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ies but goodies
언젠가 공원 산책하다가 잠시 뻐꾸기 우는 소리를 감상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떤 특징을 감지하였다. "뻐~꾹"하는 두 음의 음정 관계가 일정하다는 거.
집중하여 들어 보니 "뻐~꾹"의 음정 관계는 완전 4도(예컨대 '파~도') 음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하!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완전 4도로 이루어져 있고, 이를 근거로 봤을 때 완전 4도 음정은 자연의 소산이구나!' 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이런 반론이 빤히 예상된다.
"세상의 모든 뻐꾸기들을 조사해 봤냐?"
부족한 귀납법적 추론의 사례일 수는 있다.
자연은 어떤지 잘 모르겠고, 적어도 인간 사회에서의 완전 4도 음정은 생래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음악문화학의 최유준 박사는 메밀묵 장사의 "메밀~~ 무욱~" 하는 소리의 '메밀'이 완전 4도 음정으로, "자장자장 우리 아가…"로 시작되는 자장가 역시 완전 4도 음정으로, 그리고 천자문 외는 소리인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 역시 완전 4도 음정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고 보니 단 3개의 음으로 구성된 노래, "새야 새야 파랑새야…"의 '새야' 부분도 완전 4도 음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좀 더 생각해 보니 구구단 노래("이일은 이, 이삼육, 이사팔…")의 첫 부분도 완전 4도다. 그뿐만이 아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이 노래 역시 완전 4도 음정으로 시작한다.
클래식 화성학에서는 트라이어드의 3화음으로 인해 4도 음정은 구조적으로 불협음 취급을 하지만(예컨대 sus4코드), 감각적으로 완전 4도는 불협화음정이 아니다.
‘구구단 노래’와 ‘두꺼비 노래’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노래들은 ‘도레미솔라’의 5음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즉 ‘파’와 ‘시’가 안 나온다는 얘기다. ‘아리랑’도 그렇다. ‘5음계’ 역시 인류 공통의 보편적인 음계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있을 것 같다.
중딩이 때 쿵푸스타 이연걸의 데뷔작인 <소림사>를 보고 깨달은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중국도 한국처럼 개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이었고, 또 하나는 중국의 전통 음악 역시 5음계를 사용한다는 거였다(생각난 김에 하는 말인데, <소림사>의 주제음악의 “소~림 소림~”하는 첫 부분 역시 완전 4도 음정으로 시작한다).
아, 그리고 또 하나.
소림사에서 금강경이나 법화경 같은 경전을 읽는 스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 사찰인지 무도장인지 당최…
小船幸次郞(일본어로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XXX 지로' 같은데...)의 저서 <기타 화성학>의 전반부에 단음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라시도레미파솔’의 자연단음계를 사용한) ‘솔’ 음에 #이 없는 음악은 지방적인 음악이나 미개 음악의 감이 있고, ‘솔’에 #이 붙은 음악은 중앙 유럽의 문화나, 지적인 문화를 연상시키는 음악이 되었다.
저자의 말인즉슨 이렇다. ‘솔’에 #이 안 붙은 자연단음계(Natural minor scale)는 음악사적(音樂史的)으로 봤을 때 ‘솔’에 #이 붙은 화성단음계(Harmonic minor scale)보다 선행한다. 문화의 진보를 필연으로 전제했을 때, 음악사적으로 후에 등장한 화성단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는 자연단음계보다 진보적이다. 이끔음(leading tone)이 없어 투박한 (자연단음계에서의) ‘솔→라’ 진행을, ‘솔’에 #을 붙임으로써 ‘솔#→라’ 진행으로 부드럽게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화성단음계보다 진보적인 것이 바로 가락단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란다. 왜냐하면 화성단음계에서 ‘솔’에 #을 부여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파’와 ‘솔#’ 사이의 음정이 너무 벌어져 버려서 자연스럽지 못한 음의 계단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파’에도 #을 붙인 결과 탄생한 것이 가락단음계(Melodic minor scale)라는 것. 다음은 가락단음계가 사용된 예다.
“박~쥐 만이 알고 있다.”
“이랬다 저~랬다 장난꾸러기...”
