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털의 이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by 지얼

개털 :

은어의 한 종류. 돈도 면회자도 없는 죄수로 교도소에서 사용 됨. 후에 사람들이 돈한푼 없는 알거지라는 뜻으로 사용함.


전함 위의 초병이 우현 앞쪽에 빛이 반짝이는 걸 보았다. 선장은 "즉시 당신 배를 20도 선회하라!"라는 신호를 보내라고 초병에게 말했다.

초병이 시키는대로 하자 답이 돌아왔다. "즉시 너희 배를 20도 선회하라!"

선장은 화가 나서 직접 신호를 보냈다. "선장이다. 이대로라면 우리는 충돌한다. 당장 20도 선회하라!"

답이 돌아왔다. "나는 이등항해사인데, 너희 배를 20도 선회할 것을 강력하게 경고한다."

선장은 분노에 휩싸여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전함이다. 얼른 비켜라."

답이 돌아왔다. "우리는 등대다."


토마스 캐스카트와 대니얼 클라인 공저의 <철학자와 오리너구리(Plato and Platypus)>에 나오는 얘기다.

가치의 상대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영원하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기준도 실제로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펫 : 마이크, 나 지금 고속도로에서 새 전화기로 전화 중인데 말이야.

마이크 : 펫, 조심해. 방금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고속도로에서 반대 방향으로 운전하는 미친 사람이 하나 있대.

펫 : 한 명? 아니야. 지금 이 도로에 그런 미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보면 깜짝 놀랄걸!


세계 평화는 독수리 5형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도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A라는 나라에 비가 많이 내리면 가뭄이 해결되어서 좋지만, 저지대인 이웃 나라 B국에서는 홍수가 난다고.

자연재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므로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다. 문제는 인위적 재난이다.

이린위학(以隣爲壑)’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자신의 재앙을 남에게 전가시킨다’는 뜻이란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위(魏)나라에, 치수사업의 공로로 승상이라는 벼슬에 오른 백규(白圭)라는 관리가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둑을 높이 쌓아 자국 내에 빗물이 넘치지 않게 한 그의 치수사업으로 인해 홍수가 날 경우 이웃나라는 물바다가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정말이지 이웃나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뻑큐, 아니 백규를 날리고 싶은 심정일 테다.


한마디로 '너의 재앙은 나의 축복' 또는 '나의 축복은 너의 재앙'이라는 것.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절대로 백결선생이나 디오게네스처럼은 살 수 없는 인간, 다시 말해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배부르고 등 따신 돼지의 삶이 낫다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면, 그는 자신의 조국이 식민지이기를 원할까, 점령국이기를 원할까?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랫말처럼 '더부룩한 머리에 낡은 청바지/며칠씩 굶기도 하고/검은색 가죽점퍼 입고 다녀도/손엔 하이데거의 책이 있'는 상황을 원할까, 아니면 하이데거의 책 따위는 서재의 장식용으로 쓰는 귀족의 삶을 원할까?

(물론 나는 후자다...)

노예제가 오랫동안 존속해 왔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아, 물론 폐지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온전히 휴머니즘의 발로만은 아닌 경제적 이유가.

만인을 통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다수의 이기적인 국민들로 이루어진 만국을 제어할 리바이어던은 없다(UN?). 고로 세계 평화는 요원하다.


(오랫동안 라면 냄비 받침으로만 사용하다가

헌책방에 팔아버린, 마르틴 하이데거의

난공불락 외계 도서 <존재와 시간>.)


거창한 역사적 얘기는 할 생각도 없거니와 그럴 능력도 안 된다. 지극히 소시민적인 얘기만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춘정이 발동하여 소중이와 더불어 성질머리도 분기탱천했던 약관의 대딩 시절.

나는 작업할 수단으로 예술적 충동으로 동아리방에서 열심히 클래식-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다. 곡명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한참 연습에 몰두하고 있을 때 벽면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나르시소 예페스 할아버지가 10현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의 사진)가 떨어지더니 유리가 와장창 깨져버렸다. 바로 옆 동아리방의 누군가가 자기 쪽의 벽면을 주먹으로 친 것이다.

기호학적으로 아는 척을 좀 하자면, 기표인 '쿵'은 다음의 기의(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씨부럴, 존나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네


바로 옆 방의 동아리는 '어학회.' 즉, 공부하는 동아리였던 거다.

연주를 멈추고 기타를 내려놓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오디오가 있는 쪽으로 갔다. 인과응보, 이에는 이 눈에는 눈ㅡ탈리오의 법칙으로 정신 무장한 나는 카세트테이프 하나를 오디오의 데크 속으로 밀어 넣은 후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볼륨은 풀.

그때 튼 음악은 바로 존나 시끄러운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마음속으로 말했다.

이걸로 어학 공부(영어 듣기) 좀 해보지 그래?


지금 생각해도 그때 나는 참 못돼 처먹었었다.

이 노래는 진정 헤비메탈 역사의 백미일 수밖에 없다.


