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저렴하게, 더 빠르게

‘반복 가능한 성공’과 멀어지는 선택들

by 디지털 수공업

다음은 『Start with Why』 2장 〈당근과 채찍: 진짜 선택을 이끄는 것은 따로 있다〉를 읽고 남긴 기록이다.


2장에서 저자는 기업이 ‘조종’ 전략에만 의존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말한다. 여기서 조종이란 사람을 움직이기 위해 외부 자극을 거는 방식이다. 예컨대 가격 인하, 혜택(프로모션·캐시백), 공포·불안 조성, 열망 자극, 사회적 압박, ‘혁신으로 가장한 참신함’ 같은 것들이다. 효과는 분명하고 빠르지만, 그 선택이 ‘신념’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이전 직장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기업 입찰에서 LG CNS, 삼성 SDS 같은 대형 SI/SM 기업과 경쟁했던 경험이다. 당시 우리 회사의 제안 전략은 단순했다.

더 짧은 프로젝트 기간

더 저렴한 단가

더 적극적인 요구사항 수용


입찰 단계에서 발주처가 우리를 선택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비전과 미션에 공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싸고 빠르다”는 조건 때문이었을까. 2장은 이런 질문을 피하지 못하게 만든다. 조종으로 만든 선택은 언제든 더 강한 조종 앞에서 갈아탄다.


반복되는 입찰의 결과, 무너져 내린 것은 결국 내부였다. 우리가 제공하려던 신념과 가치, 회사가 지향하던 비전은 흐려졌다. ‘고객 중심’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의 기준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를 가장 빠르게, 있는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객은 불편함은 알아도,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요구사항을 그대로 옮기는 일은 종종 모래성을 쌓는 것과 닮아 있다.


요구사항을 충족했는데도 고객 반응은 시큰둥했다. 제품은 점점 처음의 컨셉과 멀어졌고, 여기저기 덧댄 누더기처럼 변해갔다. 결국 ‘고객 중심’이라는 말로 만들어진 제품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형태가 되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결국 그저 그런 외주 업체로 수렴했다. 더 짧은 기간, 더 싼 단가를 약속하는 순간부터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기업이 제안한 기간은 그간의 경험이 만든 ‘현실적인 기준’이다. 그보다 더 빨리, 더 싸게 하겠다는 말은 결국 사람을 더 갈아 넣겠다는 선언이 되기 쉽다.


쫓기는 마감과 업무 속에서 우리는 정체성 없이 발주처 요구사항에 끌려다녔다. 그럼에도 임원들은 “왜 더 나은 가치 제안을 못하느냐”고 직원들을 질타했다. 하지만 가치 제안이 사라진 구조에서, 그 요구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발주처가 정말 만족했을까. 우리의 가치를 느꼈을까. 다음에도 우리를 선택할까.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싸게 했다”는 조건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다음번에는 우리보다 더 싼 회사를 찾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들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고, 내부에도 남는 것이 없었다. 마진도 남기지 못하니 성과급을 챙겨주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고, 하얗게 불태운 직원들에게 남은 것은 보람도 성취도 아닌 소진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회사에 충성심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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