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

-서평 같지도 않은 서평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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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일산의 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인상적으로 남았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구매를 한 후 재독하였습니다.

특히 3장,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3장에서는 마르셀 푸르스트의 악명 높은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세간의 평에 대해 언급됩니다.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프루스트의 동생 로베르의 말처럼, "한 가지 슬픈 일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아프거나,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기 전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읽기 곤혹스러운 이유는 특유의 장황함 때문입니다. 프루스트는 한 송이 꽃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한 페이지를 다 씁니다. 콩브레 시절의 불면증에 대해서는 20페이지 넘게 서술합니다. 게다가 프루스트 특유의 그 만연체.... 이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뱀처럼 길게 늘어진 문장들 중에서 가장 긴 것은 제5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일반적인 크기의 활자를 이용하여 일렬로 배열할 경우, 그 길이는 약간 못 미치지만 무려 4미터에 이르고, 웬만한 와인 병의 아랫부분을 17번은 충분히 감을 수 있을 정도이다." (아래 사진 참조)

김연수 작가가 왜 이 소설을 두고 전화번호부보다는 조금 재미있다고 했는지(아니, 차라리 전화번호부가 더 재미있다고 했던가요?) 알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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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고 싶지 않다....



제 또래의 사람들에게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 때문에 유명해진 소설입니다만(사실 영화 <러브레터>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로맨틱한 제목에 이끌려서 국일미디어 출판사의 것을 두 권(스완네 집 쪽으로 1,2) 구매했으나.... 뭐, 대략 50여 페이지를 읽고 집어던졌던 기억이 납니다. 첫인상은 이랬습니다. '말 많은 마마보이 자식 같으니라고!'

세월이 지나서 민음사에서 새로 출판된 것을 사서 결국 <스완네 집 쪽으로>는 완독을 했습니다만, 제3권의 <꽃 피는 아가씨들의 그늘에서>는 잠정 중단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에 대한 프루스트의 견해에는 공감이 가는 바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절대로 읽지 않을 책'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는 않습니다(이 목록에는 <전쟁과 평화(톨스토이)>, <율리시즈(제임스 조이스)>, <순수이성비판(칸트)>등 아주 많습니다). 언젠가 다시 읽을 날이 있겠죠.


이 소설이 제게 영향을 끼친 것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만연체 쓰기'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만연체를 아주 싫어합니다. 다만 부러 만연체를 구사할 때 솔까 약간의 재미를 느끼지 아니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거지발싸개 같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후 감상평을 작성할 때 부러 만연체로 작성하곤 합니다. 만연체를 비아냥의 수단으로 사용한달까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일본에서 1위를 찍었다는, 넷플릭스 제작의 <블랙의 신부>.

한 줄 평, 아니 한 문장 평 :

-불로초를 먹은 것 같은 마흔다섯 살 김희선의 인생에 찬물을 끼얹은, 우영우와는 정반대의 캐릭터인 변호사 직업의 소시오패스녀와, 당선이 유력한 대선 후보지만 막상 대통령이 되면 누구처럼 꼴랑 24%의 지지율을 유지할 것만 같은 소시오패스녀의 아빠에게, 김희선을 사랑한 자산 2조 원의 존잘남 CEO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준석의 양두구육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빅엿을 먹임으로써 시청자들로 하여금 시원한 사이다 한 사발을 선사하기는 해도, '대체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자꾸만 유발하는 한국 정치, 아니 한국 드라마의 전통적인 막장스러움에 비난을 퍼부으면서도 결국에는 막장 자체가 지닌 강력한 인력으로 인해 거의 완주를 달성해


가는 존나 한심한 자신에 대한 강력한 현타를 인지할 무렵, 작가의 반전에의 중증 강박증이 표출된 마지막 장면의 전무후무하게 괴랄한 결혼식 장면에서 결국 멘붕 상태에 이르게 할 정도의 신묘막측한 연출로 인한 황당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알파메일이 아니면 결혼은 곤란하다는 진화심리학적 본능, 아니 통찰력을 지닌 여성일 경우 대리만족인지 상대적 결핍감인지 퍼뜩 판단이 서지 않을 얄딱꾸리한 감정을 선사할 것만 같은 드라마.]


