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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5. 2024

7. 오래된 기억과 인연의 끈

존재와 적멸 7. 선인과 속인은 엄연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거야.

승문은 산에서 정신 나간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말들이 이해가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생전처음 맞닥뜨린 이상한 상황이었다. 승문은 목례를 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자네, 어디로 가는가? 나와 얘기를 좀 하세나.”

그는 연상으로 보였지만 많은 나이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말투는 한참이나 어린 사람을 대하듯 했다. 참다못해 승문이 말했다.

“나이도 많지 않은 분이 초면에 왜 자꾸 하대를 하시죠?”     


그는 고개가 꺾일 듯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는 아직 어린애 아닌가? 어른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젊으신 분이 왜 자꾸 그러시죠?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어허, 이 사람 참 어찌 그리 사람 보는 눈이 없는고? 알겠네. 내가 자세히 설명해 줄 테니, 나를 따라오게나.”

그는 그 말을 하고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승문은 영문을 모르고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가 가는 길은 위험한 벼랑길이었다. 내려다보면 아찔했다. 그는 태연하게 휘적휘적 잘 걸어갔다. 승문은 그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어디를 가시는 거죠?”

“죽을 각오를 하고 입산한 거 아닌가? 내가 앞장서서 가니까 따라오시게. 이제 다 왔네.”


그는 그 말을 하고도 한참 후에 멈췄다.

“여기로 들어오시게나.”

천연요새처럼 형성된 동굴이었다. 벼랑 사이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다. 외부에서 보이지도 않고 찾아오기도 힘든 곳이었다. 승문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좋은 향내가 났고 안온했다. 제법 넓고 바닥은 평탄했으며 뷰는 특급호텔 급이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울임이 느껴졌다. 그가 승문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자네를 오래오래 기다렸네. 자네 역시 늘 산으로 오고 싶었을 거야. 내가 여기에서 자네를 불렀으니, 그런 마음이 들었던 거야.”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누구이시고 저는 또 누굽니까?”

“나는 자네의 스승일세. 오래된 기억과 질긴 인연의 끈이 자네와 나를 잇고 있는 것이네. 자네는 간절히 도를 구하면서도 아주 현실적인 학자 아닌가?”     


승문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는 정곡을 찔렀다. 어떻게 그가 나를 이렇게 정확히 알까? 승문은 이해가 안 되어 생각에 잠겼다. 그가 승문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해가 되네. 선인과 속인은 엄연히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거야. 선인(仙人)은 산에 사는 사람이고 속인(俗人)은 계곡아래의 평지에 사는 사람이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앞으로 알게 될 걸세. 자네는 240일을 선인이 되려고 산을 오르지 않았는가.

승문은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아무도 모르는 자신의 계획을 알까? 왠지 그는 자신을 전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승문은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동굴에 들어선 순간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기시감도 이상했다. 모든 것이 익숙하면서도 편안했다. 순간적으로 승문의 뇌리에서 의문은 사라지고 깊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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