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빛

-인간은 신의 암호라는데...

by 지얼


지난 12월 3일에 어떤 모지리가 한국 사회에 거대한 똥을 지림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대의적인 얘기는 생략하자. 소의적(?)으로만 말하자면, 나는 학원 개원 이후 처음으로 겨울 방학 기간에 원생 수가 10명 이하가 되는 수모(?)를 당했다.

저 모지리 탓만 하는 것은 다소 비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아마도 나의 천성적인 한량 기질에도 일부 원인이 있었을 테니.


어쨌거나 통장 잔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2nd job을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세상에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하모니카 조금 불 줄 알고 기타 좀 치는 것(지금은 드럼도 쪼끔 친다) 밖에 아무것도 없는 늙다리 아재에게 누가 일을 맡기겠는가.


그렇게 똥줄을 타는 와중에 어떤 지인 분의 추천으로 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한 미술관에 이력서를 내게 되었고, 사실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일할 사람을 뽑는 알바에 불과한 일이었음에도 타는 똥줄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아니 사실은 구원의 동아줄을 힘겹게 부여잡는 심정으로 11개월짜리 단기 알바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미술관에서는 그냥 서 있는 게 일이다. 관람객 중에 누가 작품을 만지려고 하면 "선생님, 죄송하지만 만지시면 안 됩니다"라고 주의를 주는 게 일이다. 그런데 사실상 비-문명인이 그리 많지는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시간은 그저 서 있는 채로 보내면 된다. 우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서 있는 게 일이라니, 어디서 이런 꿀 보직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대딩 시절에 어떤 교수님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만약에 어느 회사에 취직을 했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A4용지를 들고 있다가 떨어뜨리고, 그걸 다시 주었다가 또 떨어뜨리고.... 반복하여 이런 일만 하는 대가로 월급을 천만 원 준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그걸 하시겠어요?"

미술관에서 수십 번 곱씹었던 말과 생각이었다.

안 해, 씨부엉...


문득 셜록 홈스 시리즈 중 <빨강머리 연맹>이 생각난다. 돈은 많이 주는데 하는 일이라는 게 고작 사전을 필사하는 일.



나의 마음을 미술관 측에서 헤아려 주었는지 두 달 후에 미술관에서 전시관으로 보직을 옮기게 되었고(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쓸고 닦는 일이었고 미술관보다는 체력적으로 더 후달렸지만, 덜 지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설치 예술가인 J. 터렐의 설치 미술을 관람객들에게 설명해 주는, 소위 도슨트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래서 좋았냐고? 물론이다. 내 생각에 쉬운 일의 순위는 다음과 같다.


1. 입으로 떠드는 일

2. 청소

3. 무위(아무것도 안 함)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을 이른바 '멍때린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 도인이 아닌 한 이건 불가능하다. 어떻게 아무 생각도 안할 수 있을까? 생각이라는 건 내가 안 한다고 안 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네 의지대로 심장의 기능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무상무념이 이처럼 힘든 것이라면 무위도 쉬운 일일 수가 없다.


좀 빗나간 얘기이겠지만, 유전적으로 우리는 무-변화의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는 점도 언급하고 싶다. 예컨대 칠흑과 정적의 공간, 즉 완전한 감각박탈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제정신으로 버틸 수 없다. 그런 순간에 우리의 뇌는 거짓 신호를 보내어 죽음과도 같은 그 순간을 보충하려 하고, 그것이 바로 환각이나 환청이다(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간츠펠트Ganzfelt 현상'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결은 좀 다르지만 이처럼 힘든 게 무념무상과 무위다. 이에 반해 입으로 나불나불대는 일쯤이야.

하지만 몇 번인가 그 역할을 수행하다가 현타가 왔다. 어느 날, 예술의 신 무사이께서 왕림하신 거다.


나 : 누구세요??

무사이 : 나? 그리스의 예술신 무사이야. 몰라?

