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2. 가치의 문제는 다양하고 상대적인 거야.
여자는 여전히 남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잡힌 여자는 포로처럼 가만히 있었다. 마치 밤이 오길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산속은 저녁 5시만 되어도 어두워졌다.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다. 출발할 마음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여자는 서서히 체념했다. 그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감정이 흔들렸다.
그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무서웠다.
한 가지 다행스런 일은 비록 떨어져도 안심이 되는 일이 있었다. 다른 여자를 만날 일은 없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그 하나만으로도 지극히 안도가 되었다.
그래도 남자가 240일을 산속에서 내려오지 않는다면 그건 실종이었다.
그는 실종되는 방식으로 그녀와 헤어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이별의 의식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는 느낌과 비슷했다. 어쩌면 이별의 예약같기도 했다.
이 한 번의 단절이 그들을 영영 격리할 수도 있었다.
“정말 240일을 하산하지 않으시려는 건가요?”
“맞아. 그렇게 하고 싶어. 내가 정한 조건부의 시간이야.”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가요?”
“나는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가 넘쳐나고 있어. 짧은 시간내에 그 모든 것을 공부할 수는 없어. 나는 뿌리를 보고 싶어.”
“그 뿌리라는 것이 우리 관계보다 더 중요한 가요?”
“가치의 문제는 다양하고 상대적인 거야. 나는 내가 알고자 하는 원리를 파헤치고 싶어. 운명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은 열망과 감정은 다른 관계야. 간절히 나는 그 뿌리를 찾아보려고 하는 거야.”
그는 완강했다.
애초부터 그는 240일을 주장했다. 8달 기간 동안 산속에서 연구하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녀로서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갑자기 우주의 미아가 된 것처럼 아뜩한 시간대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유달리 깊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단정하고 명확했으며 약간 도전적인 표정을 지녔다. 그는 어떤 남자라도 긴장하게 할만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도도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지적인 이미지의 그녀는 견고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강했다. 그 어떤 것도 그를 좌절시키지 못할 만큼 이미 고통을 겪었고 진리를 향한 열정은 뜨거웠다.
“그 기간 동안 동굴 속에서 보내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그는 잠시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곤 말했다.
“어쩌면 달라질 것은 없어. 단지 나는 나 자신과 대면하고 싶어. 나를 격리시켜 내가 속한 세계를 알아보고 운명을 연구하고 싶어. 그뿐이야.”
그의 눈빛은 너무나 단호해서 그녀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떠올렸다.
인간 강승문 29세, 나는 산속의 동굴로 간다. 절대적 침묵과 적막 속으로 들어가서 8개월을 보낼 것이다. 그 어떤 이유나 명분도 없다.
그저 간절히 꿈꾸던 열망을 실행한다.
깊은 산 동굴 속에서 촛불을 응시하며 참선을 하며 공부를 할 것이다. 내가 알고자 의문을 탐구할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식의 전부였다. 존재와 적멸은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들 두사람은 미래가 불투명했다. 완전히 분리되거나 어쩌면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