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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는작가 Jun 07. 2024

왜 조리실무사를 하냐고요?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기 전에 사립학교에서 사무업무를 보는 일을 했었다.


그 학교에는 나의 절친이 교사로 일하고 있기에

종종 학교 소식과 친분 있던 선생님들의 소식을 전해 듣곤 한다.


며칠 전,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내가 그 학교에 있을 때같이 근무했던 기사님이 내 안부를 물었단다.

나의 안부를 물으며 친구에게 조심스레

“갑자기 왜 학교를 그만두고 학교 급식실에 간 거예요?”

라고 물으셨단다.


나는 38살의 가을, 조리실무사로 일을 시작했다.


첫 발령을 받고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의 교무 실무사 님과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서먹한 관계였기에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나에게 궁금하다면서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왜 조리실무사를 하게 된 거예요?"



조리실무사로 3년 동안 일하면서 수없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지금까지 본 조리실무사 중에서 가장 어리다.

라는 말이다.


38살의 조리실무사를 시작한 나에게

사람들은, 세상은 궁금한 게 많나 보다.


왜?

왜 하필 이 일을 시작하였나?





지방대학교에서 장학금도 받아 가면서

나름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었다.

경영학과와 광고홍보학을 복수전공할 만큼

배움에 대한 욕심도 있었고,

나는 항상 내 전공을 살려 일을 하며 살아가겠다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진 않는 법.


결혼 전까지는, 그리고 출산 전까지는

전공을 살려 마케팅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도 해 보고,

관리팀에서 경영기획업무도 해보고,

경리 회계 업무도 해가며 나름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첫아이를 낳고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사표를 냈다.

나는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때는 넘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직접 아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2013년 3월 첫아이가 태어나고,

출산휴가 3개월을 쓰고 난 후

2013년 5월 퇴사를 했다.

지금은 육아휴직이 보편화?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육아휴직을 사용한다는 것이

회사에 상당한 눈치가 보이던 시대였던지라 육아휴직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고 퇴사를 했다.


정확하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 월급 실수령액은 220만 원 정도였다.

매월 통장에 220만 원이 들어오는 것보다

아이와의 달콤한 일상이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나는 그때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 것이다.


2014년 10월 둘째를 출산했다.

18개월의 연년생을 키우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상이었다.

그 당시의 찍은 내 사진들을 보기 싫어하는 이유가, 내 몰골을 영~ 볼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되기는 했지만, 그 시간들이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들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누워있고, 뒤집기 시작하고,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발걸음을 내딛고, 첫 이유식을 먹고, 그 모든 순간을 내가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엄마인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아이의 성장을 전해 들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직접 경험했다.



그렇게 둘째 아이가 18개월이 되고 어린이집에 가면서 나도 이제 일을 다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2013년에 퇴사를 하고, 2016년 다시 일을 시작해 보려고 하니, 내 위치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열정 넘치는 사람인 건 변함이 없었지만 아이들의 어린이집 등원, 하원 시간에 맞춰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 필수 조건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렸다.


2013년 퇴사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

연봉, 복지가 좋은 회사를 찾았었지만

2016년 나는 출근 시간이 늦고, 퇴근 시간이 빠른 회사를 찾는 것이 1순위가 되어 버렸다.


월급이 적더라고,

일이 고되더라고,

내 전공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회사 복지가 개떡같아도

출퇴근 시간만 나에게 맞으면 딱이었다.


그렇게 나는 전공과 다른, 지금까지 해 본 경력이 없는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회사에 일하면서

가족 같은 회사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고, 건설회사 하청을 맡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갑질 하는 회사 직원의 부당한 업무지시와 버럭 거름도 경험했었다.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으니 내년부터 월급을 깎겠다는 말도 안 되는 통보도 받아봤다.


내가 억울하고 분함을 표했지만 그 누구도 나를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비정규직, 계약직이었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가진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그만두면 그들은 누군가를 또 고용하면 그만이었다.


나의 억울함을 같이 공유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물론 신랑과 친한 친구에게 나의 억울함과 분함을 얘기하기도 했지만 얘기하고, 위로받고 거기에서 끝날 뿐이었다.

나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들던 시기에

첫아이의 초등학교 입학도 앞두고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 방학 동안 누가 아이를 봐주지?

학원 셔틀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번에도 나는 아이의 방학을 같이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 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외벌이는 계속 외벌이를 할 수 있지만,

한 번 맞벌이를 시작하면 맞벌이를 그만 둘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맞벌이의 수입에 익숙해져 있기에 다시 외벌이의 수입으로 돌아가기란...




그 간 일을 하며 내가 경험했던 부당함을 함께 공유해 줄 수 있고,

아이의 방학 기간에는 쉴 수 있는 일을 할 수 없을까?


학교에서 근무를 했었기에 일반 기업보다 학교의 퇴근시간이 빠름을 경험해서인지 학교 안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학교에서 일을 하면서, 방학 때 쉴 수 있는 직군은?


이 즈음 조리실무사의 공고를 보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조리실무사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조리실무사는 교육공무직에 속해 있는 많은 직군 중하나이다.

교육공무직 무기계약직으로 내가 원하면 정년까지 일할 수 있고, 노조가 있어서 혹시나 나에게 생기는 부당함을 공유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방학 때도 비급여이긴 하지만 쉴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점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기에 나는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왜? 하필? 왜 하려는 거야?

다 이런 반응이었다.


친정엄마는 내가 너 설거지나 하라고 대학 보낸 거냐고까지 말씀하셨을 정도다.


솔직히 이게 조리실무사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다.

나도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안 하진 않았으니......


지금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자아실현도 아니고, 큰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들과 좀 더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가정일을 등한시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이들이 1순위였기에.


다행히도 첫 발령지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좋은 학교 분위기에서 잘 지내고 있다.

보건휴가, 연차, 조퇴 등 그 어느 하나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8시 40분 출근, 4시 40분 퇴근인데

나는 매일 조퇴를 사용하여 1~2시간 일찍 퇴근하고 있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에 도착해 저녁 준비도 여유롭게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리사와 나 둘이 근무하고 있어서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로감도 없다.


하지만 나도 가끔 현타가 온다.

무상무념으로 식판을 닦으면서,

무거운 음식물 쓰레기를 들으면서,

여기서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불쑥 드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조리실무사 아닌 다른 일을 하더라도

일하는 순간의 빡침은 다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쿨하게 넘겨 버린다.


물론 조리실무사 외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을 다 누릴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내린 결정을 내가 존중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아이들은 점점 자라고 있고,

엄마인 나와 보내는 시간보다 친구를 더 찾게 되고,

학교,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도 줄어들겠지.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간들을 후회 없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몸이 고되도 책을 꾸준히 읽고 있고,

상담사 관련 자격증 준비도 꾸준히 도전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먼 훗날 38살의 내 선택이 후회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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