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의 시대
90년대 중후반 즈음에 우연히 신문을 통해 최인호 원작의, 1975년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대한 어떤 평론가의 호평을 접한 일이 있다.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영화를 보았는데 관람 후 내 솔직한 소감은 이랬다.
이게 명작이라고?
영화 스토리는 대충 이렇다.
Y대 철학과에 재학 중인 병태는 그룹 미팅을 통해 같은 또래의 H대 불문학과 재학생 영자를 알게 된다. 급격히 전개된 서구 문명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 온 이들 70년대의 젊은이들은 캠퍼스, 가정 그리고 기존 사회의 벽과 부딪쳐가면서 고뇌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고뇌는 우직스러울 정도의 해학과 자조를 띄우면서도 좀 더 밝고 명랑한 내일을 위해 성장해 간다. 병태와 영자의 사이에는 어떤 사랑의 약속도 없다. 단지 만나고 대화하고... 그리고 병태는 좀 더 큰 성장을 하기 위해 입대하게 된다.
-<네이버 영화>에서
이 영화의 감독은 미국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한 하길종(1941~1979)이다.
훗날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으로 유명해지는 프란시스 드 코폴라도 같은 학교 출신이었는데, MGM영화사가 전 미국 영화과 학생 가운데 4명을 선발하여 주는 '메이어 그랜드상'을 받았을뿐더러 UCLA 강사 자리가 보장되기까지 한 것으로 보아 그곳에서도 꽤 재능을 인정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젊어서 일찍이 시인 김지하를 만나 알베르 카뮈에 경도되기도 했었다고.
사실 나 같은 영화 문외한에겐 하길종이라는 이름보다는 <고교얄개>와 <땡볕> 등의 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하명중 배우가 더 익숙하다. 하길종 감독의 동생이란다.
참고로 하길종 감독의 부인은 故 전혜린의 동생인 전채린이라고.
영화 얘기를 해 본다.
<바보들의 행진>의 텅 빈 강의실 장면은 너무 이상하다. 강의실에서 영철은 심각한 표정으로 병태에게 묻는다.
"병태야, 너 안 나갈래?"
병태는 "난 그냥 여기 남겠어."라며 비장한 표정으로 답변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연고전을 연상시키는 체육대회 씬.
대체 얘들은 고작 체육대회 참가 여부를 두고 왜 이리도 심각하게 말하는 것일까? 뒤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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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초반, 미팅 장소에 가기 위해 때 빼고 광낸 병태와 영철은 재수 없게 장발 단속을 나온 경찰에게 걸린다. 36계 줄행랑을 치는 병태와 영철.
"야, 재수 없게 걸려봐. (머리에) 고속도로 생기지..."
가위, 또는 바리깡을 손에 든 경찰관은 이들을 쫓으면서도 격식 차릴 건 다 차린다. 그 상황에서 지나가는 상급자에게 "근무 중 이상 있습니다"라거나, "수고하십니다"라고 외치며 거수경례를 하는 등, 경직된 관료제와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장면이다.
결국 경찰서로 끌려간 병태와 영철.
"우리 머리 가지고 왜들 그럴까?"
"헤헤... 혐오감을 준데. 그래서 깎아야 한데. 헤헤..."
이런 시대였다. 장발이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가위질을 해대던.
병태와 영철의 자조적인 대사.
"난, 내 힘으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끅(딸꾹질)... 못 하나 박을 줄도 모릅니다..."
"정말이에요.... 우린 쪼다예요. 바보, 병신이에요. 대학교도 어떻게 들어갔는지 아세요?"
"우리 집이 돈이 많으니까... 끅... 날 철학과에 돈으로 넣었어요..... 난요, 이다음에 돈을 많이 벌 겁니다."
여학생의 물음.
"철학과 나와서 어떻게 돈을 버시죠?"
예나 지금이나.
이런 영철이 술만 마시면 내뱉는 말. "난 동해 바다로... 고래 잡으러 갈 거야..."
