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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 열매 올리브 Feb 05. 2023

[활자 산책 ①] 나를 밀어내다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읽고

제목으로 볼 때 분명 쉽사리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은 아니었다.

얼핏 보면 따분한 종교서적 같기도 했고, 나이듦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읽어야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나의 단편적인 생각은 때로는 독서 그 자체의 결핍을 야기했을 수 있다. 어쩌면 나는 정체되어 있던 틀을 깨고자 이 책을 선정했을 것이다. 본래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그 장르가 어떻든 미약한 지식이라도 쌓이길 바랐으나, 이번 독서에서는 그저 마음을 비우고 한 문장 한 문장을 편하게 흘려보내기로 했다. 단, 너무 많이 흘리지는 않기를 다짐하며.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태어나고 자라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아마 이보다 더 삶을 정확히 묘사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나이듦을 그 누구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곱게 나이를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안내서가 아니라 강조한다. 그저 자신의 경험을 투영하여 나이듦의 프레임을 변화시키게 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의 삶을 가장자리에 놓고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제나 주인공의 시선에서, 중심을 벗어나지 않았던 우리네 삶을 떠올려보자. 남에 비해 뒤처지진 않았는지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나날들이 스쳐가지 않는가. 삶의 중앙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가장자리는 멀게 보였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러했다.


 저자 파커는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 가장자리라 함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이며 새로움을 받아들이게 하는 또 하나의 시야이다. 나이가 들어도 지혜가 더해져 현명한 이가 있고, 고집을 피우며 주변을 힘들게 하는 이도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누구나 전자처럼 늙어가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혜는 나이가 듦에 따라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었다. 분노와 사랑, 고뇌와 기쁨이 적절히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삶의 지혜를 쌓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세대와 세대의 만남은 지혜로움을 더욱 증대시켜준다.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은 젊은이와 노인은 분절된 사회를 융합하는 따뜻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의 차이와 성향의 다름은 극복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나, 적어도 젊은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미래의 불확실함을 경험한 노인은 손내밀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가 새로이 피어나면 찬란함은 배가 되어 노인에게 돌아오기에.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자기성찰적인 표현일 수 있겠다. 대부분의 성직자가 그러하였듯이 말이다.

노년기에 가까워질수록 이 물음은 젊은 시절보다 더 자주 떠오른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사실 나는 삶뿐만 아니라 모든 현상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다만 그 출발점이 삶 그 자체라면 조금은 책임감을 지니며 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된 의미에 도달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으나, 삶은 꽤 긴 여정이기에 끊임없이 고심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언젠가는 종착지에 다다를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당장 저 물음에 꼭 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어진 답도 없거니와, 설령 삶의 의미를 깨우쳤다고 해도 그 해답이 자기 자신을 구속하게 된다면 그것은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에게 남은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만물 가운데 하나일 뿐 그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는 저자의 한 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가 지긋한 작가다.

그는 마흔이 넘어서 첫 책을 출간했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책이 나오고 강연을 하면서도 그의 본업인 글쓰기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저마다의 일이 버거워질 때, 나 역시도 언젠가는 맞닥뜨리겠지만, 이러한 경우에는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침 4장, 일과 소명에서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하여 한 장 한 장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돈을 버는 수단이 어떻건 간에 직업적 소명과 소신을 바로 한다면 자신이 정해놓은 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다. 특히 이 소명은 자신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일을 할 때 가장 명료하게 드러나는 법이다. 물론 중간 중간 찾아오는 어둠의 침체기를 피하기는 힘들겠지만, 상황을 마주한 본인이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즉,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인 의미를 부여하는 소명은 우리 모두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독서를 마친 나는 어느새 삶의 가장자리로 훌쩍 밀려나 있었다.

늘 한 가운데를 고집하며 모든 일에 관여하려 했던 마음은 저만치 내려두었다.

파커가 일생을 두려움 속에 살아왔듯이,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 쫓기며 급급했을 수 있다. 누군가는 스릴 넘치는 인생이지 않냐 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허나 한 가지는 분명할 것이다. 어둠과 불운이 지배하는 삶이라 해도, 절망에 탄식하는 순간이라도 그것이 자신을 멈추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하여 나는 앞으로도 가장자리에 종종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중심에 있었을 때는 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자신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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