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체질의학 소설> 주야역학

주야역학(晝夜力學) : 밤낮으로 학문에 힘쓴다는 뜻이다.

by 백승헌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16. 끝없는 길을 가는 노정


“동양의학은 기본적으로 스승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법이야.”

사부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중간에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 없으면 아예 배울 수 없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배워도 제대로 깨칠 수 없다는 뜻인가요?”

“그 두 가지 다 해당이 되는 것이야. 그건 절벽을 오르거나 내릴 때 줄 없이는 불가능한 것과 같다네. 맨손으로 내려오다가 떨어지면 바로 저 세상 가는 것과 유사한 거야.”

“어떠한 원리로 그러한 것인가요?”

“의학의 길은 때때로 생과 사의 길목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있어. 생과 사를 사이에 둔 다리에서 환자를 만나야 할 때도 있는 거야. 그런 경우 살릴 수 있는 비전이 없다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뜻이야. 환자가 생명의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면 의사는 줄을 타고 반드시 구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런데 만약 줄이 없고 살릴 수 없다면 큰 낭패가 아니겠는가?”

그는 승학을 보며 한마디 일침을 가했다.

"주야역학을 해야 하는 것이야. 밤낮없이 학문에 힘써야 하네. 의학의 길은 주야역학의 길이라네."

승학은 그의 말을 들으며 전율을 느꼈다.

죽음이 다가오는 느낌이 드는 중병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해지는가? 그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순간 살리는 비전이 없다면 그건 의학의 길이 아닌 것이다.

“자네가 중병에 걸렸을 때를 생각해보게. 생과 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공부가 되어야만 의학의 길을 갈 수 있는 거야. 그것이 쉬울 것 같은가? 아무리 타고난 천재라도 스승 없이 그 비전을 연구하여 완성할 수는 없다네. 서양의학의 내과나 외과, 치과 등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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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서양의학은 대학에서 공부하고 인턴을 하며 전문의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해. 진단은 전기와 기계 공학자들이 만든 의료기 산업으로 해결하지. 또 약은 생화학자들이 만든 제약회사의 매뉴얼이 준비되어 있지. 수술은 의료기 회사의 의료시스템의 보조를 받기 때문이지. 서양의학은 조직적 시스템에 의해서 돌아가지.”

사부는 잠시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다시 말했다.

“동양의학은 그런 대 규모의 산업 시스템이 없다네. 그 대신에 수 천 년 동안의 데이터와 연구가 축적된 비전이 있지. 학교에서 단기간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지. 반드시 비전을 전수해 주는 사부를 만나야만 해. 비법전수라는 특수한 과정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고 최고의 경지로 갈 수 있는 것이야.”

스승의 긴 설명을 듣고서야 승학은 이해를 했다.

“정말 그렇군요.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과 사부를 만나 비법을 전수받는 것은 큰 차이가 있군요.”

“당연하다네. 서양의학은 각종 논문이나 세미나로 지식과 정보를 공유한다네. 하지만 동양의학은 그런 공유를 할 수가 없어. 세계의 각종 무술처럼 유파가 다양하기 때문일세. 수천 년 축적된 비전을 아무에게나 공개하지도 않지. 비인비전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앞에서 설명했지 않는가.”


승학은 심오한 동양의학의 세계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특별한 비법을 전수받아야만 하는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또 소중한 것일수록 정신이 훼손되지 않게 지켜야 한다는 사부의 말에 깊이 공감이 되었다.

승학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사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을 살리는 길을 가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야. 가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죽는 경우가 있지. 불타는 집에 들어가서 사람을 구하고 자신은 못 빠져나오고 죽는 일도 있지 않는가. 그것처럼 사람 살리는 길은 위험한 일이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사부님을 따라가서 공부한 이야기에 그런 깊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일세.”

“사부님, 정말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들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승학은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마음으로 새겨야 할 내용이 많아서 사부가 다시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렸다. 일반 상식이나 지식 너머의 초월적 지식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넘쳤다. 하지만 승학에게 있어 그런 초월적 지식이나 도술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했다. 시골에선 신비한 이야기들이 이미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었다.

“허허 그런가. 그럼 다시 이어서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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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계환은 그분을 따라 소백산에 갔다.

하지만 일반적인 산행과는 차원이 달랐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계곡과 산등성이를 수차례 넘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중병의 환자인데도 그분은 일체의 배려도 말도 없이 앞서 걸었다.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이 손계환은 주저앉았다.

“어르신 더 이상은 걷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참 젊은이가 그리 힘이 없어서야 어딜 쓰겠나.”

그분은 손계환을 보며 주머니를 뒤져 환약 두 알을 꺼내 주며 말했다.

“이것을 천천히 녹여서 삼켜 보게. 살만해질 거야. 힘도 나고 배도 안 고플 것이야.”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주저앉아 있는 상황에서 그분의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르신, 밥도 아니고 조그만 환약 2알을 먹고 힘이 날 수 있나요? 이걸 먹고 배가 안 고프다니, 말이 되나요? 저는 꼼짝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힘이 없습니다.”

“어허, 그런 말 말고 빨리 약을 녹여서 드시고 나서 말하게나.”

믿을 수는 없었지만 우선 그 환약을 녹여서 천천히 음미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작은 환약을 입안에 넣어 녹여 먹자 입안이 화해졌다. 또 뭔가 막힌 혈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없이 환을 녹였다. 그러자 곁에 있는 그분이 웃으며 말했다.

“어떤가? 뭔가 다르지? 그러니까 앞으로 경험해 보기 전에 부정부터 하는 버릇은 없애도록 하게나.”

한참을 알약을 녹여 먹자 손계환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힘이 나고 배고픔이 싹 가셨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벌떡 일어나서 걸을 수 있겠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머니까, 어둡기 전에 빨리 가세나.”



“예, 어르신,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지요?”

그분은 대답 없이 벌떡 일어나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손계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순간에 몸이 가벼워지고 배고픔이 사라지다니,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믿기지 않았다.

“어르신, 앞으로 얼마만큼 더 가야 하나요?”

“이제 거의 다 왔네. 조금만 더 가면 돼.”

손계환은 그 질문을 수없이 하고 다 왔다는 답변을 한 후에야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다. 거의 어둑어둑해서야 큰 바위 아래 거적 대기로 쳐진 바위동굴 앞에 도착한 것이다.

“어르신, 여기서 기거하시는가요?”

“그렇다네. 여긴 워낙 깊은 산속이라 자네는 이제 혼자서 나갈 수도 없는 곳이야. 여기서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야.”

“저는 공부를 하지 않은지가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이젠 머리가 굳어서 공부가 어렵습니다. 그저 여기서 병이나 좀 고치고 싶습니다.”

그분은 손계환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공부하지 않고 병이 고쳐지겠나? 이제 곧 머리가 좋아질 거야. 스스로 병을 고칠 만큼 공부를 하게나.”

그날부터 손계환의 혹독한 수행과 공부가 시작됐다.

깊은 산속 동굴 안은 살림살이도 없었고 음식을 해 먹는 도구도 거의 없었다. 기가 막혔다. 하지만 그다음 날 새벽 4시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수행과 공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루아침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와서 혼자 나갈 수도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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