나 : 무사시요?

무사이 : 걔는 칼잡이고. 무사시가 아니라 무사이.

나 : 잠시만요(네이버에서 검색한다). 아, 글쿤요. 첨 뵙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이세요?

무사이 : 너, 요즘 도슨트 일 한다면서?

나 : 그런데요?

무사이 : 헐~. 도슨트는 아무냐 하냐? 그건 그렇고, 네가 현대 미술을... 아니, J.터렐을 알아?

나 : 아는데요. 잠시만요(그와 작품에 관한 해설서를 잠시 뒤적인다).... 1943년 생이시고 빛을 예술적 소재로 삼는 유명한 설치 예술가이시고...

무사이 : .....라고 그 종이 쪼가리에 쓰여있지?

나 : 그런데요?

무사이 : 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종이 쪼가리에 의존해 커닝(치팅)을 하더니.... 제 버릇 개 못주는구먼.

나 : 뭔 소리예요?

무사이 : 네가 진짜로 그분의 작품을 마음 깊숙이 이해하느냐는 말이야.

나 : 꼭 그래야만 돼요?

무사이 : 너, 20대 중반 무렵에 어떤 번역서를 보면서 울분을 토한 적이 있지? 그때 너는 분명히 말했어. '아니, 씨부엉... 번역자가 자신이 번역한 책을 두고 자신도 본문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밝히다니, 미친 거 아님? 번역자가 이해 못 하는 걸 내가 어떻게 이해하라고?'라고.

나 : 음..... 아마도 <사랑의 지혜>라는 철학 에세이였죠.

무사이 : 제목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랬던 네가 똑같은... 아니, 그 번역자 분은 이해할 만한 구석이라도 있지. 너는 전혀 아냐.

나 : 그런가요?

무사이 :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게 말이 돼?

나 : 안 되죠.

무사이 : 알면 대가리 박아.


그래서 세 권의 현대 미술 관련 서적과 두 권의 종교 관련 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종교 쪽은 기독교 소수 종파인 퀘이커교에 대한 책이었는데, 구태여 그것들을 읽은 이유는 J. 터렐이 독실한 퀘이커교도이고, 퀘이커교의 중요 키워드인 '내면의 빛'이 그의 작품에 반영되었다고 하기 때문이었다.

대충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퀘이커교는 기성 개신교의 대안으로, 15세기에 조지 폭스라는 선지자에 의해 탄생되었다.

2. 그들은 침묵과 명상, 그리고 기도를 통한 신내림.... 아니, 성령 체험을 종교 생활의 중심에 두었다.

3. 철저하게 위계를 부정했다. 따라서 목사도, 장로도 없다(초기에는 그랬다). 따라서 설교도 없다. 거기에 찬송가도 없고 십일조도 없다.

4. '내면의 빛'을 강조했는데, 내가 보기에 동학의 인내천 사상이나 불교의 '너는 이미 부처다'라는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즉, 신의 속성이 누구에게나 내재해 있다는 거다. 신학자 칼 라너는 '인간은 신의 암호'라고 했는데, 아마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5.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회적 봉사에 많은 힘을 쏟았다. 예컨대 노예 해방이나 인디언들의 인권 보호, 그리고 정신병동의 처우 개선 등.

6. 전시에는 포로나 전쟁고아, 또는 부상자들도 돌보았다. 그들에게 삶의 모토는 '믿음은 행동을 통해 입증된다'는 것이라고 한다.

7. 그래서 그들은 단체로서는 최초로, 1947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8. 그럼에도 현재 신도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만 명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한다.

9. 퀘이커교는 종교 다원주의적 성격을 보인다.

10. 혹자는 퀘이커교를 기존 개신교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한국에는 함석헌 선생이 대표적일 것이다.


