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으면 그 인생 피곤해

-닥치고 걍 처먹어

by 지얼


"생각이 많으면 그 인생 피곤해."

-영화 <타짜> 중에서 아귀의 명대사



1. 금주에 대한 종교적 오해


비행기 공중 탈취를 하이재킹이라고 하던가. 이 말의 어원은 술과 관련이 있다는 썰이 있다.

20세기 초,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하던 시절이다. 금지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반발도 심해지는 법. '나는 욕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하여 술값은 수요/공급의 법칙에 따라 상승하고, 술 밀거래는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 된다.

하여 마피아, 혹은 깡패들은 밀거래되는 술을 운송하는 트럭을 털기로 한다. 방법은 이렇다. 지나가려는 트럭 앞에서 마치 운전수와 아는 사이인 척을 하며 외친다.

"하이, 잭~"

그렇게 차를 세우고, 총을 들이민다.


이 일화를 내 맘대로 아전인수하면 이렇다.

금기는 욕망의 결핍을 강화하고, 욕망의 결핍은 범죄를 유도한다(뭐, 아님 말고).

4월의 첫 일요일. 술 취하지 말라는 바울 선생의 말씀은 뒷전으로 하고, 범죄를 유도하지 않기 위한 인류애적 차원에서 오래간만에(사실은 3일 만에) 소주를 마시기로 한다.

'취하지 말고 적당히 먹으면 되지'하는 생각은 부질없다. 대체 취하는 정도를 어떻게 예견할 수 있단 말인가. 컨디션 좋을 때는 한 병을 먹어도 안 취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반 병에도 취기가 도는 것을.

아니, 그전에 취하지 않을 거면 대체 술을 왜 마신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는 개신교 신자 분들 다수가 술을 거부한다. 미국의 금주법 시행도 금욕적인 청교도의 후손인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한몫을 했다는데, 아마도 바울 선생이나 칼뱅의 가르침 때문이 아닌가 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있다고 한다. "악마가 인간들을 찾아다니기 바쁠 때는 을 대신 보낸다."


독실한 성도 분들과의 대화를 이렇게 상상해 볼 수 있다.


길순(가명) : 술은 드시면 안 돼요.

나 : 왜요?

길순 : 성경 말씀에 그러니까요.

나 : 그런 말씀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길순 : 왜 없어요. <잠언>에 포도주는 가까이도 하지 말라고 나와요. 그리고 신약 어딘가에 취하지 말라는 말씀도 있고. 그런데 술을 마시는 이상, 어떻게 안 취할 수 있겠어요?

나 :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도 (많이) 먹고 마신다고 당대 유대인들이 얘기했다는데요?

길순 : 그건 유대인들의 곡해죠. 게다가 당신은 예수님이 아니에요.

나 : 흠... 뭐 그렇긴 하죠. 하지만 취하는 게 뭐 어때서요. 보들레르는 아예 늘 취해 있으라고 하던데요?

길순 : 그 사람의 말은 성경의 말씀이 아니잖아요. 진리는 성경에 있어요.


'진리는 성경에만 있다'는 명제를 무조건적 참, 그러니까 공리로 못 박아놓는 분에게는 성경 외적인 근거로 논박할 수 없다. 고로 논박의 근거는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논박의 근거를, 솔로몬이 썼다고 전해지는(학자들에 의하면 솔로몬을 참칭한 다른 저자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전도서>에서 찾았다. '헛되고 헛되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염세주의적 세계관으로 유명한 전도서 말이다.


사람에게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자기가 수고에서 스스로 보람을 느끼는 것,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알고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

ㅡ2장 24절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총이다.

ㅡ3장 13절

(...) 세상에서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것으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좋은 것임을 깨달았다! 이것은 곧 사람이 받은 몫이다.

ㅡ5장 18절

나는 생을 즐기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ㅡ9장 15절

지금은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을 좋게 보아주시니, 너는 가서 즐거이 음식을 먹고, 기쁜 마음으로 포도주를 마셔라.

ㅡ9장 7절

잔치는 기뻐하려고 벌이는 것이다. 포도주는 인생을 즐겁게 하고, 돈은 만사를 해결한다.

ㅡ10장 19절


음주 예찬에 관한 구절이 무려 여섯 군데다. 나는 기꺼이 "아멘"을 외친다.

구약성경에서 전도서는 어둠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빛난다. 이로써 나는 대적의 무기를 상대방의 무기창고에서 구했다.

인터넷에서 일본의 한 술집에 적혀있는 명언을 발견했다.


"술이 사람을 못된 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 못된 놈이라는 것을 술이 밝혀준다."


