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를 원해

-원수를 사망케하라

by 지얼


스크린샷 2025-09-24 오전 10.59.06.png 영화 <그린마일>의 한 장면. 불쌍한 존 커피....


들라크루와라는 이름의 사형수가 전기의자로 처형될 때 큰 사고가 발생한다. 머리에 전류가 통하게 하는 부착물을 씌우기 전에 소금물에 적신 해면 조각을 사형수의 머리에 얹어 놓음으로써 전류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사형수가 빠른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관례인데, 평소 사형수 들라크루와를 싫어했던 소시오패스 교도관이 그의 사형 집행을 담당할 때 일부러 해면을 물에 적시지 않은 것이다.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 사형수 들라크루와는 오랜 고통을 받다가 머리에 불이 붙은 채로 사망한다. 영화 <그린마일>의 한 장면이다.


영화에서 이 사형수는 나름 순박하게 그려진다. 감방에서 생쥐를 키우며 돌보는 착한 마음도 지니고 있다. 영화에서 이 사형수의 죄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반면에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에서는 그의 범행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방화로 어린이들을 태워 죽인 것이다. 결국 그는 그가 저지른 행위대로 죽게 된다.


나는 <그린마일>을 영화로 먼저 봤다. 두 번 정도 본 이후에 소설도 읽었는데, 사형수 들라크르와에 대한 내 감정은 100%의 연민에서 70%의 냉담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다라본트 감독은 그런 이유로 들라크르와의 구체적인 범행을 생략한 것이었으리라.

소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랬다. '역시 스티븐 킹. 인과응보, 탈리오의 법칙, 응징을 아는 남자이지.' 교내의 집단 이지메에 대한, <캐리>의 엄청난 응징을 보라. 정말 물, 불 안 가린다.



영화 관람자로 하여금 악당들에 대한 영화 말미에서의 응징과 보복을 기대하게끔 하지만 결국에는 그러한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리는 영화가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주연의 <그랜 토리노>다. 이 영화에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자비한 더티해리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 드라마 중에서는 <나의 해방일지>가 그렇다. 조폭 출신의 '구 씨(손석구 분)'가 마지막 회에서 양아치 같은 조폭 두목을 후련하게 응징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용서라니.


너튜브를 검색해 보면 무수한 '사이다' 영상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영화의 한 장면들이 많다. 게중에 압권은 역시 <달콤한 인생>이다. 선우(이병헌 분)의 차에 담배꽁초를 집어던지며 시비를 거는 양아치 무리들을 보고 개빡친 선우는 액셀을 밟아 그들의 차를 살짝 앞질러 가다가 급 브레이크를 밟아버린다. 화들짝 놀라 급정지를 하는 양아치 무리의 차. 그렇게 한강 다리 위에서 두 대의 차는 정차하게 되고, 개빡친 양아치들은 차에서 내려 이병헌에게 다가가는데....

결과는... 빤하지 뭐.

떡실신이 된 양아치들은 자신들의 차 운전석에 꽂혀있는 자동차 키를 뽑아 저 멀리 강물 위로 던져버리는 선우의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역대급 사이다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시절에 기원에서 청소 알바를 한 적이 있다. 열심히 바닥에 떨어진 바둑알을 줍고 있는 도중에 TV 뉴스를 보고 있었던 한 중년 아저씨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내가 법이라면 저것들 다 죽었을 텐데.


'죽였을'이 아니라 '죽었을'이라고, 자동사를 회피하며 말한 것을 보면 일말의 거리낌이 있었나 보다. 쯧쯧, 하고 혀를 차고 싶었지만 내게 그럴 자격이나 있나 싶다. 마음으로 나는 아마도 100명쯤은 죽였을 테니. 독재자들, 극우파 인간들, 사이비 교주들, 강간범들... 그리고 무엇보다,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내게 극심한 모욕감을 준 개자식들.

근거는 없지만, 나는 10%의 비율로 '개자식들'이 상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소위 '또라이 일정량의 법칙'이다. 많은 개자식들을 겪어 봤지만, 그중에 원탑을 군대에서 목격했다. 중대장이었던 김 모 씨(발놈).

구타 잘해,

갈굼 잘해,

모욕 잘해,

쌍욕 잘해,

희멀건 얼굴에 박힌 썩은 동태 같은 삼백안 눈깔에,

비열하게 올라간 입꼬리 하며,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라니.

"야, 박병장." 김 씨가 내게 묻는다. "너, 지난번에 사단 본부에 갔을 때 XXX 교범 받아 왔어?"

"아, 그 보급용 책자 말입니까? 아직 안 받아왔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가 내 정강이를 걷어차며 입으로 똥을 싸기 시작했다.


뭐? 안 받아왔어? 야, 이 씨X놈아, 왜 안 받아왔어? 너 같은 새끼는 군대 밥이 아까우니까 저기 산에 가서 목매달아 자살해 버려. 아니, 아니다. 군대 안에서 뒈지면 곤란하니까 휴가 나가서 뒈져버려.


어디 이 소시오패스에게 당한 사람이 나 한 명뿐이었겠나. 기원의 그 중년 아저씨처럼 이렇게 내뱉고 싶어진다.

내가 군법이라면 저 개자식은 죽었을 텐데.

전역 후에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 각목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리라.


