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ery

ㅡ그것이 알고 싶다

by 지얼


아주 오래전 이야기.

서른 살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길을 가는 도중에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엔야의 <Caribbean blue>를 듣는다. 음악은 청각을 자극하더니 곧 어렵지 않게 과거에의 기억을 소환한다. 기억은 대딩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유럽의 프로그레시브 롹 음반-그것도 희귀 음반 이외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슴'이라는 별명의 한 후배에게 물었다.

"야, 여자 친구(사실은 짝사랑하는 여자)한테 선물할 건데, 어떤 음반이 좋겠냐?"

"글쎄요... 아트롹 밴드인 방코나 싸이키델릭롹 밴드인 브레인티켓 같은 게 좋겠죠?"

"진심이냐?"

"농담이에요. ㅋㅋㅋ.... 여자 친구이면 아무래도 듣기에 편한 게 좋겠죠?"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Air Supply나 Enya 정도면 되겠네요."

"엔야가 누군데?"

"모르세요? 아일랜드 가수인데, 듣기 편해요."


https://youtu.be/T5vdZKGiDiE?si=N47vSgUUzb-CTImz

Caribbean Blue


그리하여 레코드 가게에서 <Caribbean blue> 음반을 구입하여 수지(가명)에게 주었다. 아마도 생일선물이었지 싶다.

세월이 한참 지났을 때, 나는 그 음반을 선물했다는 사실도, 그 노래도 잊었다. 당시엔 음악에 관한 지적 허영심이 가득하여 소위 '이지리스닝'계열의 음악은 그냥 패스했으니까.

그렇게 잊힌 그 시절의 음악이 우연히 지나간 어떤 동네의 레코드샾을 통해 그렇게 재현되었다. 아마도 수지를 못 보게 된 지 4,5 년 여의 세월이 지난 후였을 거다.

새삼 느껴지는 편안한 목소리, 듣기 좋은 멜로디, 그리고 놀라운 레코딩 기술.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음악은 세월의 저 건너편에서 기억의 단편을 실어왔다. 마치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가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잊어버린 시간을 찾아준 것처럼.

아, 기억의 집요함이란.... 이제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세상 이치에 따라 마음속에서 정리(整理)된ㅡ아니, 정리되었다고 믿은 그녀의 자취다. 아, 그런데.... 자취뿐이다. 실려 온 그 무언가에는 그녀의 얼굴이 없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박인환 시인은 이렇게 썼지만, 아마도 문학적 겉멋으로 그랬을 거다. 단언하건대 사랑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잊히는 건 이름이 아니라 얼굴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게 되면 뭔가 안구에 잡힐 듯 말 듯하다가 결국엔 세밀함은 사라지고 어룽거리는 얼굴만이 남는다. 심한 경우엔 프란시스 베이컨의 인물화처럼 뭉개져 버린다.

따라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안'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없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안 본 지 고작 4,5 년 정도가 아닌가. 조기 치매 증세가 오는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 세월의 경과가 어떻게 수지의 얼굴을 뭉갤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보다 더 기묘한 것은 비교적 그녀를 자주 만났던 시절에도 그녀의 얼굴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어제 만났던 수지의 얼굴을 오늘 잊는다는 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그랬다. 그러니 4,5 년이 지난 당시의 그때에, 그것이 그렇게도 특이하게 여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90년대 후반의 영화 <비트>에서, 민이(정우성 분)가 로미(고소영 분)를 생각하며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다. '이상하게 로미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당시에 이 장면을 보고 세상에는 나 같은 안면 기억 장애 환자가 있기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엔야의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던 그날로부터 3 년여 전에 내가 살았던 동네에서 가장 큰 서점인 교민문고에 들른 적이 있다. 딱히 구매하고 싶은 책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서점에 들를 때는 어떤 책을 특정하고 가는 건 아니다. 책 제목을 보고 끌리는 것이 있으면 대충 훑어본 후에 구매를 결정하는 식이다.

당시에 일찍 아르바이트가 끝났기 때문에 시간은 남아돌았고 만날 사람도 없었으며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아마도 여기라면 한 시간은 때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서점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나는 수지의 희끄무레한 얼굴과, 망각의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였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어째서 수지의 얼굴은 세월의 경과에 무관하게 뭉개져 버리는 걸까? 어제 본 얼굴이 오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생각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때 왜 하필이면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진열대 위의 베스트셀러들은 무심히 지나쳐 버리고 지적 허영이 이끄는 대로 인문학 서적이 꽂혀 있는 책장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눈에 쏙 들어오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사랑의 지혜>라는 제목의 철학에세이였다. '철학이라니...보나 마나 어렵겠군.' 이런 생각을 하며 무심코 아무 데나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때.... 단 한 번의 책장 넘김으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드러난 페이지의 좌측 상단에는 이런 소제목이 쓰여 있었다.