함석헌 선생


그래서 J. 터렐의 작품을 이해했냐고? 음.... 꽤 도움이 되었다. 작품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보인달까(물론 나의 착각일 가능성도 있다). 나의 뇌피셜에 다소 근육이 붙은 거다. 덕분에 내 입에서는 더 많은 말이 쏟아졌고, 이전보다는 조금은 '있어 보인다.'

종교적 근육은 어떨까? 음.... 나의 믿음은 주둥이를 통해 입증되지 않음은 잘 알고 있다.


아는 건 없지만, 독서의 즐거움과 유용함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는 4.3 사건의 내막을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줄기차게 확인했고, 이번 주 독서토론 지정서인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보면서는 남부군이나 빨치산, 그리고 여순사건 등의 내막을 알기 위해 열심히 유튜브 채널을 뒤졌다(그리고 이런 사건들을 접하고 나면 아래 영상의 심용환 역사학자처럼 '과연 신은 존재하는가?' 하는 불신이 똬리를 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울러'인간은 신의 암호'라고 말한 신학자 칼 라너의 말에 회의가 생긴다). 물론 극우 유튜브 채널은 제외했다. 당연하다. 이런 독서 습관이 아무리 일천하다고는 하나, 적어도 <리박스쿨> 관계자 같은 머저리는 되고 싶지 않으니까.

박은 리를 철저히 부정하며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리박스쿨'은 내게 작년에 목도한 한 태극기부대원의 피켓에 쓰여있었던 모순대립의 언어도단처럼 느껴진다.

"윤석열 지지, 박근혜 탄핵 무효."

말하자면 이런 것과 같다.

"기독교 근본주의 지지, 동성애 찬성."

또는,

"계엄은 계몽, 민주주의 파괴 반대."


이렇게 말하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

평양.

북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



하고픈 말은 이거다.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온전히 공감하기 위해서는 해당 작품의 역사적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것처럼, 미술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도 그런 지식이 요구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종교는 어떨까? 지식이 영성을 쌓아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맹신과 맹목을 교정하는 데에는(적어도 발전적 회의를 소홀히 하지 않는 이에게는) 다소 도움이 되지 않을까?

반지성주의를 극복하려는, 혹은 반지성주의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로서의 독서랄까.


아래에서 크리스천 역사가 심용환은 개신교의 위기에 대해 가장 큰 원인을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반지성주의'에서 찾는다. 공감한다.

기성 개신교는 퀘이커교에 대해 뭐라고 할까? 원죄설을 부인하고 삼위일체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평할까?

내가 소위 근본주의적 복음주의자가 될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잡설 추가 :

하지만 그전에 나 자신의 위기부터 찾아야만 한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반자본주의적 아싸는 11개월 후에는 어디에서 돈을 벌어 텅 빈 곱창을 채워야 하는가. 뇌경색 이후 억지로나마 70% 정도 회생시킨 나의 손가락은 밥벌이의 비루함 속에서 다시 환자가 되어가고 있다. 어떻게 밥벌이와 딴따라의 소명을 조화시킬 수 있는가?


그 유명한, 축구 감독 알렉스 퍼거슨 경이 씹다가 버린 껌은 한 경매에서 500만 원에 팔렸다. 비틀스의 존 레넌이 남긴 담배꽁초는 어떤 경매에서 300만 원에 팔렸다. 어제, 같은 일을 하는, 허리둘레 22로 추정되는 2002년생 처자가 내 구멍 난 양말을 보고 말했다. "양말에 구멍 났는데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하셨어요?" 작품들 중 한 곳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양말을 벗고 나서 알렉스 퍼거슨과 존 레넌의 얘기를 한 후에 벗은 양말을 들어 올리고 대답을 대신했다.

"이것을 5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사시겠습니까?"

갑분싸.


500만 원이 아니라 5천 원에 팔 수 있을 정도의 명망이라도 있었다면 비루한 밥벌이를 위해 능력도 없는 도슨트 일 같은 것은 안 해도 되었을 것을. 통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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