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맛

-돌이킬 수 없는

by 지얼

언젠가 한 술자리에서 친구 S군이 내게 물었다.

"수지(가명) 씨 생각 안 나냐?"

수지는 20대 시절에 내가 무진장 연모했던 여인이었다.

"나지 왜 안 나겠냐?" 내가 말했다.

오사키 요시오는 소설 <파일럿 피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한번 만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좋든 싫든 그 기억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생각이 안 난다'는 건 순 구라라는 얘기가 된다.

"네가 아주 좋아하긴 했지." S군이 말했다.

"그랬지. 과거에는. 하지만, " 내가 말했다.

"작금에 내가 20대의 나이로 20대인 그녀를 만나게 되면 그다지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이성관이 바뀐 것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작금에 생각하는 수지는 얼굴 빼고는 그다지 매력이 없다.


친구 K군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네게 있어 수지는 '여우의 쉰 포도'냐?


스크린샷 2025-10-15 오전 10.40.52.png 배수지 얘기는 아님.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싸구려 커피' 얘기를 하련다.

1994년의 11월의 어느 날, <제비꽃>의 노래 가사처럼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었던 K군과 내가 학교 정문 근처의 어떤 가게 앞 자판기 커피의 맛은 각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객관적인 맛이 그랬던 건 아니었을 테고, 아마도 시리지 않을 정도의 냉기와 새벽안개가 조장한 '분위기의 맛'이었을 거다. 아마도 작금에 회상하는 그 맛의 실체란 당시의 새벽안개가 거리(街)의 윤곽을 불분명하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어쩌면 20여 년이라는 세월의 거리(距離)가 실제 맛의 윤곽을 지워 버리고 허상의 구미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는지.


또 생각나는 커피는 K군이 자신의 자취방에서 끓여준 '달고 고소한 커피'다. '인스턴트커피 두 스푼+프림 두 스푼+설탕 두 스푼'을 넣은, 이른바 '다방식' 커피.

이때의 맛은 위의 커피보다 아주 조금은 객관적인 데가 있다. 아마도 끓인 물의 온도가 적당했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인스턴트커피는 잘 먹지 않고 핸드드립 방식으로 마신다. 처음에는 핸드밀로 공들여 원두를 갈아 마시는 것이 너무 귀찮아 그냥 인스턴트커피로 때우려 했지만 전동 그라인더를 구입한 다음부터는 원두 특유의 향이 빠진 인스턴트커피에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되었다. 자판기 커피에 만족해하던 싸구려 입맛이 조금은 고급스러워졌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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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소재로 한 만화를 보면 '그때의 맛'을 찾아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나온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어떤 요리의 일인자가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나이가 지긋한 어떤 노인이 소문을 듣고 그 셰프의 식당을 찾아오나, 그 노인은 단지 한 입을 맛보더니 수저를 내려놓고는 자리를 뜬다. 자존심이 상한 셰프가 이유를 묻자 그 노인이 말하기를, 어렸던 시절에 어머니가 해 준 '추억의 맛'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주인공인 셰프는 그 노인의 추억의 맛을 찾아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그는 추억의 맛을 재현하는 데 성공하고, 그 노인은 그 요리를 입 안에 넣는 순간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되찾은 미각을 통해 추억을 강하게 환기하며.


이런 식의주제는 아마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선취한 것일 텐데, 소설의 재미가 어떻든지 간에 홍차와 마들렌은 추억을 환기하는 미각의 힘에 관한 최고의 묘사가 아닐지 싶다. 그래서 '프루스트 효과'라는 말도 생긴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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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맛에 관한 또 하나의 기억.

초딩 시절, 비 오던 어느 토요일 점심에 먹었던 라면의 맛은 그 이후의 모든 라면 맛을 유사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양은냄비에 당시로서는 흔하디 흔한 삼양라면과 김치를 넣고 석유풍로로 끓인 것인데, 그때의 그 맛은 '라면의 이데아'라고나 할까. 만약에 어느 분식집에서 그때의 맛과 똑같은 라면을 먹게 되면 나도 만화의 등장인물들처럼 눈물을 흘리게 될까?

그 '라면 맛의 이데아'의 실체는 뭘까? 적절한 물과 수프의 양, 완벽하게 적절히 익은 면발, (몸에 해로움 여부는 차치하고) 양은냄비라는 재질의 영향, 라면과 조화된 김치의 익음 정도, 석유풍로라는 화기의 영향, 당시의 기후, 내 배고픔의 정도, 그리고 할머니의 손맛 등이 화합하여 이루어낸 것일까?


아니, 작금의 나는 그것이 허상이었다고 생각한다.

탁월한 맛의 음식은 분명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내겐 흔하디 흔한 요리에서 느끼는 '맛의 이데아'란 상당 부분 일종의 환상인 것 같다. 원래는 한줄기 미미한 빛에 불과하지만, 추억의 프리즘을 통과하면 다채롭고 찬연한 빛깔을 띄는 것처럼.


물리적 미각을 넘어 시간이라는 프리즘을 통한 감각적 과장이 개입될 여지가 많은 '추억으로 조장된 맛'의 재현 불가능성을 확신하더라도 만화책에서처럼 과거의 맛을 맛보고 눈물을 흘리는 노인을 보면 프리즘을 걷어치워도 꾸밈없이 간직될 '맛의 이데아'는 실재일 수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많은 경우 과거의 맛은 사적인 허상이 아닐까.

그리움의 집체인 '그 시절'이라는 추상성을 특정 음식이나 인물로 투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맛의 절반은 추억일는지도 모른다.

맛의 절반이 추억이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원두커피에 길들여진 지금의 입맛으로는 당시의 그 싸구려 자판기 커피를 그다지 맛있게 느낄 것 같지는 않다.

같은 얘기를 '그때 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사람 보는 눈'으로 과거로 가게 되면 여전히 수지를 사랑하게 될까?

장담할 수 없다.

여우의 쉰 포도라고?


변화란 과거 지향을 지양하는 힘이다.


-2013.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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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겨울은 추웠고
그리고 조금은 따뜻했다

겹겹이 쌓인

어둠의 두께를 뚫는

풀잎의 노래는 언제나 화려했고

그것이 바람은 슬펐다


이십오 년 전의 낮은 하늘에

고기비늘 같은 눈이 내리면

다가설 수 없는

그리운 길에는

전설 속에서만 사는

새가

울다 날아갔다


-신진호, <겨울이야기> 전문

스크린샷 2025-10-15 오전 11.11.35.png <맛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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