가려진 아름다움


그 소제목 아래의 장문을 대충 훑어 내려갔다. 그리고 해당 페이지의 하단에서 촌철살인과 같은 한 문장을 발견했다.


"즉,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얼굴을 기억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문장이었다. 뭐지? 이런 것도 일종의 신탁인가? 아니면 그저 우연일까?

다시 소제목 아래로 가서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보았다. 그러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꽃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를 인용한 글을 만났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탐색하는 듯하고, 불안해하고, 자꾸만 요구를 더하게 되는 태도, 다음번 만날 약속에 대한 희망을 주기도 하고 빼앗아가 버리기도 하는 말들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이 말이 입 밖에 나올 때까지 우리의 머릿속에서 교차되는 기쁨과 절망, 이 모든 것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우리의 주의력을 너무나도 흔들어 놓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좀 더 아래에 이어지는 문장.


"... 그렇지만 일단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는 그에 관한 흐릿한 사진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아... 위대한 프루스트.

저자인 알렝 핑켈크로트는 이렇게 아름답게 묘사한다.


"... 사랑에 빠진 사람은 형편없는 예술가이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이며, 표현할 수 없음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한 시인이다. 사랑에 빠진 눈과 예술적인 눈은 서로 용납되지 않으며, 서로 묵인하는 일도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지닌 특권(혹은 숙명)은 어렴풋함보다는 명확함을 취하는 것이고, 움직임을 초상으로 바꾸는 것이다....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은, 그 얼굴의 화려함 때문에 길들여지기에는 너무도 생생하다. 지나친 주목은 사랑에 빠진 시선을 혼란시킨다."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에 어린 모든 것은 그의 주의를 불러일으킨다.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슬픈 표정과 움찔한 경련, 어렴풋한 기미와 몸 떨림, 미소와 분노. 사랑받는 사람의 얼굴은 기호(記號)의 더미이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것을 선별할 힘이 없다. 이와 반대로, 예술은 그것을 양식화하는 행위이다. 그중에서 쓸데없는 것은 지우고 중요한 것만 남기는 능력이다. 반대로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극도로 중요하다. 그러기에 그는 도저히 살기 힘든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 상대방의 억양이 변화해도 어쩔 줄 모르고, 한 순간의 이별도 불안을 일으킨다. 그에게는 오직 징조만 있을 뿐, 상세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 각각의 징표는 신비를 더욱 짙게 만들 뿐이다. 그가 지닌 정열 탓에 그의 사전에 '별 것 아니야'라는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는 균형 감각을 지니지 못한다. 사소한 과실을 비극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절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별것 아니라고 하여 휴전하는 기술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사랑받는 얼굴에 평온한 이미지를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 우리는 우리가 사랑을 바치는 대상보다 우위에 서는 일이 없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는 통찰력을 발동시킬 만한, 또 상대방의 상징적인 점유로 인하여 자기 포기를 해야 하는 가혹한 시련에 대한 보상으로서 최소한의 여유와 평온도 결여되어 있다. 사랑은 얼굴에 대한 신앙이며, 예술에 의해 얼굴을 표현하는 행위는 오히려 금지된다. 사랑의 서정에 대한 끝없는 찬미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랑받는 얼굴은 모든 것으로부터, 심지어 사랑의 결정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얼굴의 아름다움으로부터도 달아난다. 그것은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은 난해해서 읽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예지처럼 이런 구절을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니, 이런 것이 단순한 확률의 문제일까? 그 어떤 것이 나를 이 구절들로 이끌었을까?

아니, 신탁 같은 건 없다. 이건 단지 우연일 뿐이다. 한 번의 책 넘김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삶의 답안.

작위적으로 들려도 할 수 없다. 엄연한 사실이니까.


영화 <유리의 성>



'사소한 과실을 비극으로까지 발전시키는 절묘한 기술을 가지고 있고, 별것 아니라고 휴전하는 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그렇게 솔로이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그 상황이 계속되었더라면, 변화하는 상대의 억양과 표정에서 마음을 읽어내는 독심술로 자신을 학대하는 상황에 지쳐서 스스로 발길을 돌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결국 11월의 눈 내리는 어느 날인가, 독심술 따위는 불필요하게도, 그녀의 육성을 통해 진심을 들었고 그날 저녁, 유별나게 가로등 불빛이 부옇게 번졌음을 기억한다.

학교 근방의 후배 자취방에서 일체의 주류 없이 하루를 머문 후,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왔고 교민문고에 들러 <미학의 이해>라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책을 구입했다.

헤어진 다음 날에 '미학의 이해'라니. 이런 것도 '승화'라고 해야 할까?

집으로 향하는 길에 비가 내렸다. 의도하지 않은 처량함은 순전히 내게 우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수머리를 타고, 반쯤 벌린 입으로 스며드는 물.


