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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2. 2024

1. 뉴욕의 가을하늘과 먹물의 향기

존재와 적멸 1.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겠어.


도시 외곽의 산자락에서 차는 멈췄다. 

하늘은 우중충하고 곧 비가 쏟아질 듯했다. 산자락의 키 큰 갈대 잎이 흔들리고 있었다.

차안에는 여인이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젖어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아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둘은 한참이나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여자는 남자를 붙잡으려는 눈빛이었다. 애절한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꼭 가야해요.”

"반드시 가고 싶어.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겠어."

남자는 조용하게 말했다. 그녀는 그를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오래 사용한 연장처럼 그의 손은 익숙했다. 

늘 손을 잡고 다녔던 기억들이 되새김하듯 떠올랐다. 그와 함께 나눴던 대화들은 오래된 녹음 테이프가 되감겨 나오듯 더러는 불쑥 떠올랐다.


그녀는 답답한 듯 자동차 창을 열었다. 

산자락 특유의 공기가 스며 들었다. 솔잎과 여러 수풀들이 훈향이 코끝에 느껴졌다. 가끔은 신경을 깎아 대는 듯 서걱거리는 수풀소리도 들렸다. 그녀는 저 깊은 산속에 구태여 가는 이유를 몰랐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그토록 찾는 진리와 철학이 과연 무엇인가?     

남자는 늘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마치 군인이 총을 매고 다니듯 했다. 군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도 때도 없이 남자는 책을 펼치고 읽었다. 지독한 책중독에 걸린 책벌레 같았다. 그가 왜 그렇게 책에 집착하는지 여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였다. 


그는 늘 진리와 철학을 찾았다. 

의미를 찾았으며 원리를 파고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여도 항상 그랬다. 그는 검은 먹물의 향기를 사랑했다. 때론 책처럼 무감각했지만 그 반대편엔 용광로 같은 감성이 있었다. 여자가 그를 사랑한 이유는 그 점 때문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의식세계에 살고 있었다. 여자는 알 듯 말듯한 경계선에서 살았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공감이 안 되는 지점이었다.

남자는 원리를 늘 찾았다. 진리와 철학이 존재하는 자리엔 원리가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았다. 철저한 현실의 벽을 인식했다. 남자가 뿌리를 파헤칠 때 여자는 벽의 색채를 감상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거나 의미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색채에 진심이었다. 

미국에서 살고 싶어 했다. 뉴욕의 가을 하늘을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그리는 뉴욕의 가을하늘의 색채가 어떤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또 백야가 있는 북유럽의 스웨덴에 가고 싶다고 했다. 또 오로라가 찬연하게 피어오르는 아일랜드로 가고 싶다고도 했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신기하게 생각했다. 색채에 매혹을 느끼는 그녀의 감정이 궁금했다. 남자가 컴컴한 뿌리를 찾아 지층을 파고 들어갈 때 여자는 눈앞에 보이는 색채를 바라보았다. 


여자와 달리 남자는 어두컴컴한 동굴 속의 불빛을 좋아했다. 

바위로 둘러싸인 동굴속의 어둠과 촛불이 어우러진 적막감을 좋아했다. 결국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남자는 산속으로 가려고 온 것이었다.  

여자는 어둠이 색채를 잠식한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두컴컴한 것을 싫어했다. 극단적인 반대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난 것이 신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와 여자는 잘 맞는 구석이 있었다. 절묘한 정반대 축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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