뭘 동해 바다까지... 동네 병원 비뇨기과에서도 잡아주는데.
병태가 '우리들의 미래'를 언급하는 장면에서 여자친구 영자는 이렇게 무안을 준다.
"흠, 너하고 나하고는 동갑 아니니. 넌 조금 있으면 군대 가야지... 3년 갔다 와서 졸업. 취직하면 난 벌써 할머니가 되어 있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여자는 한참 비쌀 때 팔아야 하는 거래. 난 바겐세일 하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넌 철학과잖니? 철학과 나와서 날 어떻게 벌어 먹일래?"
이런 反페미니즘적 대사는 진화심리학보다는 시대정신의 반영이리라.
영자의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한다.
"난 후회해. 여자로 태어난 거..."
"요새 세상엔, 여자가 제일 한심해. 시집가면 애 낳고, 남편 월급 쪼개고, 시어머니 눈치만 보지."
강순자와의 첫 데이트에서 만취한 상태로 술집에서 내 쫓긴 영철. 12시 통금(통행금지)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진다. 그땐 그랬단다.
이어서 위에서 언급한 '체육 대회'씬이 나온다.
"병태야, 너 안 나갈래?"
"난 남아 있을래."
'나가자, 인마!"
"난 남아 있겠데두 그래."
"좋아... 난 나가겠어."
이어지는 교수님의 대사.
"아니, 이렇게 매일 응원 연습을 해야 되나?"
그리고 이어지는 체육대회 장면.
영철에겐 '응원 연습'이 그리도 심각했던 걸까? 그럴 리가. 다만 유신 철폐를 외치는 데모 장면이 체육대회 장면으로 바꿔치기된 것이다.
개봉 전 사전 검열에 의해.
신중현의 노래, <거짓말이야>와 <미인>이 각각 '불신 풍조 조장'과 '퇴폐 풍조 조장'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하길종 감독의 '영화가 사회 현실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영화 철학은 군사 독재와의 충돌이 이미 예견된 일이었으리라.
박정희 독재 정권의 영화에 대한 정책 홍보 도구화는 이미 1960년대부터 꾸준히 획책되어 온 수단이었지만,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이는 더욱 강력하고 노골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물론 영화는 유신 이념을 선전하거나 적어도 동조하는 것이어야 했고, 사전 각본 검열과 사후 실사 검열의 이중 검열 장치는 긴급조치 수준으로 강화되었으며, 중앙정보부 요원이 검열 과정에 참여해 무지하고 자의적인 횡포를 부렸다.
-변인식, <한국 영화사> 중에서
이렇게 개봉 전 검열에 의해 삭제된 장면이 30분가량 된다고 하니, 자신의 작품이 난도질당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심정이 어땠을까?
강의가 불가능해진 교수는 "병태 군, 나와서 칠판 좀 지워요."라고 말하고는 강의실을 나간다. 병태가 칠판 앞으로 다가갈 때 칠판에 적혀있는 글씨가 의미심장하다.
Aristoteles "Utopia"
칠판을 지우던 병태는 교수가 칠판에 써놓은 '이상국가'라는 낱말을 잠시 바라보다가 지우개로 '이'자를 지우고 이어서 '상'자에서 'ㅇ'을, 그리고 '국'자에서 받침의 'ㄱ'을 지운다. 이어 '가'자를 '라'자로 바꾸자, 남은 글씨는 '사구라.'
병태는 분필을 집어 들더니 '구'자를 향해 분필 든 손을 가져간다. 그가 쓰려던 글씨는 무엇이었을까?
사쿠라?
