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일런스> 를 보고 난 후 든 잡생각들
이런 얘기가 있다. 각색해서 썰 해보자.
천연 스님이 어느 절을 방문했는데 날씨가 졸라 추웠다. 그래서 경내에 있는 목불(나무로 만든 부처상)을 가져와 도끼로 팬 다음 장작으로 썼단다. 그걸 안 다른 스님들이 노발대발하며 왜 그랬냐며 따져 물었다. 그러자 천연 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기를,
"목불을 태우면 사리가 나오는지 궁금해서 그랬수다."
그러자 다른 스님들이 항변하였다. "아니, 목불에서 무슨 사리가 나온다고!"
그러자 천연 스님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내 말이."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스님들이 깨달았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영화화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가 떠오른다. 극의 배경은 15세기의 일본. 포르투갈의 선교사들이 포교하던 시절, 다수의 일본인 기독교 신자들은 정부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는다. 기독교 신자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관료들의 방식이란 의심이 가는 주민들에게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목판을 밟게 하는 것. 능히 밟으면 집에 보내고, 거부하면 수장이나 화형.
그런 상황에서 기독교도인 기치지로는 붙잡힐 때마다 죽음이 두려워 예수의 얼굴을 밟는다. 그리고 풀려난 뒤에는 다시금 종교적 현타에 빠진다. "아, 씨부엉… 부디 용서하여 주세요…"
이런 상상을 했다. 만일 나라면?
아, 나는 이런 경우의 나 자신을 너무나 잘 안다. 예수님의 그 가시면류관을 나도 쓰리라, 능히 밟기를 거부하고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이…
....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기치지로가 바로 나다.
그러면 동료 기독교인들 중에서 누군가는 나를 비판할지도 모른다.
"형제여, 어찌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의 얼굴을 밟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면 기치지로, 아니 나는 이렇게 대답하리라.
"목판의 예수님의 얼굴을 밟으면 과연 보혈이 나오는지 궁금하여 그랬습니다."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반문하겠지.
"목판에서 어찌 보혈이 나온단 말이오."
나는 썩소를 띄며 이렇게 대답한다.
"내 말이."
그래서 동료 형제들에게 다구리를 당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의 '내 말이'에 차이가 있었는데, 천연 스님의 그것은 깨달음의 말씀이고 내 말은 면피를 위한 개솔이었기 때문이다.
전국구 조폭 두목 마구패 씨는 과거의 원한으로 인해 '공의의 판사'인 나를 극도로 싫어한다. 내게는 외동 아들인 '한량이'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마구패의 똘마니들에게 납치당한다.
"너, 지얼 판사 새끼 아들이지?" 마구패가 묻자, 한량이 대답한다.
"아닌데요."
마구패가 말한다.
"좋다, 말 안 하겠다 이거지." 그러고는 어디서 구했는지 큼지막한 내 얼굴 사진을 바닥에 놓고는 마피아 대부 돈 꼴리오네처럼 '차마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그럼 증명해 봐. 이 사진에 오줌을 싸면 네 말을 믿지. 못하면 죽도록 처맞은 후에 수장되는 거고."
나의 아들은 수장되지 않기 위해 내 사진에 오줌을 갈기고, 안 죽을 정도로 얻어터진 후에 풀려난다. 내막을 알게 된 나는 아들에게 묻는다.
"너, 내 얼굴에 오줌을 쌌다며?"
"아빠 얼굴 아닌데요. 그냥 사진인데요." 별일 아니라는 투다.
"그 사진 속 얼굴은 내가 아닌 뭐, 굥 씨 사진이야?"
"아니요… 아버지 얼굴이긴 하죠."
"그런데 감히 아비 얼굴에 오줌을 갈겨?"
대노한 나는 그에게 연타 귀싸대기를 날린다. 그러자 아들 박한량은 뒷걸음치며 내게 소리친다.
"씨부엉, 무슨 아빠가 이래!"
홍성남 신부님은 "신자들에게는 하느님의 비위를 거스르면 벌을 받는다는 공포심이 기저에 깔려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래서 그런 신도들에게 '만약에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그런 분이라면 변태'라고 말했어요.(그게) 우상숭배라고."
글타. 그래서 나의 아들 박한량은 이렇게 외쳤던 거다.
"무슨 아빠가 이래!"
신부님 말씀은 아마도 이런 것일 테다.
추우면 목불.... 아니, 성상이라도 때워 써라. 하느님께서는 능히 허락하신다.
계속하여 신부님은 '종교 사기꾼을 구분해 내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신도들의 마음에 안도감을 심어주는 이는 참 종교인, 반대로 불안감을 심어주는 이는 종교 사기꾼."
