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여름, 서대문역 스타벅스

by 언젠가는작가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나는, 특히나 혼자 가는 스타벅스를 제일 좋아한다.

신메뉴가 없어도, 말 동무가 없어도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도 혼자 가는 스타벅스가 제일 좋다.

매장 안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혼이 나갈 것 같은 스타벅스여도 가끔은 너무 텅 빈 매장에 있을 때는

망하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남 걱정을 하게 되는 스타벅스도

어느 곳에 있던, 어떤 분위기던 스타벅스는 항상 좋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턴 경험을 쌓아야겠단 생각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전공을 살려 온라인 마케팅 대행사에 인턴 지원을 했고 그중 한 군데에서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우리나라 메이저급 신문사의 온라인인테넛 업무를 인턴으로 3개월 동안 근무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서울에 올라가 면접을 보고 출근 날짜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서울 생활이라 급하게 회사 근처에 고시원을 잡았다.

회사는 서대문역 근처였고, 고시원도 그 근처로 잡았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내 첫 서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창문도 없는 고시원,,,,

답답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서울 생활의 설렘으로 다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게 첫 출근을 했다.

그리고 절망했다.

온라인 마케팅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갑자기 텔레마케팅인가요...

그렇다, 온라인 마케팅으로 거창하게 포장하고 신문사에서 출판되는 각종 잡지들의 정기구독 판매를 하는 텔레마케팅 업무.

텔레마케팅 얘기는 없었는데, 왜 이 일을 하는 거냐 물었다.

이 일로 경력을 쌓은 후에 온라인 마케팅 부서로 가는 거라고 했다.

지금이라면 무슨 개똥같은 소리냐고 반박하며 당장 그 회사를 뛰쳐나왔을 텐데

그때 나는 사회생활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래, 텔레마케팅 일은 잠시 거쳐가는 단계일 뿐 나는 곧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거야.

이 생각으로 하루하루 출근을 했다.

하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팀원들도 일 년 넘게 이 자리 그대로라고 했다.

고시원 한 달 비용도 다 냈고, 서울로 인턴 생활하러 간다고 친구 가족들에게 자랑도 했는데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수 십 통의 전화를 하고) 퇴근하고 고시원으로 걸어오는 길,

스타벅스 간판이 보였다.

그때 나는 커피 맛도 잘 몰랐고, 그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카페 가는 일이 일상처럼 느껴지는 시기는 아니었다.(적어도 가난한 대학생인 나에게는)

창문도 없는 코딱지만 한 고시원으로 돌아가기는 싫었기에 스타벅스에 들어가서 가장 싼 음료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

그전까지는 쓰기만 하고 맛도 없는 아메리카노를 왜 사 먹나 이해 못 했는데 그때 마신 아메리카노가 얼마나 맛있던지.

그 커피 한 잔이 노곤한 하루를 보낸 나를 충분히 위로해 주었다.

스타벅스 매장 특유의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고시원 작은방에서 느낄 수 없었던 따스함이 느껴졌던 스타벅스 매장.

결국 나는 그 텔레마케팅 업무를 2주 동안 하고 그만두었다.

그 와중에 정기구독권도 팔았다고.

시킨 일이라 일을 했고, 운 좋게 판매까지 해서 실적도 올렸지만 중간에 그만둬서 급여는 1원도 못 받았다.

그 후로 채용공고 사이트에서 그 신문사 이름으로 올라오는 인턴 공고를 긴 시간 동안 볼 수 있었다.

취업사기라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인턴 경력 쌓고 싶어 하는 대학생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채용공고를 내다니...

게다가 그 당시에는 '열정페이'라는 말로 제대로 된 급여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는 회사들이 많았다.

지금은 이런 회사들이 없기를!!!

나의 고단한 첫 서울 생활을 위로해 주던 서대문역 근처에 있던 작은 스타벅스,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현재 서대문역 주변에 몇 개의 스타벅스가 있는데 18년 전 나를 포근히 안아주던

작은 스타벅스는 없어진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내 마음속 스타벅스 최고의 매장은 서대문역 스타벅스다.

몇 번 출구 근처에 있던 매장인지조차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작았던 그 스타벅스 매장의 온기는

아직도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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