전자는 <황금박쥐> 요, 후자는 <검은 고양이 네로>다(그렇다고 하는데, 신세대인 나로서는 도통 무슨 노래인지 모르겠다). 전자의 노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썰렁한 농담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박~지만이 알고 있다.” 뭘? 주진우와 김어준도 알고 있던데?
(썰렁...)
그리고 또,
“껌은 고양이 뇌로…”
고양이 뇌는 건드리지 말자.
어쨌거나 저자 小船幸次郞는 이렇게 당당하게 사대주의를 설파하신다.
(하모닉 마이너에서)‘솔’ 음에 올림표(#)가 붙은 결과, ‘솔#’ 음과 ‘라’ 음 사이는 자연스럽게 된 반면, ‘파’ 음과 ‘솔#’ 음 사이는 ‘한 음과 반, 즉 증 2도로 되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되어버렸다. 이 부자연스러운 음정이 도리어 터어키나 동유럽의 회교권 음악을 낳게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하튼 미개 음악에서는 이 부자연스러움이 도리어 하나의 특징이 되었으나, 예술과 학문이 발달한 중앙 유럽의 음악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용납되지를 않았다.
그래서 개량된 게 가락단음계(‘라시도레미파#솔#’)라는 얘기인데,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음계의 문명도(度)는 다음과 같다.
즉, 오른쪽으로 갈수록 ‘미개’하다는 거다. 나는 小船幸次郞의 이러한 견해야말로 서구의 클래식 우월주의에 근거한 사대주의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7음계로 되어 있는 자연단음계에 대해서조차 ‘미개하다’고 할 판이니, 5음계의 <아리랑>이나 3 음계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까? 미개한 음악을 넘어서 축생의 음악?
제일 ‘문명적’이라고 하는 가락단음계가 나의 감성으로는 제일 촌스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16세기 음악인 <그린슬리브스>는 예외적으로 그나마 들을만하지만, 대체로 촌스럽게 느껴진다. ‘박쥐만이 알고 있다’는 따위에 쓸 정도의 위상 추락.
한 번은 가락단음계를 사용한 작곡 과제물을 음악 쌤께 들려드린 일이 있다. 쌤께서 딱히 별다른 지적을 하신 일도 없었음에도, 그때의 쪽팔림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작금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얼굴이 후끈거린다(사실 이게 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자신의 거지 같은 창작물에 대해 자뻑하지 않고 진심으로 후진 줄 아는 거). 가락단음계를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면 이렇게 되는 걸 그때 경험으로 깨달았다.
필요하다면 사용해야겠지만, 대체로 가락단음계는 촌스럽게 들린다. 아마도 과용한 탓일 테다.
화성단음계도 작금에는 비틀스의 몇몇 곡들처럼 제대로 잘 쓰지 않는 한, 진부하게 들리기 십상이다.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이 주성치 감독의 <쿵푸허슬>에서 코믹하게 쓰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심히 오글거리는 비장미.
100년 전 음악가인 클로드 드뷔시 역시 이런 것들의 촌스러움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싶다. 그의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5음계가 차용되었고, <꿈>에서는 오히려 과거지향적으로 도리안 선법이 차용되었다. 음악사的 발생순서가 반드시 세련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유행주기의 차이는 있지만, 음악은 패션과도 같다. 세련되었다고 느꼈던 영계도 반복되어 상투적으로 되어버리면 어느새 촌닭이 되어 버린다. 복고풍이 불 가능성은 항존한다.
언젠가 음악 쌤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마이너 음계의 음악에서 진정 세련된 것은 자연단음계의 음악이라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공감이 된다.
개인적으로 드뷔시 류의 화려한 화성을 수놓는 음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한 화성의 음악을 무조건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단순한 화성 진행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게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레인보우의 <Rainbow eyes>는 로니 제임스 디오(R.J.Dio)라는 탁월한 보컬리스트의 역량 덕분도 있지만, 단순한 화음에 수놓아진 ‘자연단음계’의 미학을 감상할 수 있는 추억의 명곡이다.
확실히 자연단음계는 토속적(?)인 맛이 있다. 자연스럽게 우려져 나온 사골 국물처럼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풍취의 그것이랄까.
Oldies but goodies.
-2015. 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