밑줄 쫙~~ 이다. 고로 "술이 '웬수'다"하는 말은 틀렸다. 영화 <넘버3>에서 최민식이 그러지 않았나. "내가 제일 조ㅈ같아 하는 말이 뭔지 알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야. 죄가 무슨 잘못이 있어? 죄를 지은 조ㅈ같은 새끼가 죄지."

술이 뭔 '웬수'? 술 먹고 사고 친 놈이 '웬수'지.

이제 잔을 들어라.


아멘~


2. 악마의 유혹


술 고프다.

냉장고에는 달짝지근한 소주가 있겠지. 게다가 냉동실에는 대패삼겹살까지 있다. 유혹의 떡밥은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게다가 이 고독의 밤에 비마저 내린다.


순간 바울 선생의 말씀이 설핏 스쳐간다. 내 생각에, 바울 선생 주변에는 주사가 심한 인간들이 꽤나 있었나 보다. 바울 선생께서는 음주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셨다. 감독의 직분을 가진 자라면 술을 즐기지 아니한다거나 술 취한 자는 멀리하라는 둥, 그리고 니들도 술 취하지 말라는 둥....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질투와 술 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갈라디아서 5:19~21


바울 선생께 묻는다.

취하지 않을 거면 술을 먹는 이유가 대체 뭔가요?

바울 선생은 머나멀고 소주는 가깝다. 바울 선생의 말씀을 떨치기 위해 누가복음 7장 33~34절의 말씀을 떠올린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 너희가 말하기를 '그는 귀신이 들렸다'하고,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죄인과 세리의 친구다'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신다는데 뭘.

이렇게 아전인수를 하면서 바울 선생을 물리친다. 그리고 소주와 대패삼겹살을 가지러 일어서다가 문득 어떤 지인의 '누룩을 넣어 한껏 부풀어 오른 빵' 같은 배를 떠올리며 주저한다. 아! 안 돼(고개를 숙일 때 꽈추가 안 보이게 되면 안 돼!).

하지만 내게는 내일이라는 희망이 있다. 내일부터 소식하면 되지, 뭐.

그리하여 냉장고를 연다.

이럴 수가.

소주가 없다.

이미 다 마셔버렸단 말인가.

편의점에 가서 사 와야겠다...


뱃살에의 우려와 음주욕 사이에서 문득 생각한다.

수지 같은 여자가 내 곁에 있어서 '배 나온 남자는 질색이에요'하고 말한다면? 문득 이성복 시인의 <금기>라는 시가 떠오른다.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


(아전인수격 해석에 의하면) 수지는 내게 금기를 줄 수 있지만 바울 선생은 그렇 수 없다.

이렇게 바울 선생은 의문의 1패를 당한다.


친구인 음해선생(그의 별명이다)께서는 아마 이렇게 답해주시리라.

"그럼 당신은 물론 안 먹기로 결심하겠지. 이런 말을 내뱉으면서. '내가 이러는 건 음주로 인해 내일 일에 지장이 생길 것 같아서야'라거나, 더욱 뻔뻔하게는 '사도 선생께서 술 취하지 말래'하면서 바울을 팔아먹겠지!"

이 인간은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예전에 동네 서점에서 구매한 <일 인분 인문학>이 바울 선생을 상대한다. 악마의 편집으로 바울 선생에 대적한다.

[... 혼자 밥을 먹고 을 마시는 '혼밥'이나 '혼술'은 이미 누구나 아는 용어가 되었을 정도로 일반적이다.(.... 과감히 생략, 혹은 악마의 편집...) '혼족'의 시간이 자기를 위한 시간의 확대로, 나만의 고독과 침묵으로, 나만의 독서로, 나만의 성찰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의 길로....]

또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렇게 말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이로써 바울 선생은 의문의 2패로 3전 2 선승제의 대결에서 완전히 패하고 만다.


그리고 나는 룰루랄라~하며 소주를 사러 나간다.

소주는 힘이 세고, 현실에는 수지가 없다.




3. 걍 처먹어


바울 선생께서 뒤늦은 일격을 가하신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나는 말을 끊고 대적한다.

"언제는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는 부정한 것이 없고, 다만 부정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이라면서요? 원효대사도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서는...."

나는 술을 마시면서 성화, 아니 해탈하리라.


똑같은 물도 젖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아전인수는 나의 독이고, 음주에의 욕망은 그 원천이다.

소주는 힘이 세다.

하지만 수지가 술보다 더 강하다.

그러나 수지는 현실에 없다.

음주에의 브레이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음해선생께서 일갈하신다.

"걍 처먹어...!"




사족 :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처럼>의 병에 부착된 스티커에는 광고모델인 수지의 사진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진은 일종의 이미테이션이다. 이미테이션으로는 나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

해탈에의 길은 멀고도 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