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인위적 조작의 힘

by 지얼


와우! J.S 바흐의 크랩 캐논(Crab canon : 역행 캐논)을 뫼비우스의 띠로 아주 쉽게 알려주는 동영상이라니!
어떤 경우의 음악은 일회성 신내림(?), 혹은 영감에 의존하는 게 아닌, 장시간 노가다(?)의 산물이라는 것을 크랩 캐논은 잘 보여준다.

"음악은 감성적 느낌으로 접하는 것이지, 이성적 생각으로 접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성적 생각이 감성적 느낌을 도울 때가 있다. '알고 보니 더 좋게 느껴지더라'는 식의 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구조적 속성은 느낌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의 성질이라기보다 생각으로 알 수 있는 대상의 것이다. 한없이 자연스러운 진행의 선율이라고 느껴졌던 음악을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리고 그 구조를 성립시킨 사전 조작을 알고 나면, 음악이 영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위적 조작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이강숙 저, <음악의 이해>중에서.

사실 음악의 왼쪽 날개가 직관에 의한 악상이라면, 오른쪽 날개는 '머리 굴리기'에 의한 '인위적 조작 능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모 음악 사이트에서 "음악 공부한다고 음악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창작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를 수 차례 듣게 된다. 일면 맞는 얘기다.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은 딱히 선법(Mode)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그것을 사용했다. 몇몇 대가급의 재즈 연주가들 중에서는 모드에 대해 이론적으로 뭔지 모르면서 모드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배움은 쓸모없는 것일까?

쓸모없다고 생각한다.

서구 음악의 전통적인 분위기와 기운(?)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는 천재라면.


"음악 공부한다고 음악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음악 창작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라는 얘기의 핵심은 결국 '음악 창작이란 타고 난 천재들의 몫'일뿐이라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세계관의 반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19세기 음악의 천재들 중 음악공부를 등한시 한 음악가는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명도 없다.

이강숙 교수의 말을 더 경청해 본다.

"좋은 음악의 가치에 감복하는 사람들은 하늘의 힘으로 그 음악이 만들어진 것 같은 신성스러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구조 분석 공부를 하다 보면 그 신성스러움도 인간이 조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음악의 값어치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추어에게는 비하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프로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파헬벨의 3성부 돌림노래인 Canon도 어찌 보면 정신적 막노동(?)-인위적 조작에의 산물임에는 틀림없다.




'음악은 배워 익히는 게 아니라 역시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외려 감각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작/편곡 과정의 상당 부분은 '빛나는 영감'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 조작'으로 다루어지는 건 아닐까? 리듬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자.


흔히들 리듬은 지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맞는 얘기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토속적인 리듬을 연주할 때 악보를 펴놓고 리듬을 분석해 가면서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원주민들이 아니다. 이 점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타고난 그 무엇이 있을 수도, 또는 없을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는 되지도 않는 감각으로 그들 꽁무니를 따라가려고 할 게 아니라, 먼저 이성적으로 접근해서 분석한 후, 그것을 익혀 내재화(감각화) 해야 한다. 먼저 이성적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감각'에 의존한 자신의 리듬감이 사상누각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다음 시험(?)의 통과 여부에 따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 1] 빠른 6/8박자의 악곡에서, 갑자기 3/4박자로 전환되는 음표들과 맞닥뜨렸을 때 주어진 템포를 정확히 유지하며 변박을 실행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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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2] 3/4박자의 악곡에서 한 마디(세 박) 안에 일정한 시간적 간격으로 배열된 4개의 음(넷 잇단음표)을 템포를 그르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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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3] 위 악보의 마지막 마디에 3박자의 내성을 삽입할 경우, 실행이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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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문제들에 대한 해법은 힌트만 제시하고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문제 1]은 '빵 두 개를 세 명이서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방법'을, [문제 2]와 [문제 3]은 '빵 세 개를 네 명이서 공평하게 나누어 먹는 방법'을 강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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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런 이성적 접근이 리듬에서 뿐이랴. 화성의 조직은 더하다.

화음 간 연결은 다음과 같이 치밀하게 조직된다. 상성과 하성, 그리고 내성은 무작위적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 악보의 경우) 각각 사진행/반진행의 질서에 의해 배열된다.

스크린샷 2025-10-20 오전 10.23.56.png A.B.Mangore, <Catedral> 후반부 화성 진행


아래 악보의 하단을 보면, 맨 꼭대기의 동그라미 표시한 주선율과 맨 아래의 동그라미 친 대선율은 각각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주선율은 점진적 하강, 그리고 대선율은 점진적 상승 곡선을 그림으로써 두 개의 선율이 그린 직선은 종국에는 한 점에서 만나는 듯하다.

이런 것은 지극히 이성적인 조작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이다.

스크린샷 2025-10-20 오전 10.25.08.png J.S.Bach, <Chaconne> 후반부의 '대위법적' 아르페지오 진행


선율?

장담하지만 농축된 재료가 없다면 장음계와 단음계를 벗어난 음악은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듣고 자란 게 그게 전부이니까.

재료의 빈곤함은 상상력의 빈곤으로 이어진다.

뭔들 안 그러겠나.



흔히들 '음악은 지성이 아니라 감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여기서 얘기하는 '감각'이란 문맥상 인식론에서 말하는'감각'을 뛰어넘는 개념이다. 아마도 '영감'이나 '착상'같은 직관적인 것을 칭하는 것이리라).

혹자는 그러한 '감각'에 대해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일축함으로써 음악 창작에 신성을 부여하고 싶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예술적) 감각'이란 다름 아닌 '경험의 총체'에 영감과 센스가 더해진 거다.

과거 유럽의 음악가들에겐 이미 그 이전 시대, 혹은 당대의 음악적 지식과 경험이 환경과 교육에 의해 내재되어 있었고, 그들이 한 일은 '기존 전통의 작법들은 고리타분하니까 이걸 좀 비틀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겐 애초에 '비틀만한' 음악적 재료들을 경험적으로 축적해 놓은 상태였다는 것.


"공부한다고 해서 작곡이나 편곡을 베토벤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물론이다. 근데 그게 어디 예술뿐이랴. 물리학과 천문학 공부한다고 누구나 다 스티븐 호킹처럼 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왜 '쓸데없이' 그런 공부를 하는가?

'현대문학이론'을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 다 이언 매큐언처럼 소설을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현대시작법'을 통독한다고 해서 메리 올리버처럼 시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걸 안 보고도 잘 쓰면? 소수의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는 늘 극소수다.

그리고 우리가 꼭 스티븐 호킹이나 이언 매큐언, 혹은 베토벤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작가 이문열 말마따나 우리가 우주를 빚을 수는 없어도 한 송이 꽃은 빚을 수 있지 않을까?


Sex Pistols, <Anarchy in U.K.>


물론 세상에는 선율학이니 화성학이니 하는 학문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 장르는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런 장르들이 하찮은 것은 아니다. 뭐든 직접해 보면 어려움을 안다.

결국 문제는 스마트폰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양자역학을 무시하는 경우라는 얘기다.


-2013.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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