(여러분도 함 해보세요. 나름 재미있습니다.)


프루스트가 대상이나 사건을 장황하게 묘사하는 이유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예컨대) 어떤 기사가 더욱 많이 압축되어 있을수록, 이미 부여받은 지면보다 더 많은 지면을 부여받을 만한 가치는 더욱 없어 보이게 마련이다." 예컨대 '여친에게 버림받은 20대 남성이 자살했다'는 압축된 형식의 글은 유일한 한 존재의 죽음을 단순화 함으로써, 우리가 알 수 없는 보다 실존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을 제거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프루스트의 주장은 바로 예술 작품의 위대함은 그 소재가 가진 외관상의 성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 소재에 대한 차후의 처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잠재적으로 예술을 위한 풍요로운 주제이며, 우리는 비누 광고에서도 파스칼의 <팡세>만큼이나 가치 있는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기차 시간표조차 재미있게 '읽었다'는 마르셀 프루스트. 어쩌면 김연수 작가가 전화번호부를 언급한 것도 다 이유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와..... 재밌다.....

이런 프루스트이다 보니, 표현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클리셰를 못 견뎌합니다. 예컨대 '비가 장대 같이 쏟아진다'거나, '그녀가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같은 빈곤한 표현의 클리셰들. 제5장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다루는데,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프루스트의 답장에 따르면, 이보다 더 그를 괴롭혔던 사실은 언어적 규약을 따르는 것이 항상 옳다고 믿은 사람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때에는 독창적이 되기보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들리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구사하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클리셰의 사용이었을 것이다."


저는 우리 집 '몽냥이(드림 캣)'를 보면 항상 혼잣말을 합니다. "아이, 귀여워. 귀여워 죽을 것 같아."

프루스트에 관한 글을 읽으니 새삼 나의 표현이 무진장 진부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의,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대화가 생각납니다.


["응, 응, 응, 무슨 말이든 좀 해 봐." 미도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옹알거렸다.

"무슨 말?"

"뭐든 좋아. 내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너, 정말 귀여워."

"미도리." 그녀가 말했다. "이름 붙여서."

"정말 귀여워, 미도리."

"정말이라면 얼마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말라 버릴 만큼 귀여워."

미도리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았다.

"너, 표현이 정말 참신해."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마음이 푸근해지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더 멋진 말 해봐."

"네가 정말로 좋아, 미도리."

"얼마나 좋아?"

"봄날의 곰만큼 좋아."

"봄날의 곰?" 미도리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뭔데, 봄날의 곰이?"

"네가 봄날 들판을 혼자서 걸어가는데, 저편에서 벨벳 같은 털을 가진 눈이 부리부리한 귀여운 새끼 곰이 다가와. 그리고 네게 이렇게 말해. '오늘은, 아가씨, 나랑 같이 뒹굴지 않을래요?' 그리고 너랑 새끼 곰은 서로를 끌어안고 토끼풀이 무성한 언덕 비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하루 종일 놀아. 그런 거, 멋지잖아?"

"정말로 멋져."

"그 정도로 네가 좋아."

미도리는 내 가슴에 꼭 안겼다. "최고."]


스크린샷 2025-04-15 오후 12.10.04.png 이거 진짜 촉감 끝내준다.....



프루스트와 와타나베에게 한 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마구 듭니다. 앞으로는 저도 클리셰 범벅의 애정 표현보다는, 다소 유치하더라도 보다 사적이고 개성 있는 표현을 구사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다음과 같이요.


["응, 응, 응, 무슨 말이든 좀 해 봐." 수지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옹알거렸다.

"무슨 말?"

"뭐든 좋아. 내가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너, 네 피부는 정말 부드러워."

