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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3. 2024

4. 첩첩산중으로 가는 이유

존재와 적멸 4. 매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기다릴게요. 

이윽고 서로 깊은 포옹과 입맞춤을 했다. 

시곗바늘이 새벽 2시를 가리키는 것을 보며 침대에 들었다. 그들의 섹스는 메마르며 습관적이었다. 열중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몸은 식어져 있었다.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합체되었지만 정신은 따로 노는 느낌 들었다.       

두 사람은 어둠 속을 더듬고 부유했다. 

하지만 육체의 허망한 몸부림이 사랑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와의 이별을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런 느낌은 없었지만 그들은 오랫동안 서로를 놓지 못했다. 멀리서 새벽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쯤 그녀는 제풀에 떨어졌다. 곤히 잠들었다.


그는 어둠 속에 우두커니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로서도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잠시 동안의 이별도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극심한 공황장애의 후유증이 원인이었다. 그녀는 누군가 잠시만 곁에 없어도 불안해했다.

그런 그녀에게 8개월의 이별은 청천벽력이었다. 그가 없는 세상은 그녀에게 암흑이었다. 

어떤 위로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로서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은 답답증이 가슴을 눌렀다. 알고자 하는 것은 의문은 쌓여만 가고 해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직접 찾아야 할 터였다.

      

그가 어제 일을 떠올릴 때 그녀가 말했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인 걸 알아요. 가세요. 피할 수 없으니까 용감하게 받아들일게요. 죽는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요.”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거야. 8개월의 도시생활은 빨리 흘러가는 거야. 첩첩산중의 하루가 도시에서는 3일 이상의 체감이 되는 거야. 도시 생활로 계산하면 24개월쯤의 시간적 감각이 느껴지게 될 거야.”

그녀는 체념하듯 땅을 보며 말했다.

“말기암 시한부 생명들은 보통 6개월을 못 넘겨요. 수많은 생명들이 그 기간에 세상을 떠나기도 해요. 나는 그중의 한 생명체가 아니길 바라야죠.”

“내가 저 산 위에서 매일 우혜경 씨를 지켜줄게.”

“그래요. 강승문 씨, 강 씨 고집을 어떻게 꺾어요. 매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기다릴게요.


오랜만에 그들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긴 머리에 와인색 스웨터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깨엔 핑크빛 핸드백이 걸려 있었고 검은색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를 스캔하듯 살펴보고 차에서 배낭을 꺼냈다. 간단한 도구와 양식을 넣은 배낭은 배가 터지듯 무거웠다. 짐을 다 짊어지고 그가 말했다.

“이제 갈 거야. 잘 지내고 있어.”

"첩첩산중으로의 입문을 축하해요. 갈망했던 해답을 찾으시길 바래요. 하산을 하실 때는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고 오세요. 내게는 그 안에서 찾은 해답의 열쇄 중 하나를 주세요."

"해답의 열쇄라고?"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눈빛 가득히 담으려고 했다. 


이제 그는 그녀의 곁을 총총히 떠나야 할 시간임을 느꼈다. 

"해답의 열쇄를 찾으면 꼭 줄게."

그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때 맞춰 을씨년스럽게 저녁바람이 불고 있었다. 산기슭의 잎사귀들도 일제히 손을 흔들듯 나부꼈다. 

그는 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어둑해지는 산길은 온갖 산속의 훈향이 섞여 있었다.

길은 험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잠시 스쳐가듯 생각했다.  

'과연 아무도 없는 산속의 동굴에서 살 수 있을까? 내가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승문은 그 이유는 완전히 찾을 수는 없었다. 그것보다는 사전답사를 했지만 산기운이 주는 중압감이 더했다. 

높은 절벽 사이에 위치한 그 동굴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삭막하며 어딘지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적이 완전히 끊겨 있는 산중인데다 누가 죽여도 모를 외딴 산모퉁이였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가야 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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