눈물인가 빗물인가

눈물인가 빗물인가

잊지 마세요

잊지 마세요


조용필 쌤의 <물망초> 노랫말이 떠오른다.

이 노래를 통해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것을 알았다.


나를 잊지 마세요


그러나 세월이 한참 더 흐르고, 서른의 나이를 지날 무렵에

잊었다.

그녀의 얼굴은 물론, 그녀의 존재가 가져다 준 중압감 또한 어디론가 휘발되어 버렸다.

그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에는 잊지 않겠노라고 다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잊지 않는 것이 영원히 지속될 당연한 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결국 잊었다. 망각이 복수의 한 방편이라서 잊은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냥 잊었다. 아니, '잊었다'는 말은 능동태이므로 잘못 쓰였다. 이렇게 써야 한다.

'잊혔다'라고.


때로는 기억하려 애썼다. 그런 데도 잊혔다.

그녀를 만났던 당시에는 '형편없는 예술가였고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화가'였기 때문에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라면, 지금은 세월의 마모, 혹은 기억의 부식이 흐릿한 얼굴에 망각을 더했으리라.

<Try to remember>의 노랫말처럼 과거를 기억하려 애쓰며 아주 잠깐 공유했던 그 시간들 속을 헤집어 봐도 그 얼굴은 없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세월이란 그런 것이고 차라리 망각은 축복이다.


마르셀 푸르스트는 내 오랜 의문점을 나름 해소해 주었다. 작금에 다시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를 펼쳐 든다.


하지만 질베르트는 여전히 샹젤리제에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난 그녀를 만날 필요가 있었다. 얼굴조차 기억이 안 났으니까.(...)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나는 질베르트가 내 눈앞에 자신의 모습들을 펼쳐 보였던 그 성스러운 순간들을 제외하고는 그녀 모습이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그녀의 미소뿐이었다. 아무리 기억해 내려고 애써도 사랑스러운 그 얼굴을 다시 그려 볼 수 없었고...(...) 질베르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기에 그녀의 존재를 망각하고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기꺼이 믿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미스터리가 풀렸냐고?

그렇지가 않다. 진짜 미스터리는 이후에 발생했다.

교민문고에서 프루스트 쌤의 가르침을 전수받던 날로부터 5,6 년쯤 지났을까. 어느 가을날, 친구와의 약속으로 신천역에 갔다. 인근의 먹자골목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다소 긴 생머리의 한 처자가 쓰윽 지나갔다. 그녀의 뒤태가 무심코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오랜만에 알 수 있었다.

그래, 수지는 이렇게 생겼었지...

수지의 얼굴이 표상으로서나마 명료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 또다시 무의식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그녀의 얼굴이 재현되는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이 일이 미스터리인 이유는 이렇다. 내가 그날 골목에서 본 것은 그 처자의 뒤태였지 얼굴이 아니었다. 따라서 지나가는 그 처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뒤태가 수지의 그것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키도 그렇고, 몸매나 각선, 그리고 신체의 비율이 그랬을 것이다.

기묘한 일이다.

뒤태가 닮았다는 이유로 어떻게 수지의 얼굴이 재현될 수 있었던 것일까?

단지 무의식 속 그녀의 형상이 지나가는 처자와 상관없이 우연히 그 순간에 의식 위로 올라온 것뿐이었을까? 그렇다면 그 전이나 그 후에는 어찌하여 그런 우연이 발생하지 않는 것일까?

이 기묘한 연관에 대해 그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확신한다. 수지의 얼굴은 지나가는 그녀의 뒤태가 촉매로 작용함으로써 의식 위로 올라왔다는 것을.


대체 어떤 인과로?

그것이 알고 싶다.



https://youtu.be/Fo4CTVL4BwI?si=Wdng3iANXXZDKD8v

영화 <유리의 성>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life was slow and oh so mellow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grass was green and grain was ye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삶은 여유롭고 너무나 달콤했었죠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초원은 푸르고 곡식은 여물어갔죠

Try to remember the kind of September
When you were a young and callow fe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9월의 그 날들을
그대는 젊고 풋풋했었죠.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떠오르거든
그대 기억을 따라가봐요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When no one wept except the w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When dreams were kept beside your pillow
Try to remember when life was so tender
When love was an ember about to billow
Try to remember and if you remember
Then follow, follow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삶이 평탄했던 그 때를
버드나무 말고는 누구도 눈물짓지 않던 그 때를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삶이 평탄했던 그 때를
당신의 베개맡에 꿈을 간직했던 그 때를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삶이 평탄했던 그 때를
사랑은 금방이라도 타오를 불씨같았죠
기억을 떠올려보세요, 떠오르거든
그대 기억을 따라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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