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체질의학 소설>인연생기

인연생기(因緣生起): 모든 것은 인연따라 일어난다는 뜻이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15. 단군 의통의 인연과 소명


”무슨 일이든 통달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생각하라 “

승학이 사상체질의 원전 ‘동의수세보원’을 읽고 있을 때 사부는 이렇게 말했다.

“통달하지 못한 것을 생각만 해도 깨달을 수 있나요?”

“좋은 질문이야. 그건 아니야. 지식을 쌓고 경험을 통해서 통달을 위한 생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생각만으로 통달할 수는 없지.”

그는 답변을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했다.

“사상체질의 창시자 이제마 그 어른이 그 말을 했지. 하지만 통달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야. 생각 또한 그냥 되는 것이 아닌 것이야. 공부의 체계를 통해서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네.”

승학은 그간 쌓아두었던 궁금증을 끄집어내었다.

“사상체질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 말씀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자네가 물어보니까 솔직히 말하지. 사상체질은 이제마 선생이 연구를 하셨지만, 완성된 학문은 아니야. 이제마 선생 자신도 초기엔 체질감별이 안 되어 많은 시행착오를 하셨지. 현재까지도 성격이나 체형으로 감별은 하지만 확실하지 않지. 감별이라는 말은 병아리 감별과 같이 확률이지 확정은 될 수가 없지.”

승학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그 간의 의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저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감별은 진단이나 분석과 달리 느낌으로 통밥을 맞추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 제가 느낀 그것이 맞는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이 참 문제라고 할 수 있지. 나의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내게 이렇게 말했지. ‘사상체질을 제대로 통달하는 법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어. 그것은 과학이 더 발달되어야만 알 수 있다고 하셨어. 내 세대가 아닌 자네 세대에 ‘동의수세보원의 비밀’이 풀리면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지.”

“왜 사부님 세대에는 그것이 안 되는가요? 과학이나 현대의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말씀을 하셨어. 단군 의통을 비밀리에 전하는 이유도 따로 있다네. 의학이 생명체처럼 계속 진화할 수 있도록 고유의 비법을 보전하고 발달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어. 만약 단군 의통이 세상에 공개되고 보편화되어 버리면 고유의 그 정신이 훼손되기 때문이지.”



“그 정신이 어떻게 훼손이 된다는 뜻인가요?”

“서예의 대가 왕희지가 말한 비인비전(非人非傳)이라는 말이 있다네. 올바른 사람이 아니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생존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비전을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야.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만큼 소중하고 꼭 해당되는 사람에게만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야. 절대적 의무감을 가진 말이 비인비전인 것이지. 만약 다수에게 공개되면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며 그 정신이 반드시 훼손하게 되어 있는 것이야.”

승학은 그제 서야 이해가 되었다. 사부는 한참 생각을 하다 뚜벅 말했다.

“ 이제마 어르신은 자신의 연구가 빨리 결실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도 내다보았다네. 이론의 근간은 세웠으나 충분한 변증의 사례를 완성할 틈이 없었지. 그는 1900년 임종 전에 이렇게 유언을 남겼다네. ‘나는 이제 가지만, 백 년 후의 세상은 사상의학으로 귀일(歸一)할 것이다.’ 그 뜻은 과학 문물이 발달하여야만 체질의학이 완성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네.”

“사부님, 2000년이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멀었지 않습니까? 과연 그렇게 될까요?”

“아마도 자네 시대의 몫이 되겠지. 사부님은 그전에는 확실한 체질감별을 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어.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함부로 체질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야.”

승학은 사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궁금한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질문을 했다.

“체질감별법이 확실하지 않다면 미완성의 학문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지. 의학의 기본은 확실한 진단이야. 그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사상체질론이 되는 것이지.”

승학은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아직 미완의 체질론이라면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닌가? 하지만 감히 그 질문은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부님, 사부님의 사부님은 아직도 생존하고 계신가요?”

“아직 살아 계시지. 내가 자네를 만난 것이나 그분을 만난 것이 다 인연의 사슬이야. 이 우주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절대 없다네. 나의 사부님을 만나 뵌 이야기를 해 줄 테니 잘 듣게나.”


사부는 오래전 기억을 더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청년 손계환은 20대 후반에 교직에 몸담았다. 그러나 장남의 무거운 책임으로 인해 그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박봉으로 7남매의 형제를 부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30대 초에 교직을 접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타고난 열정과 성실성으로 사업을 키웠다. 동대문에서 의료계통의 도매업을 통해 한 때 돈도 많이 벌었다. 가정을 이뤄 동생들을 뒷바라지하고 자식들의 교육이 끝나갈 즈음까진 그랬다.

하지만 그 무거운 책임이 다 끝나갈 무렵 40대 후반에 부도를 맞았다. 믿었던 친구에게 치명적인 배신을 당했던 것이다. 전 재산이 날아가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힘든 시기에 장성해서 터를 잡은 동생들은 등을 돌렸다. 아내는 자식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갔다. 당시 그는 충격에 화병을 얻었다. 술과 담배로 그 병은 여러 가지 합병증이 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세상에 한 톨 미련도 없어졌다. 그의 병은 위중했다.

하지만 빚쟁이한테 시달리는 통에 치료를 할 수 조차 없었다. 그는 죽기 위해 속리산행을 결심했다.

속리산(俗離山)은 한자로 속세를 떠난 산이란 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속세를 떠나고 싶어서 그 산을 향했다. 그가 차에서 내려 힘없이 산을 향해 걸어갈 때 누군가가 불렀다.


“여보시게, 나 좀 보세.”

그는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40대 초반의 젊은 사람이 자기를 바라보는 듯했다.

그는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떼려고 했다. 그때 조금 더 높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말했다.

“고개 돌리지 말고 자네 나 좀 보세.”

그가 다시 고개를 돌리자 그 젊은 사람이 손짓을 하며 다시 말했다.

“맞아, 자네가 맞네. 전 재산 다 날리고 중병이 들어 죽으러 가려고 하는 사람이 여기에 자네밖에 더 있나?”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았다.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사람이 자신을 업신여기는 듯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여보시오, 당신이 누군데 나를 놀리는 것이오. 젊은 사람이 예의 없게 첨 보는 연장자한테 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이유가 무엇이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이 사람아, 자네보다 나이 많은 아들이 있는 사람한테 자네야 말로 무슨 그런 언행을 하는가.?”

오히려 그 젊게 보이는 사람이 호통을 쳤다. 적반하장 격이었다. 50대 초반의 자신한테 저렇게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신이 나보다 훨씬 연장자라고 했소. 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하는지 말해보시오.”

그러자 그는 손계환을 나무그늘 아래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나는 자네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일세. 구태여 나이를 밝히자면 올해로 135세야. 내가 자네를 어린애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믿고 못 믿고는 따지지 말고 우선 내말부터 들어보시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 그가 했던 말은 오히려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다음에 그가 하는 말은 충격이었다. 손계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거울로 비춰보듯 정확히 말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인연생기(因緣生起)였다. 모든 것은 인연따라 일어난다는 의미가 느껴졌다.

손계환은 그의 말을 듣고 지석에 이끌리는 것처럼 그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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