그러고보니 당시 아주 높으신 분의 전직이 일본군 장교.....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무려 30분 분량이 사전 검열에 의해 삭제당했다고 한다. 술집에서 병태가 일본인과 싸우는 장면, 경찰서에 들어간 병태와 영철이 여자의 옷을 벗기는(대체 왜?) 장면, 데모 장면 등이 그것인데, 무려 다섯 번이나 검열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비속어도 통제의 대상이어서 '군바리'는 '군인'으로, '군대 가는 기념으로 딱지나 떼야겠다'라는 대사는 '군대 가는 기념으로 목욕이나 하러 가야겠다'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
자신의 작품을 난도질당한 하길종 감독의 분노와 슬픔의 심정은 다음의 글에서 느낄 수 있다.
"사실상 영화가 검열에서 커트되기 전, 시사회에서의 반응은 상당히 고무적인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사상 유래 없이 검열을 다섯 번이나 받는 기록을 수립했고, 검열 결과 많은 부분이 참혹하게 피를 쏟듯 잘려나가고 작품은 연결도 잘 안 되는 난장판이 되어 일반 관객들에게 공개된 것이다. 나는 슬프고 부끄러워 개봉 첫날부터 극장 구석에 숨어있었고, 만나는 사람에게는 영화가 30분씩이나 커트당했음을 변명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비난을 회피하고자 은근히 노력도 하였다.(...)
그때 나는 마치 눈알과 입이 없고, 팔다리가 하나씩 잘려나간 나의 모습을 공개하는 것과 같은 아픔과 분노, 그리고 구토를 느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흐름과 연결이 산만하게 느껴진다. 러닝타임을 두 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30분 분량의 삭제란 전체 영화의 1/4에 해당되는 장면이 잘려 없어졌다는 건데, 이런 상황에서 영화의 유기성을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일 거다.
그 산만함에는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몇 개의 에피소드가 산재해 있는 듯한 인상인데 그 에피소드들은 명랑과 우울의, 서로 대립되어 보이는 이미지로 채워져 있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라도 영화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데, 이에 대해서 철학자 김영민은 이렇게 썼다.
... 낭만적으로 튀면서도 근본에서 허무할 수밖에 없는 젊음의 분위기를 잡아낸 단편들은 그저 역사를 잃어버린 '풍경'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다시 그 풍경은 그 기원을 은폐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고래'는 바로 이 풍경의 사이비성을 고발하는 실제의 은유에 다름 아니다.
(...)
하길종에게 1970년대의 엄혹한 군사독재의 현실은 한 마디로 사이비의 그것이었으며, 이 퇴로 없는 현실을 뚫어내기 위한 영화적 노력과 절충 속에서 '바보'와 '고래'가 탄생한다. 어느 평자의 지적처럼, 그는 "일종의 무뇌아적인 대사들로 현실의 암담함을 간접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므로 앞서 시사한 것처럼 철학과 대학생들의 낭만과 사랑, 그리고 허무라는 표면의 이야기는, 풍경이 기원을 숨기고 이야기가 역사를 감추는 시대에 그가 선택한 우회로에 불과하다.
-김영민 <영화 인문학> 중에서
하길종 감독은 귀국 후에 만든 예술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상업 영화로 방향 전환을 모색한다. 그러나 영화의 현실 참여를 철학으로 가지고 있던 하길종에게 자신의 성향을 배제한 영화를 만들기란 마치 안 맞는 옷과도 같았을 터. 따라서 그는 외견상으로는 재기 발랄한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와 낭만주의적 우울을 전면에 내세워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함과 동시에 현실 고발과 풍자, 그리고 조롱의 컷을 군데군데 삽입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이러한 '절충'과 '우회로'에의 선택의 결과는 사전 검열로 인해 빛이 바래긴 했어도 어느 정도 성공한다.
당시 조선일보 기사 내용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해 준다.
... 하 감독이 만들고 싶어 한 영화는 참여 의식이 강한 소셜 드라마였다. 이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는 제작자를 설득하는 방편으로 흥행 영화에 손을 댔다. <속 별들의 고향>과 <병태와 영자(바보들의 행진 속편)>가 바로 그것이다.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제작자를 설득시켜하고 싶은 작품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노렸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병태와 영자>는 그의 유작이 되어버린다.)
