역시 뭐든지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서 확인을 해야 해. 직접 주민들의 반응을 보았으니, 이제는 자치단체에 정식으로 관련 자료들을 요청해서 확인해 보자'
B는 직장 동료의 조카 얘기를 직접 듣고 난 후, 대오각성했다. 위기감이 피부로 직접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뉴스 기사에서 느끼던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었다. 가까운 사람의 조카가 직접 지역주택조합의 실질적인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그를 각성하게 만든 것이었다. 자신에게도 현실적으로 곧바로 닥쳐올 위기였기 때문이다.
B는 틈이 나는 대로 집이나 직장에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모았다. 이번에는 어떻게 지역주택조합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탈출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실행했다.
인터넷 국민신문고에 접속해서 해당 자치단체에 '○○○지역주택조합'에서 추진 중인 사업에 대한 자료를 요청하는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해당 자치단체에서 B에게 보낸 답변에 의하면, 업무대행사의 해당 지역 토지확보율은 40%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B가 계약서를 작성할 당시 업무대행사 측에서 말한 토지확보율은 80%였다.
사기 또는 허위과장광고에 해당되는 내용이었다.
또한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영향평가도 통과하지 못하고 재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그런 상태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은 비슷비슷한 용어들을 섞어서 사용했던 것 같았다.
토지확보율 80%, 토지사용동의서 80%, 토지사용승낙서 80% 등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각종 서류들과 인쇄물을 보여주고, 주민들의 도장이나 사인이 있는 서류들을 보여주었었다.
전문용어를 사용하면서 명확한 수치와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믿음이 가는가 보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직접 본인이 확인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B도 그랬다. 그들을 그냥 믿었다.
B는 이제 그들이 하는 말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서류들은 믿지 않기로 했다. B는 오로지 자신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거나 공공기관에서 보여주는 공문서만 믿기로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당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곳은 아직 정식으로 조합이 결성된 것이 아니었다. 사업 '추진위원회' 단계였으며, 조합장도 '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그게 팩트였다.
조합이 정식으로 결성된 후에 사용해야 할 명칭이나 직함 등을 조합 결성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으며, 조합장 직인을 찍어 계약서를 작성하고, 조합장 명의로 문서를 생산해서 발송하는 등의 일을 벌인 것이었다.
B의 생각은 확고해졌다. 이것은 분명히 사기다. 허위과장 광고로 서민들을 현혹해서 계약서에 사인하게 하고, 그들로부터 계약금 등을 받아 돈을 챙기는 전문 사기꾼들.
그러나 개인이 부동산 전문 사기꾼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그나마 승산이 있을 듯했다. 그래서 B는 그런 자료들도 모두 찾아보았다.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한다는 것은 부동산 전문 사기꾼들과 길고 긴 법정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는 지루한 싸움이었다. 또한 변호사 선임 비용도 문제였다.
사기꾼들 손아귀에 들어가 있는 내 돈을 찾기 위해서 추가로 상당한 액수의 돈을 더 지출해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길고 긴 법정 싸움에서 내가 선임한 변호사가 이겨야 하며(그게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음), 그런 후에도 내가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에 사기꾼들이 조합원들의 돈을 사업 추진 명목으로 다 소진해 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B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했다. 스스로 해결해 볼 수 있는 모든 방법과 경우의 수를 나열해 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B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자신의 여건이나 사정 등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은 과감하게 배제했다. 되도록 빨리 실행에 옮겨야 했다. 그만큼 위기감이 크게 다가왔다.
일단 B가 할 수 있는 것은 업무대행사 등 사업 관련자들이 배포한 홍보용 책자와 인쇄물, 계약서 등에서 법령을 위반한 내용들을 찾아내고, 자치단체에서 답변한 공문서 내용과 그들 사입자들이 제시하거나 말한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다른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문서화하는 것이었다.
그 작업을 위해서 B는 역시 인터넷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B가 했던 문서화 작업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런 것이었다.
1. 지역주택조합 사업 관련 언론 기사들에서 법령 위반 사례 수집 - 사기꾼들이 주로 어떤 행위를 해서 조합원을 모집하고, 그 행위가 어떤 법을 위반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
2. 지역주택조합 관련 사업자들이 형사입건 되거나, 법적 분쟁(민사소송)에서 패소한 사례와 관련된 판례 자료 수집 - 이 역시 사기꾼들이 어떤 행위를 해서 법을 위반했고, 그 결과로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 등을 알기 위해서.
3. 계약을 취소하기 위한 자료 수집 등 - 사업 관련자들의 일련의 행위(사기, 허위과장광고 등)가 계약 취소 사유가 된다고 판단하고, 계약 취소를 위한 최고장 작성, 내용증명 작성 등 학습.
이 외에도 B가 사기꾼들에게 반격을 하기 위해 혼자서 공부하고 노력한 내용들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상 그리고 B의 노하우와 노력의 결과물인 전자책의 저작권과 관련된 내용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을 더 이상 기재하지 않고, 여기서 줄이는 것을 독자들께서는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B는 자신이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노예계약에서 탈출하고 계약금 등 납입금 전액을 돌려받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자책으로 엮어서 '크○'이라는 사이트에 올렸다.)
다음 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