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냄비를 가지고 왔다.

by 언젠가는작가



주말 친정에 갔다가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엄마의 냄비 하나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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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킨터치’ 라는 미국 스테인리스 냄비인데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지금은 회사가 없어졌고, 시중에 거래되는 냄비들도 거의 없더라.

하지만, 나에겐 이 냄비에 관한 수 많은 기억이 남아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6살? 7살 즈음인 것 같다.

그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4층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5층 아줌마 집에 엄마랑 갔었다.

그 집에서는 요리사로 보이는 멋진 아줌마가 우리 엄마를 비롯한 동네 아줌마들 앞에서

요리를 하고 있던 기억이 난다.

지금으로 말하면 요리 시연 같은 거겠지?

엄마는 지금도 말한다.

이 스테인리스 냄비는 주삿바늘을 만드는원재료로 만들어서 인체에 무해하다고.

아마, 요리 시연하며 들은 말이겠지?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냄비는 며칠 후 우리 집에서 만날 수 있었다.

지금 엄마 집에 남아있는 냄비는 대형곰솥, 작은 곰솥, 그리고 내가 가지고 온 전골냄비

3가지뿐이지만 30년 전 엄마는 작은 주전자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작은 냄비부터 크기별로, 찜기까지 세트로 구입했던 엄마.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살이에 이렇게 고가의 수입 스테인리스 냄비를 들이다니.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수입 스테인리스 냄비를 하나도 아닌 세트로 들였을까?

신용카드도 사용하지 않던 그 시절이라 매달 고지서로 납부하는 방식으로 냄비세트를 구입했겠지?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 집에서 열 일 하던 쿠킨터치 냄비들.

초등학교 시절에는이 냄비로 혼자 라면도 많이 끓여 먹고,

찜기 냄비에는 아빠와 호빵, 만두를 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 냄비로 수 백번의 김치찌개를 먹었고

가족의 생일날에는 엄마는 가장 큰 곰솥을 꺼내 소고기 잔뜩 넣고 미역국을 끓였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여전히 쿠킨터치 곰솥냄비에 한 가득 미역국을 끓인다.

우리 가족의 생일을 30년 넘게같이 보내 온 산 증인이네?

이 냄비는 마법의 냄비처럼 엄마가 가끔 음식을 태워도 수세미질 몇 번 하면 그을음들이

감쪽같이 없어지곤 했다.

나뿐 아니라 엄마는 이 냄비에 대한 더 많은 추억들을 가지고 있겠지?

지금으로 따지면 샐러드마스터급 냄비를 겁도 없이 세트로 지른 엄마.

다달이 갚아나가야 하는 냄비 값 걱정보다 가족들에게 좋은 냄비로 건강하게

음식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겠지?

중간중간 손잡이가 타고 바닥이 들뜬 냄비들은 버리고 남아있는 건 대형 냄비들뿐이다.

내가 가지고 온 전골냄비는 엄마가 거의 사용하지 않아서 세월의 때만 묻어있을 뿐

사용하기에는 전혀 문제없다.

30여 년 전 이 냄비를 집에 들였던 엄마의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닮았나 보다.

명품 백보다, 백화점 옷보다 좋은 주방용품이 더 좋다.

결혼할 때 남편에게 받은 루이비통이 내 명품 백의 전부다.

결혼하고 내가 사들인 주방용품은 음.. 얼마나 샀나;;;

주방용품들을 안 샀다면 명품 백 2-3개는 샀을 테지만 후회는 없다.

나에게는 명품 백보다

샤이니이즈백보다

주방용품이 더 좋다.

이런 내 마음을 엄마는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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