刻肌削骨(각기삭골) : 살을 에고 뼈를 깎는다는 뜻이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17. 수행과 공부는 혹독할수록 깊어진다.
“너무 춥고 배가 고픕니다.”
깊은 소백산 동굴에서 일주일간을 고통스럽게 보낸 손계환이 참다못해 말했다.
“각기삭골해야 발전이 있는 것이야. 죽기로 각오하고 산을 찾지 않았더냐? 이젠 살고 싶은 게로구나.”
내심을 꿰뚫어 보는 그분의 답변이었다. 손계환은 대답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그는 손계환을 다독이듯 말했다.
“살을 에고 뼈를 깍는 고통도 적응이 되면 괜찮아지는 것이야. 오랫동안 화식에 길들여져서 그럴 것이야. 앞으로 100일이 지나면 적응이 될 것이다.”
꼼짝없이 어두컴컴한 동굴에 갇힌 손계환은 고통스러웠다.
밤이면 산짐승 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는 듯했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분은 밥은 하지 않았다. 처음 온 날 살림도구가 없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면 밥을 먹을 것이라는 기대는 있었다. 그런데 그분은 말없이 줄곧 동굴 벽을 향해 좌선을 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서 손계환이 불만 섞인 말을 하자 비로소 그가 말했다.
“어떤가? 견딜 만 한가? 아니면 처음 맘먹은 것처럼 세상을 하직하고 싶은가?”
“어르신, 제가 춥고 배고픔을 느끼는 것을 보면 살고 싶은 것 같습니다.”
“어허, 이제 살고 싶다고 느끼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야지? 그래 어떻게 살고 싶은가?”
손계환은 일주일간을 멍하니 지내서 달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생전 처음 하는 산속 생활이 낯설었고 밤이 되면 깊은 어둠에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은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병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 와서 몸이 많이 편해진 느낌이 들지 않던가? 몸과 마음이 청정하면 병은 사라지는 법이야. 게다가 그 좋은 약을 먹고 병 걱정부터 하는 게냐?”
“그리 말씀하시니, 좀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인가요?”
“여기는 소백산의 정기가 흐르는 명당일세. 우주의 백금 기운이 맺히는 금계포란형의 명당이야. 보통 환자는 여기서 며칠 기거만 해도 병이 나을 정도로 좋은 곳이라네. 불치병이라고 해도 백금 기운이 서린 명당에서는 저절로 고쳐진다네. 곰곰이 여기 오기 전 자네의 몸과 비교를 해보게나.”
손계환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숨 가쁨과 가슴의 통증, 두통, 불면증, 온몸의 통증들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일주일 내내 배고픔만 생각했다. 속리산의 자살바위 혹은 굶어 죽는 것조차 불사했던 기억이 났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이렇게 빠르게 좋아질 수도 있다는 것인가?
“속으로 참 신기하게 생각이 들 것이야. 속가의 사람들은 화식을 하며 병을 묵혀가며 살기 때문이지. 온갖 질병들은 마음만 먹으면 고칠 수 있는 것이네. 그러나 고치질 않지. 그저 견디면 좋아질 것으로 생각해. 병의 뿌리가 깊어지고 그것으로 인해 죽어가는 것을 모르는 것이야.”
“아. 그렇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지금의 자네 상태는 어떤가? 느끼는 대로 말해 보게.”
“사실 배고픔 때문에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대부분의 증세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여기 와서 조그마한 환만 먹었지요. 그런데 왜 좋아졌을까요?”
“허허, 이런 일이 있나? 그 귀한 오핵환을 주어서 몸이 좋아졌는데도 그것을 못 느꼈는가? 중환자가 밥을 일주일이나 먹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는 것만 해도 신기한 일 아니더냐.”
“예, 확실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지를 알고 싶습니다.”
