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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Nov 15. 2024

7. 통찰과 한 순간의 통정신

열정의 온도 7. 통정신은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이 집중되는 것을 뜻해요.

“왜 그곳에 멈춰서 나를 쳐다보고 계세요.”

진성은 갑자기 어의가 털려버린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알고도 못 본적 딴전을 피운 것이었다. 진성은 그녀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말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 카페 라테를 빨고 있었던 건가요?”

“그래요.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어요. 하지만 그때는 카페 라테의 달콤한 맛을 만끽하려고 하던 순간이었어요.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서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고 말하자 '햇볕을 가리고 있는 대왕의 몸을 좀 비껴주세요.'라고 했다잖아요. 우선은 이 달콤한 카페 라테가 더 중요하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디오게네스까지 인용을 해요? 공원 가는 길이었어요. 우연히 눈에 띈 거죠.”

“그럼 먼저 아는 척을 하면 되잖아요. 왜 그렇게 멈춰서 나를 관찰했어요?”

“..........”

진성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뭐라고 답변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짧은 침묵을 깨트리듯 말했다.

“나도 공원에 가려고 했었어요. 어쩌면 기다렸는지도 몰라요.”          

“언제부터 기다렸어요.”

“그날 섬으로 여행 가자고 말했던 날, 갑자기 집에서 호출이 왔어요. 너무 놀라서 연락을 못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엄마가 뇌졸중으로 운신을 잘 못했어요. 비상상황이 되면 급히 달려가야 해요. 그때까지는 내게 유일하게 세상에 남은 단 하나의 가족이었죠.”

그제 서야 이해가 되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증발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랬군요. 어머님은 괜찮으신가요?”

“그날 임종을 지켜 드리지 못했어요. 너무 죄송하죠. 슬프고 힘든 나날들이었어요.”     

진성은 조용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기다렸어요. 마음 한편으론 그 이후가 늘 궁금했어요.”


진성은 숨김없이 말했다. 

섬으로 가자고 하고선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데이트 약속을 하고선 생까는 것과 유사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 지난 일이에요. 공원으로 함께 가요.”

그녀는 그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태연하게 진성 곁으로 와서 팔짱을 꼈다.

“팔짱은 친한 사이에 끼는 것 아닌가요?”     

진성은 어색하게 느끼며 말했다.

“나는 가끔 남자사람 하고도 팔짱을 껴요. 단지 팔만요. 거기까지만 허용해요. 오늘도 거기까지만 허용할 테니, 염려 말아요.”

진성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재밌네요. 모처럼 유쾌한 일요일입니다. 나는 아무나 선을 넘나들지 않아요. 마치 나를 통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그럼요. 저는 조신한 아가씨예요. 나이는 젊지만 정신적 연령은 선생님과 비슷하거나 위가 될 수도 있어요.”


그녀의 그 말 한마디가 작은 불꽃처럼 튀는 느낌이 들었다.

“통정신이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통정신이 무슨 뜻인가요?”

“통정신은 잡념이 없어지고 정신이 집중되는 것을 뜻해요. 갑자기 한순간에 몰입이 되며 한 곳으로 집중한다는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든다는 말과도 통하는 거죠."

"그래요. 어떤 계기나 순간의 번뜩임으로 몰입이 시작되는 거죠. 깨달음의 순간도, 경이로움도 통정신이 들 때 일어나는 겁니다. 통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면 뜻이 다 그래요. 통심정(通心情)은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을 뜻하고 통사정(通事情)은 남에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의미해요. 통정(通情)은 남녀가 정을 통하는 것을 뜻하죠. 통정신(通精神)은 정신이 통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아주 좋은 의미죠. "

“그래요. 저도 그래요. 지금 통정신이 들었나 봐요. 사실은 어머니 상 치르고 100일이 지난 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여기에서 선생님을 기다렸어요. 숫자를 세면서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진성은 풀리지 않는 퍼즐 조각 하나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또 다른 퍼즐 조각이 떠올랐다. 도대체 왜 매주 일요일마다 여기서 기다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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