하길종은 한국 영화의 개혁에 대해서 "참다운 창작의 자유 아래 리얼리즘과 접근하는 기초적인 작업의 재출발에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의 본질적 기능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영화 작가의 일상적 내적 가치의 탐험을 통해 리얼리티의 집합적 요소를 관찰하고 조망함으로써 현실을 투시하고 이를 진실되게 전달하는 힘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표현해 주는 미학적인 원동력에서 영화는 시작된다."라고 말한다.
그는 '영화 미디엄의 재발견'이라는 글에서 로제 만델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가 대중 예술이므로 그것이 사회, 문화 현상을 반영한다는 것은 현금에 와서도 진리로 평가된다. 그러나 새 세대의 영화는 단지 이런 소극적인 기능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의해 영향을 받아 그 사회가 진실로 적응하고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경향으로 영화가 선도하는 임무를 지니고 있다."
............ 영화 창작자로서, 또한 비평가로서 그리고 영화 이론가로서 한국 영화계의 살벌한 검열과 싸우면서 대중소설을 영화화할 수밖에 없었던 하길종은 자조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피고'라고 판정하며 속박당하는 현실을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그는, "인간주의로 인간의 편에 서 있지 않은 작품은 일체가 사이비다."라고 선언하였다.
-김수남, <한국영화 전복의 감독 15인> 중에서
... 서슬 퍼런 검열에 이리저리 찢기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서글픈 기록이지만, <바보들의 행진>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특수성, 특히 유신 체제라는 정치적 도그마에 대한 역사적 감각 없이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다. "한국영화는 세계 속의 어디쯤 있는가. 아무 곳에도 없다. 싹도 없고 잔해도 없다. 설익은 모방과 지저분한 상흔만이 있다."라고 한 하길종 감독의 탄식처럼, 그것은 시대에 좌절한 청년들의 미로 같은 저항이자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한국영화사> 중에서
그 어떤 작품이든,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말해져야 한다. 하지만 '작품 그 자체로 말하려는 시도'가 철저하게 봉쇄된 70년대라는 상황에서 그런 잣대를 적용한다는 게 얼마나 가당찮은 일인가.
수작이니 범작이니 하는 평가 이전에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사전 검열의 서슬 퍼런 난도질이 한 총명한 감독의 작품을 범작 이하로 퇴락시킬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영화 후반에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떠난 영철이가 자전거에 탄 채로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자살 장면은 어떻게 검열의 가위를 피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자살 씬은 검열을 피하지 못했다. 화삭(화면삭제) 대상이었던 거다. 그런데 어떻게 이 장면을 극장에서 볼 수 있었을까?
원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던 최인호의 인터뷰에 의하면, 상영 당일 하길종과 최인호는 삭제된 필름을 해당 기관의 창고에서 몰래 훔쳐내어 급히 극장에서 이어 붙였단다. 최인호의 말에 의하면, 신상옥 감독이 예전에 이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는 통에 그의 영화사'신필름'이 없어져 버렸다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입영 열차에 탄 병태가 간만에 재회한 영자에게 말한다.
"걱정 말라고, 영자야. 3년 후에 보자!"
"병태야, 고개 좀 내밀어."
"뭐라고?"
"고개 좀 내밀라고!"
그러나 차창 밖의 영자의 입은 열차 안의 병태에게 닿지 않는다. 결국 착한 헌병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병태는 영자와 키스하는 데 성공한다. 오랫동안 회자되는 장면이다.
자신의 진짜 예술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검열과 상업영화 제작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하길종 감독은, 9년 동안 시나리오를 준비한 <태인전쟁>을 끝내 만들지 못하고 39세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고 만다.
"나에게 왜 좋은 영화를 못 만드느냐고 묻지는 말아 주십시오. 나는, 아니 우리 모두가 이렇게 지탱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니까...."
-201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