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2015년 3월 3일의 일기
마트 내의 완구점에서 베이맥스를 보며 군침을 흘리고 있는데 앞에서 웬 초딩이가 얼쩡거린다. 내가 베이맥스를 가리키며 "저거 진짜 갖고 싶지 않냐?"라고 물었더니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동류의식을 거부하는 치사한 초딩이 같으니라고.
순간 그 초딩의 머리 위로 생각의 말풍선이 구름처럼 떠오르고, '좀 나이 값을 하세요'하는 글자가 새겨진다. 나는 마음속으로 '저걸 디자인한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라고 애써 위로한다.
로봇에 대한 미적(?) 취향은 초딩이 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별로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반해 도시인으로서 문명의 정도는 그때보다는 훨씬 심화된 탓에 문명의 이기(利器)가 없으면 영 불편하다. 베이맥스를 감상한 직후에 급작스럽게 신호가 와서 급히 마트 내의 공중화장실을 찾았다. 일을 다 본 후 변기의 오른쪽을 더듬는데 뭔가 있을 게 없다.
아차,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지. 비데가 없구나. 하여 어쩔 수 없이 저급의 비치용 휴지를 사용하는데 영 찜찜하다. 몇 년 사이에 고급진 학문이 되어버린 거다.
※ 학(X)
항(O)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시내버스의 좌석에 앉으면 창이 너무 높아 바깥 풍경이라고는 하늘이나 건물의 상단만 보였던 그 시절에, 푸세식 화장실의 그 예측할 수 없는 수렁의 아득한 깊이는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와 더불어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몸이 작은 만큼 변기 구멍의 너비는 너무나 넓어서 '쪼그려 싸' 자세로 오랜 시간을 버티다 보면 다리가 후들거려 추락에 대한 공포감이 심화되곤 했다. 하여 결국 변기 옆 공간에 신문지를 한 장 깔고 일을 봤던 기억이 난다.
신문지는 또 다른 용도로도 사용되었었다. 화장지라는 걸 모르고 살았던 시절이었으니, 아주 가끔은 정치면에 실린 각하의 면상을 인분으로 도색하기도 했을 거다.
화장실도 없었던 숲 속이나 밭 등지에서는 가끔 이파리 따위들을 애용했던 기억이 있다. 추억 돋는 자연인의 삶이다.
그랬던 주제에, 이제와서는 공중화장실에 비데 따위가 없다고 구시렁대는 꼴이라니.
푸세식 화장실에 관한 불쾌한 기억이 하나 더 떠오른다. 야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며 온갖 후까시를 다 부리는 통에 나와 친구들이 '윤발이'라고 불렀던 동기생이 한 명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자취방에 잠깐 들렀는데, 하필이면 그때 신호가 오는 거다. 화장지를 챙긴 후 바깥 마당의 구석에 있는 푸세식 화장실에 가려고 방문을 여는 순간, 그가 무심히 한마디 말을 던진다. "잘 피해라." 영문을 모르는 나는 급해서 그의 말을 무시하고 화장실로 향한다. 잠시 후, 전깃불도 안 들어오는 캄캄한 화장실 안에서 '쪼그려 싸' 자세로 건더기를 자유낙하시킨 직후에야 비로소 그 말의 의미를 깨닫는다.
막대한 양의 화장지를 소비하고 나서 방에 들어오니 "잘 피했냐?"라고 윤발이가 얄밉게 묻는다. 나는 "다음에 네 차례 때는 아마도 홍수가 날 것"이라고 경고를 한다.
당시 수세식 화장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는 엉덩이를 타인의 인분수로 적셔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공감을 하고도 남을 거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너무나 문명인이 되어버린 탓에 비데 없는 수세식 변기를 보고 불평을 한다. 학문을 간질이는 분무액의 수압에 변태적 기분을 느꼈던 게 엊그제일 뿐인데.
※ 학(X)
항(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