어학회 동아리방 안의 학생들이 벽면 너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동아리 회장은 "즉시 조용히 하라!"라는 신호를 보내라고 후배에게 말했다. 후배는 벽면을 두드렸다.

"(우리 선배님이 시끄러워서 공부를 못하겠대요)"

답이 돌아왔다.

"Master, Master of puppets I'm pulling your strings(근데 어쩌라고)."

어학회 회장은 화가 나서 직접 신호를 보냈다.

"쿵쿵(어학회 회장이다. 이대로는 공부를 못한다. 당장 음악을 꺼라!)"

답이 돌아왔다. 음악 소리가 더 커졌다.

"Master, Master just call my name, 'cause I'll hear you scream(걍 닥치라고)."

어학회 회장은 분노에 휩싸여 신호를 보냈다.

"쿵쿵쿵(우리는 공부하는 동아리이다. 얼른 음악을 꺼라!)."

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음악 동아리인데요"


이게 다 동아리방 배치를 잘못한 '동아리 연합회' 때문이었다.

이린위학을 유발하는 실수를 저지른 거다. 공부 동아리 바로 옆에 음악 동아리를 배치하다니, 이건 뭐 기도원 바로 옆에 나이트클럽을 차린 꼴 아닌가.

동아리 연합회의 과오는 차치하더라도, 감히 거장 나르시소 예페스 쌤을 추락시킨 어학회의 그 범생이에 대해서는 일침을 놓을 수밖에 없다.

어학 공부만이 절대 가치가 아니거든?

응징의 화신인 나는 당시에 이런 생각을 했으리라.

다음에 또 그러면, 그때에는 카니발콥스의 음악으로 조져 주겠노라고.


카니발콥스의 음반 커버. 개중에 덜 끔찍한 것으로 골랐다...


이랬던 내게, 지난밤 꿈을 통해 신께서 왕림하셨다.

아래는 그분과의 대화 내용이다.


나 : 신이시여! 저도 부자이고 싶습니다.

신 : 부자? 부자 돼서 뭐 하려고?

나 : 정원 딸린 집도 사고, 천만 원이 넘는 깁슨 기타도 사고...

신 : 또 뭐?

나 : 페라리 자동차도 사고 싶습니다.

신 : 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도 모르냐?

나 : 흑... 질릴 때 질리더라도 일단은 갖고 싶습니다.

신 : 하지만 넌 안 되겠다.

나 : 왜요? 전지전능하시다면서요?

신 : 내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네 성질머리가 문제야.

나 : 제 성질머리가 어때서요?

신 : 너, 며칠 전에 어떤 운전자가 위협 운전을 했다고 성질냈지?

나 : 그런데요.

신 : 너 그때 속으로 이런 생각했잖아. '이 씨박색히, 확 패버려?'

나 : 생각만 그런 거지 때리지는 않았잖아요!

신 : 내 아들이 그러더라. '마음으로 간음한 것도 간음'이라고.

나 : 아니, 그런 건 소위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의 오류'가 아닙니까?

신 : 삼위일체 모르냐? 나와 내 아들은 일심동체이거늘 무슨 권위 논증?

나 : .......


마음으로 한 것도 죄라니,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신 : 할 말 없지?

나 : 없긴요. 그렇다고 불륜남 취급하는 건 좀.... 게다가 한 번 성질 낸 거 가지고. 그런 건 소위 '기울어진 비탈길의 오류'잖아요.

신 : 뭔 얘기임?

나 : 단 한 번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제가 앞으로 계속 더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신 : 한 번이라고 했냐? 너는 자신에게 불리한 기억은 말소해 버리는 아주 특이한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나 : 제가 또 언제 그랬는데요?

나 : 2주 전에도 어떤 운전자가 너한테 쌍욕을 했다고 맞짱 뜨지 않았냐?

나 : 아, 그 일.... 하지만 먼저 도발한 건 그 개자식입니다.

신 : 그때도 넌 이런 생각을 했어. '확 죽여버릴까 보다.'

나 : 생각만 그런 거라니까요. 안 죽였다고요.

신 : 내 아들이 말하기를, 마음으로 간음....

나 : 아, 됐다고요.


역시 신을 논리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께서는 내가 개털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신다.


신 : 그런즉 나는 네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너를 부자로 만들 수는 없다.

나 : 아니, 부자랑 죄짓는 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신 : 너, 예전에 이런 상상도 했지? '수틀리면 개자식들의 차를 고의로 들이받은 다음 까짓 거 일억 원으로 합의 보면 되지, 뭐.'라고.

나 : .........

신 : 네가 그럴까 봐 내가 널 개털 신세로 머물게 하는 거다. 알겠느냐?

나 : 흑... 그래도 이건 좀.....

신 : 고로 내 논증은 '기울어진 비탈길의 오류'가 아니라 '귀납법적 추론'에 의한 거임. 알겠느냐?


어학 동아리 VS 음악 동아리


Metallica, <Master of puppets>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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