몇 년 전, 후배 뭐시기 군과 길을 가는데 어떤 교인이 자그마한 단상 위에서 메가폰을 들고 목청 높여 외치는 것이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
예전에 소개팅할 때 상대 여성이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퇴짜를 놨다는 후배 뭐시기 군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X까고 있네."
문득 궁금해진다.
뭐시기 군이 혐오하는 것은 종교 사기꾼이었을까, 아니면 개신교 그 자체였을까?
확실한 사실은 뭐시기 군에게 '불신지옥'은 불안을 조장하는 소리가 아니라 단지 'X까는' 소리에 불과했다는 거다.
아들 박한량이 귀싸대기 연타를 처맞아 가출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문을 박차고 들어오더니 내게 이렇게 선언한다.
"오늘부터 내 아빠는 당신이 아니야! 옆집 아저씨가 훨씬 좋아. 이제부터는 박상진 아저씨가 내 아빠야!"
나는 조용히 일어나 문을 닫는다. 그리고 완력으로 한량이를 결박한다. 그리고 영화 <해바라기>에서의 김래원이 빙의한다.
"꼭 그렇게 배신 때려야 속이 후련했냐?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 이제부터 내가 벌을 내릴 테니 달게 받아라."
그리고는 시뻘건 유황불, 아니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양동이에 담아 가져와 한량이의 허벅지에 쏟는다.
"뜨겁냐? 이제 시작인데?"
덧붙이며 말한다.
"이 고통은 네가 죽어야 끝날 걸?"
아들은 악을 쓰며 말한다.
"씨부엉, 아빠가 고문경감 이근안이었을 줄이야!"
이런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김 집사 말이야, 몇 달 전에 교회 다니는 거 그만두고 요즘엔 절에 다닌대."
"아니, 어떻게 예수님을 안 따르고 부처한테 갈 수가 있지?"
"그러게. 그러다 지옥 가는데…"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이런 얘기를 했다.
[비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교가 천국과 지옥, '죄에 사로잡혀' 있음을 그리스도교인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몇 해 전 한 불교 승려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말했다. "당신들 그리스도교인은 분명 아주 나쁜 사람들인가 보군요. '항상'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니 말입니다."]
죄에 대한 강박 이면에는 엄청난 불안을 야기하는, 지옥이라는 협박이 있다. 그런데 이런 의구심이 든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악이란, 선의 결핍"이라고 했다. 역논리도 가능할까? "선이란, 악의 결핍"이라고. 그렇다면 영벌이 두려워서 죄를 안 짓는 게 선한 일인가? 징역이 두려워서 강간을 하지 않는 남자는 여성을 존중하는 선한 인간인가? 판옵티콘 감시하의 죄수들은 개과천선한 인간들인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악의 결핍만으로는 선을 생각할 수 없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선에 대한 강박 이면에는 기복을 구하고자 하는, 천국에 대한 욕망이 있다. 보상금을 기대하여 주운 지갑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선인가? 신부님 말씀대로 이런 게 율법적 사고방식 아닐까?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서 알리사는 제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냐, 제롬. 우리의 덕성은 미래의 보상을 향해 노력하는 것이 아냐. 우리의 사랑이 추구하는 것은 보상이 아냐. 자신의 수고에 대한 보수라는 생각은 훌륭하게 태어난 영혼에게는 모욕적인 것이야."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지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점차 세속적 가치, 특히 돈을 우위에 두게 되는데, 아마도 이를 타락, 혹은 우상숭배라고 할 테다.
그러고 보니 사랑에 대한 보상을 생각했던 나는 애초에 훌륭하게 태어난 영혼이었음에도 자본주의적 전락 상태에 이르고 만 듯하다.
이러면 세상이 천국이 될까?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면 : 담배로 주둥이를 지진다.
-혼전순결을 어기면 : 거세하여 내시로 만든다.
-동성애를 하면 : 죽는 날까지 똥침을 놓는다.
-낙태를 하면 : 거대한 가위로 사지절단을 한다.
-굥 씨처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술만 처먹으면 : 거대한 술통 속에 처넣고 오래 묵힌 다음 인육주로 만든다.
지옥이란 뭘까?
히틀러, 폴 포트, 스탈린 같은 인간들은 살아생전 온갖 권력을 누리다가 한순간 밥숟갈을 놓았다. 근데 그렇게 죽어버렸으니 끝이다? 당한 자 입장에서는 졸라 억울하잖아?
지옥은 억울한 피해자들의 원한감정이 구축한 일종의 가상세계이거나, 죄의 억제를 위한 일종의 방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https://youtu.be/QWkhCxCcWSE?si=Fo8JF1HaZXVXIAk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