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만인의 세상에서
어린 시절에 나는 조용한 가을 밤에 창 너머로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별들이 총총거리며 울고있구나..."
삼십 년 후,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작가 이만교가 쓴 <글쓰기 공작소>라는 책을 보다가 비슷한 생각을 한 시인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되었다. 그 시에 대해 이만교 작가는 이렇게 평했다.
[...이렇게 아이처럼 순진한 시청각적 상상이, '귀똘이들이 별의 운행을 맡아가지고는 수고로운 저녁입니다'와 같은 시구를 낳게 만들었을 것이다.]
정육점을 운영하시는 한 선배님으로부터 다량의 고기가 배송되었을 때, 나눔의 실천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현자 K선생에게 전화를 드렸다.
"랍비시여, 저에게 먹음직스러운 소고기가 있사오니 언제 시간되실 때 오셔서 시식 좀 하지 않으시렵니까?"
그리하여 시식의 날이 오고, K선생께서 왕림해 주셨다. 같이 온 후배 태정(가명) 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고기에 필요한 온갖 양념과 식재료들을 마트에서 잔뜩 사왔다.
군침을 흘리는 이분들 앞에 냉동실에서 꺼낸 고기를 내민 순간, K선생께서 경악하며 말씀하시기를,
"이게 무슨 소고기야!!!"
이후에 나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선생으로부터 `모지리`혹은 '사회 부적응자' 소리를 지속하여 듣게 되었다.
지난 주에 술 한잔 했을 때, 선생께서 내게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젊은 날의 총기는 다 어디 가고 왜 이렇게 됐냐.... "
기억에는 없지만, 이렇게 변명했을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사랑이 내 총기를 다 갈아 마셔버렸습니다...
출출하던 차에 어떤 지인 분께서 주신, 냉동실에 보관해 둔 떡을 꺼내 전자렌지에 돌렸다. 2분 후에 그것을 꺼냈더니...전부 물처럼 질척대는 것이 아닌가.
글타.
그것은 떡이 아니라 아이스크림이었던 거다.
한 구짜리 인덕션 렌지가 생겼다. 때마침 전기 렌지가 고장난 통에 이것을 사용했다. 라면 물을 끓이기 위해 냄비에 물을 담아 인덕션 렌지 위에 올려 스위치를 켰더니...어라, 에러 표시가 뜨는 거다. 뭐야... 불량 제품인가.
인덕션 렌지는 자기장을 이용하기 때문에 인덕션 렌지용 냄비를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문득 자기객관화가 이루어졌다.
세상에 이런 사실을 모르는 성인 인간이 또 있을까...
세상을 너무나 모른다고
날 보고 그대는 얘기하지
조금은 걱정된 눈빛으로
조금은 미안한 웃음으로
K선생은 고딩 시절에 이 노래, <그것만이 내 세상>을 '그건 만인의 세상'이라고 잘못 들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게, '만인의 세상'으로 들으려고 하면 실제로 그렇게 들리기도 한다. '바이든은' 아무리 '날리면'이라고 들으려고 애써도 그렇게 들리지 않지만.
아니, 어쩌면 일부 닝겐들에게는 정말로 '날리면'으로 들리는 것은 아닐까? 맹목적 신뢰와 충성심이 청각을 왜곡시킨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삼겹살을 소고기로 잘못 인식하는 시각 이상의 인간도 있는 마당에 그까짓 청각적 왜곡 쯤이야.
'만인의 세상'은 내 멋대로 해석하건대, 아마도 '인싸(인사이더)의 세상'일 거다. 인덕션 렌지 전용 냄비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인간은 만인 바깥의 존재, 즉 '아싸(아웃사이더)'일 테고.
청각적 대상을 시각적 대상으로 확대할 줄 알았던, 공감각적 상상력으로 충만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시각적 대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감 부재의 멍청이만 남겨진 것인가.
다발성연애경화증이 삼켜버린 총기는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어느 일본인 기타리스트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프랑스 유학을 갔을 때, 돈을 찾기 위해 은행을 찾았어요.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대체 내가 왜 이런 것을 해야 하지?' 왜냐하면 일본에 있을 때는 매니저가 다 알아서 해줬거든요." 어쩌면 돈 찾는 법을 잘 몰랐을 수도 있다.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는 수용소의 정치범으로 전락한 후에도 신발 끈조차 맬 줄 모른다. 평소에 환관이나 시녀들이 알아서 다 해주었기 때문이다.
만인이 다 할 줄 아는 생활의 잡사를 못하는 것은 압도적 인싸에게는 '능력'이지만, 나 같은 듣보잡 아싸에게는 그저 '불능'에 불과하다. 만인이 다 아는 것을 압도적 인싸는 몰라도 되지만, 아싸의 무지는 생활부적응의 딱지일 뿐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꼬우면 성공해라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은 <아웃사이더>의 노랫말을 이렇게 썼다.
[더부룩한 머리에 낡은 청바지 며칠씩 굶기도 하고
검은색 가죽 점퍼 입고 다녀도 손엔 하이데거의 책이 있지(...)
누구의 이해도 바라질 않고 지난 일에 집착하지 않아
아무도 이해못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웃는 나는 아웃사이더]
이 가사를 들으면 존 스튜어트 밀의 얘기가 생각난다. 배부른 돼지가 되기 보다는 배고픈 테스형(소크라테스)이 되는 게 낫다는. 근데 내가 보기에 밀 선생께서는 제대로 굶어보지 않아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내 생각은 이렇다.
며칠씩 굶은 꼬라지에 하이데거는 무슨 염병할 하이데거
허세가 남루함을 채워주지는 않는다. 게다가 아무도 이해 못할 말을 하고 돌아서서 웃는 건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걍 허세충 아닌가?
그럼에도 '아싸(아웃사이더)'라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비범한 존재라고 하니(예컨대 블레이크 경은 모래알에서 우주를 본다고 했다), 삼겹살에서 소고기를 볼 정도로 비범할 뿐더러 또 삼겹살로 인해 배고프지도 않을 나는 나름 자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허세와 자뻑은 엄연히 다른 것!
https://youtu.be/Aomt_cCNXO0?si=7cpIbU4fbwazdJ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