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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02. 2024

3. 만남과 이별의 간극에 놓은 것들

존재와 적멸 3. 적멸 그 이후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들은 날씨가 어둑어둑 해서야 차 밖으로 나왔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들은 산기슭의 오솔길을 말없이 걸었다. 인적이 없는 길이어서 을씨년스러웠다. 그녀가 다시 무겁게 입을 뗐다.

“8개월 후에는 다시 내려오는 거죠?”

“당연하지. 나는 내가 말한 그대로를 반드시 지켜. 그건 잘 알잖아.”

“난 어떻게 견뎌야 하죠?”

“공부를 하면 되잖아. 미술을 다시 공부해, 대학원에 가도 되잖아.”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래요. 무엇을 하든 8개월 후 12월 1일에 여기서 기다릴게요.”

“알았어. 만약 그 때 여기 오지 않으면 실종이라고 생각할게.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이해할게. 서로의 갈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겠지.”

“그래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다시 끈끈한 침묵이 흘렀다.      


진성은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함께 약간 술이 취한 채로 그녀의 오피스텔까지 걸었다. 그녀의 오피스텔은 약간 후미진 곳에 있었다. 그런데다 비상등이 나간 건지 3층 복도는 지하 창고의 입구처럼 어두웠다.

그녀가 욕실에서 먼저 샤워를 했다. 그 동안 그는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그림자마저 어둡게 보였다. 검푸른 하늘은 떠 다니는 별빛이 더러 보였다. 

삭막하고 침울한 밤이었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며 소파에 앉았다.    

 

그는 잠시 그 곁에서 대화를 나눴다. 

“나는 내일 산속의 동굴로 갈 거야.”

“꼭 가야겠어요?”

“오래 전부터 말했잖아. 나는 뿌리를 파보고 싶어. 무엇이 진리이고 원리인지를 알고 싶어.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 않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진리나 원리가 있다면 그것을 파헤치고 싶어. 그뿐이야.”

“그것이 그리도 중요한 가요?”

“너무나 중요해, 적멸 그 이후의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씻고 오세요.”

그가 샤워를 하고 다시 쇼파에 왔을 때 그녀는 커피를 준비했다.

“커피를 마셔도 잘 주무시니까, 마셔요. 저는 장미차를 마실까 해요.”

그는 다시 그녀를 보며 말했다.

“우리 긴 인생에서 8개월은 짧아. 그 시간을 나는 또 다른 세상에서 보내고 싶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어. 이해해 주면 좋겠어.”

그녀는 대답 대신에 침묵을 지켰다. 그녀는 만남과 이별의 간극을 생각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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