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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6. 2024

8.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과 악몽

존재와 적멸 8.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네.

그는 자신을 청산거사라고 했다.

맑고 순수한 그의 눈빛에는 티클 하나 없었다. 그가 하는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힘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승문은 그에게 이끌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그의 호를 듣는 순간 승문은 그 글귀가 떠올랐다.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청산처럼'

그는 평범하게 보이면서도 특이했고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뿜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맞닥뜨릴 수 있는 평범함과 특별함이 공존했다. 그가 참으로 푸르런 산, 청산과 같다고 잠시 생각했다.

“자네의 생각이 맞네. 산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있다네.

그의 독심술에 다시 한번 놀라며 승문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저의 스승님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렇겠지만 나중에 천천히 깨닫게 될 것일세.”  

   

그는 잔잔하게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켰다.

승문은 다시 혼란을 느꼈다. 이 상황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자세히 설명을 하지도 않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승문도 따라서 좌정을 하고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좌정하고 명산을 하자 기울임이 전해졌다. 온몸의 기혈이 빠르게 움직이고 의식이 깊어지며 맑아졌다. 낯선 산속의 동굴보다 고향집 같은 푸근함이 느껴졌다. 

승문은 차츰 깊은 의식의 바닥으로 내려앉고 있었다. 

심연의 의식에 이르른 순간, 아뜩한 기억 속에서 죽어가는 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치는 고통의 울부짖음이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엄마, 아파. 너무 아파서 죽을 것 같아.”

13살 누나는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인 것 같았다.

몇 시간째 계속되는 엄청난 고통이었다.

“조금만 참 거라. 날 밝으면 큰 병원에 데리고 갈 거다. 조금만 참아.”

“너무 아파서 못 참겠어. 살려줘 엄마.”

그녀는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했다. 승문은 그녀의 곁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나 고통스럽게 울부짖었기 때문에 통증이 전해지는 정도였다.

그 울음소리는 밤새 내내 계속되었다. 


승문이 잠시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어난 것은 괴이한 소리 때문이었다.

“끄어어, 끄억, 끄어윽, 끄억”

둔탁한 나무로 흙벽을 긁어내는 듯한 소리였다. 

승문은 그 소리를 견디다 못해 벌떡 일어났다. 어디서 소리가 나오는지를 살폈다. 그 소리는 누나의 목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가까이 가서 누나를 살피다가 승문은 깜짝 놀랐다. 그녀의 눈빛이 풀린 상태로 좌우로 구르고 있었다. 목에서는 더욱 탁한 소리가 났다. 너무 놀란 승문은 급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새벽 일찍 병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큰 일어났어. 누나의 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아이고 큰 일 났네. 아이고 어쩌니.”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방으로 들어오자 말자 대성통곡을 했다. 이미 수많은 죽음을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밖에서 떠날 준비를 하던 아버지도 급히 뛰어왔다. 

"아이고 이런 변고가 있나. 어찌 된 거고, 왜 이라노."

그제야 일어난 형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승문은 왜 통곡을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무엇인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부모님의 통곡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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