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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3. 2024

5. 깊은 밤의 별빛과 수풀의 적막감

존재와 적멸 5. 고통의 기억들이 낡은 앨범의 찌든 사진처럼 그려졌다.

불빛이 없는 산속은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승문은 무거운 배낭과 산의 숲이 주는 무게를 동시에 느꼈다. 낮과 달리 밤의 산길은 험했고 때로는 막막했다. 끝을 모를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시생활이 주는 압박감의 나사가 풀렸다. 더 이상 출근을 생각하거나 먹거리, 인간관계 등은 없었다. 

1주일 단위의 계획을 떠올릴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나는 자유야. 나는 첩첩산중에서 유유자적하게 살 것이다.’


승문은 중얼거리듯 혼자 말을 했다.

그러나 조금씩 위로 오를 때마다 불안감이 일어났다. 홀로 야간산행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산비탈에서 미끄러져 벼랑 끝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가파르기로 이름난 첩첩산중으로 가는 길은 그랬다. 

산중턱을 오를 때쯤 승문을 플래시를 켜고 걸었다. 

라이트가 어둠 속을 통째로 긴 터널 속처럼 만들었다. 

빛을 비추는 부위만 밝게 보였고 그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의 벽이었다. 

산등성을 통해 보이는 별빛은 아스라했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인가의 불빛들은 가물가물해졌다. 어둠에 묻힌 수풀은 적막했으나 수많은 생명체들의 숨결이 느껴졌다.     


승문이 동굴 가까이 갈 즈음 온몸에 땀이 흔근했다.

사전답사 차 다녀갔던 낮에 비하면 3배쯤은 힘들었다. 몇 번의 깔딱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감고 돌았다. 플래시가 비추는 앞만을 보았지만 생각은 사방으로 퍼졌다.

유년기의 어두운 들판을 걸어갔던 기억이 났다. 또 갑자기 어린 시절 귀신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했다. 고통의 기억들이 낡은 앨범의 찌든 사진처럼 그려졌다.

혼자 걷는 밤길이 생각으로 가득 찼다. 무려 4시간을 거북걸음으로 걸었지만 시간이 가는 줄을 잘 못 느꼈다. 그런데도 정신은 맑아오기 시작했다.


동굴에 거의 도착했을 때는 새로운 세상에 입문한다는 설렘까지 일었다.     

그러나 동굴의 현실은 차가웠다.

거적때기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퀴퀴한 동굴의 냄새가 풍겼다. 사람이 살지 않은 작은 동굴로 2평 남짓했다. 세 사람이 포개면 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바위들이 비쭉 솟은 부분 때문에 사용면적은 더 좁았다. 승문은 촛불을 켜고 나서야 안도를 했다. 어두운 산길보다는 아늑했다.


승문은 배낭을 풀어서 책과 살림살이를 꺼내놓았다. 

내일부터는 여기서의 삶이 일상이 될 터였다. 바위틈으로 물건을 넣거나 정리를 했다. 그것이 끝나고 나서 승문은 멍해졌다.

'전기도 없고 수돗물도 없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지?'     

가만히 생각하다 승문은 다시 동굴 밖으로 나왔다. 

첩첩산중의 첫날이 실감되었다. 산행을 했던 열기가 식어서 추위가 느껴졌다. 

승문은 동굴이 있는 주변을 천천히 산책했다. 

멀리 은하수가 훤히 보일 정도로 아름답게 보였다. 7부 능선에서 보는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반면에 알 수 없는 두려움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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