"수지." 그녀가 말했다. "이름 붙여서."

"정말 부드러워, 수지."

"정말이라면 얼마나?"

"다이소의 지네만큼 부드러워"

"다이소의 지네?" 수지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뭔데, 다이소의 지네가?"

"음... 그것은 마치 1년 분의 콧물을 모아 적당히 건조시켜 약간의 수분기를 유지시킨 후에 빚은 것 같은, 물컹물컹한 감촉의 깜놀이용 지네 모형이야. 그런 거, 멋지잖아?"

"정말로 멋져."

"그 정도로 네가 부드러워."

수지는 내 가슴에 꼭 안겼다. "최고."]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의 제8장은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아... 그런데 이 8장은 안 봐도 무슨 얘기를 할지 충분히 예상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있을 때 잘하라고들 한다

없으면 후회하니까

그런데 있을 때는 잘하게 되지가 않는다

고로 있을 때는 잘 못한다


앙드레 지드는 <지상의 양식>에서 이렇게 피력하였습니다.

"욕망의 대상을 갖는다는 것은 그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어떤 욕망이든지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부하게 하여 주었느니라."


알랭 드 보통은 시크하게 이렇게 언급합니다.

[한 사람의 매력보다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발언이 사랑의 이유가 되는 경우가 더 잦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니요, 오늘 저녁은 한가하지 않아요."]


이런 실험이 있습니다.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는 철창 안에 원숭이를 가두고 구멍 위에 작은 전등을 설치합니다. 구멍을 통해 사과를 줄 때마다 먼저 잠깐 전등불을 켭니다. 학습효과에 의해 원숭이들은 전등불이 켜질 때마다 뇌에서 도파민 생성이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과를 받을 때는 도파민 수치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험자가 전등불을 밝힐 때마다 이번에는 사과가 아니라 건포도를 주었더니 그때부터 전등불이 켜질 때마다 훨씬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었다고 합니다. 불을 밝힐 때 다시 사과를 준 이후로는 불을 밝혀도 도파민 수치가 감소했다고 해요.

이에 대해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슐츠 교수의 이 실험은 정신이 반짝 들게 한다. 우리의 기대감이 높아질수록 행복해지기는 그만큼 더 어렵고, 또 기대했던 것을 막상 누리게 되어도 우리의 행복감은 상승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취에 대한 기대감만이 행복감을 높여줄 수 있다."

밑줄 쫙~입니다. "성취에 대한 기대감만이 행복감을 높여줄 수 있다." 고로 수월한 성취는 낮은 만족감만 주겠죠.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나 좀 바쁜데."

이게 다 알고 보면 상대방을 지극히 행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아님 말고요).


"나는 예쁜 옷이 참 좋아요. 하지만 기억하는 한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예쁜 옷을 입어 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그 편이 더 즐거울지도 모르죠.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으니."

ㅡ<빨강머리 앤>의 말.


손에 잡히기 어려운 존재만이 성취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고 합니다. 이것이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여주인공인 폴이 자기를 죽도록 좋아하는 영계 존잘남 시몽보다는 언제든 자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 같은 배 나온 바람둥이 아재 로제를 선택한 이유일 겁니다.


이게 어디 연애의 문제에서만 해당되는 일이겠습니까. 제가 무한의 자유를 느꼈던 순간은 군 입대 후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던 순간이었습니다. 연휴의 술보다는 퇴근 후 한 잔이 더 맛있고, 일 없는 백억 부자보다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 일 하는 50억 부자가 더 낫습니다(이에 대해서는 폴 블룸 교수의 <최선의 고통>을 추천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곁에 있는 장원영보다는 어쩌다가 어렵게 만나는 전원주가.......


....... 아, 생각해 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결론 :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추천합니다.



https://youtu.be/PYtodWuEvYQ?si=aGIrnQR3_JCRSTvU

Spitz의 <Shiro kuma(흰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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