영화 <타임 투 킬>은 어린 딸을 강간한 백인을 법정에서 총기로 살해한 흑인 아버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 놀랍게도 배심원들은 그 흑인 아버지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이 불쌍한 소녀의 아버지에 대한 공감의 불똥이 가끔 교인들에게 튈 때가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지침이 진실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젊은 전도사님이 괜한 불똥을 맞았다.

어쨌거나 사랑은커녕 응징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근래 몇 년 동안 타인들에 의해 수차례 '긁혔다.' 위 영화의 흑인 아버지에 비하면 사소한 것일 테지만, 괴로움은 객관적으로 서열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허한 삶에의 괴로움에 매일 조니워커를 마시는 이에게 "아프리카 어린이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거늘!" 하는 조언이 무슨 소용인가. 나의 '긁힘'도 엄연한 괴로움이다.


긁힘이 참교육에의 의지를 촉발할 때면, '내 마음이 법이라면'에 깃든 무의식적 그림자가 인지되는 것 같다. 내 그림자는 '사이다'를 원한다. 응징을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면의 하이드 씨를 인정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든 달래지 않으면 안 된다. 헐크가 자신에게 가하는 위해라고는 고작 셔츠와 청바지를 찢어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나 같은 범인은 먼저 내 마음을 찢어놓는다. 마음의 찢어진 틈에서 악마가 튀어나온다

내 안의 악마는 이런 상상을 한다.


어떤 차가 내 차 뒤에 있었는데 클락션을 신경질적으로 울리더니 갑자기 내 차 바로 옆에 정차시킨다.

그리고는 차창을 열고 엄청난 욕설을 내뱉는다. 내가 직진을 하지 않고 정차해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내 차는 분명히 좌회전 차선에 있다. 그는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직진해 버린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돈이 많다.

너무 많아서 가끔 벽지로도 쓴다.

하루에 1000만 원씩 써도 100년이 지나야 비로소 통장 잔고가 0이 된다.

결심한다.

액셀을 힘껏 밟는다. 눈앞에 타깃이 있다.

들이박는다.

한 번으로는 성에 안 찬다.

후진 후에 다시 박는다.

아예 폐차를 만들어 놓는다.

경찰서에 가서 합의한다.

합의 못하겠다며 버틴다고?

1억인데?


이 얼마나 한심한 망상인가. 배금주의적 악마는 머리가 나쁘다. 한 순간의 감정적 해방을 위해서 남 좋은 일(1억 배상)을 한단 말인가? 다행인 점은, 내 안의 악마는 내가 '개털'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간혹 이런 생각도 한다. '주님께서는 내가 응징의 화신이라는 걸 이미 알고 계시기에 나를 개털의 길로 이끄신 거다').

분노는 기도를 통해서든(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지금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불교의 '마음 챙김'을 통해서든(나로서는 역부족이다), 나름의 개똥철학을 통해서든 증발시켜 버려야 한다.


작금에는 '또라이 일정량의 법칙'을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세상에는 적반하장의 도둑놈들이 존재한다. 길을 가다가 똥을 밟는 일은 내게 일어난 특이한 일이 아니라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단지 지금 일어난 것일 뿐이라고, 다시 말해 삶의 기본값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이 똥밭은 아니다. 그렇다고 똥이 별로 없는 것은 아니다. 1/10의 확률로 똥을 밟을 일은 상존한다.

그러니 부디 신께서 내게 환영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중대장 김 모 씨 같은 인간이 나를 심하게 긁을 때마다 그가 인간이 아닌 개로 보이는 환영을. 개가 나를 보고 짖는다고 해서 내가 개를 걷어찰 일은 없을 테니.

내가 누군가에게 똥이 된다면 부디 상대방에게도 그런 은총이 내려지기를.

Peace.


"세상은 도적들의 소굴이며, 밤은 서서히 다가오네. 악이 사슬을 끊고 미친개마냥 온 세상에 날뛰네. 우리는 악에 감염되어 도망치지 못하네. 그러니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해집시다. 우리는 이 작은 세상을 즐겨야 합니다. 그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영화 <파니와 알렉산더> 중에서



이런 방법도 있다.

개빡칠 때는 내면의 그림자를 달래기 위해서라도 메탈리카를 듣자.

<Seek & destroy> 강추.



사족 :

-전기의자를 최초로 개발한 사람은 그 유명한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이라고 한다.


에디슨은 교류를 폄하하기 위해 동물학대를 했기 때문에 비폭력주의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전기의자 발명 이전에는 동네 아이들에게 한명당 25 센트 정도의 돈을 주고 주인 없는 개를 잡아오도록시켰고, 기자들 앞에서 개들을 교류 전기로 도살하는 잔악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다. 이때 개들에게 물을 축인 뒤 얇은 주석판에 묶어 교류 전기를 조금씩 흘러보내는 방법을 썼다. 그리고 1890년 당시 전기의자가 나오기 전 자료들을 살펴 보면, 에디슨이 전기 실험으로 호랑이, 사자, 코끼리, 기린, 늑대, 여우, 고양이, 개 등 동물들을 AC 2,000V도 아닌 AC 20,000V를 걸어 죽인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유튜브에서도 당시 방송자료를 검색해 볼 수 있다. 코끼리는 딱 1마리만 이 방법으로 죽였는데 이를 알게 된 미국 시민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쳐 결국 그만두었다.
에디슨은 "살인 기계나 만드는 사형집행인"이라는 오명을 쓰기 원치 않았는지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우스윅의 발명품이라는 식으로 홍보했다.
-위키백과에서 발췌


밥맛 떨어지는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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