“그것을 알고 싶다면 자네는 제자 입문식을 하고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 공부를 해야 하네. 어떤가? 수행과 공부는 혹독해야 하네. 목숨을 걸고 공부를 한번 해볼 터인가?”
“그리 하겠습니다. 이왕 죽기로 한 몸 거두어주셨고 저도 다시 살고자 하니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명하신 대로 신명을 다 하겠습니다.”
그날 손계환을 처음 그 어르신의 함자를 알게 되었다. 그의 속세명은 구자서였고 호는 청암이었다. 그는 손계환을 제자로 받아들이며 호를 하사했다. 호를 하사하기 전에 그는 선시를 나직이 읇조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손계환이 그 뜻을 음미하는 동안 그가 말했다.
“이 시를 남긴 분이 고려 후기 고승 나옹 선사일세. 청산은 나를 보고’라는 선시(禪詩)일세. 앞으로 자네는 이 선시처럼 살게나.”
그렇게 해서 다 죽어가는 생명의 손계환은 청산이란 호로 다시 태어났다. 사부인 청암을 모시고 사람 살리는 활인도의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사부의 이야기를 넋 빠진 듯 듣고 있던 승학이 불쑥 말했다.
“사부님의 사부님은 혹시 아직 살아 계신가요?”
“아직 살아계신다네. 참, 나의 사부님을 자네는 사조(師祖)라고 불러야 하네. 사부의 사부를 일컫는 말이지. 큰 문파에서는 장문인의 사부를 그리 불렀다네. 그것이 아니어도 위대한 인물에게는 사조라는 명칭을 붙인다네. 한데, 청암 사부님은 사실 몇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이며 깨달음을 얻은 분이라네. 내가 아는 한 진실로 위대한 분이기도 하다네.”
“아. 그러신가요? "
“그분의 위대성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네. 전국을 바람처럼 돌아다니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셨어. 강원도에는 김 씨, 경상도에는 최 씨, 전라도에는 이 씨 등으로 활동하셨어. 이름이 알려지고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원치 않으셔서 그렇게 활동하셨다네.”
승학은 궁금증이 일어나서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신 연유가 있으신가요?”
“사부님은 단군 의통에서 이 판에 속 하셨다네. 이 판은 음(陰)의 삶을 추구하지. 이치와 원리, 수행을 하며 부와 명예를 추구하지 않지. 사판은 양(陽)의 삶을 추구한다네. 사상체질의 동무 이제마 선생처럼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지. 이제마 선생은 대표적인 사판의 인물이시지.”
“갑자기 동무 이제마 선생이 조사님과 같이 거론되셔서 놀랐습니다. 이 두 분은 관계가 있으신가요?”
“관계가 아주 깊으시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것뿐이야. 그 이야기는 나중에 별도로 해 주겠네.”
그는 다시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사부님은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네.”
“무릇 훌륭한 의사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네. 가장 훌륭한 의사를 심의(心醫)라고 하지. 심의는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서 질병을 치료한다네. 두 번째로 훌륭한 의사를 식의(食醫)라고 한다네. 식의는 음식으로 질병을 다스리지. 세 번째로 훌륭한 의사를 약의(藥醫)라고 한다네. 약의(藥醫)는 오직 약으로 질병을 치료한다네. 그런데 의사라면 반드시 심의(心醫)와 식의(食醫)가 된 연후에 약의(藥醫)가 되어야 한다네. 또 사람 살리는 활인도를 가는 사람은 절대 부와 명예를 추구해선 안 된다네.”
승학은 갑자기 어안이 벙벙해졌다.
전설처럼 들리던 이야기들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사부라는 높은 산에 압도감을 느꼈다. 게다가 거대한 양 줄기의 산맥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그려지며 단군 의통과 활인도가 가야 할 길 역시 엄청나게 다가왔다. 승학은 마치 자신이 폭풍의 한가운데에 들어선 것 같았다. 온몸의 전율과 미세한 파동이 신경선과 세포들 사이에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