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상주역과 체질의학의 통합으로 지혜를 찾는다.
이렇게 복잡한 이미지도 과연 괘상이 있을까? 모든 상에는 반드시 괘상이 있다.
주역의 마지막 괘는 화수미제(未濟卦)이다.
불(水) 위에 놓인 불(火)의 형상으로, 불은 위로 타오르고 물은 아래로 흐르니 서로 엇갈린다. 완결되지 않은 세상의 모습, 즉 ‘아직 이루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나 바로 이 미완의 상태 속에 주역의 마지막 메시지가 숨어 있다. 모든 지혜는 완결이 아니라 ‘끊임없는 탐구의 과정’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이다.
화수미제괘의 초효는 “濡其尾, 无攸利(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움이 없다)”라 하였다.
아직 강을 다 건너지 못했음을 뜻한다. 주역은 우리에게 “지혜는 도달한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건너는 자의 마음에서 생긴다”라고 일깨운다. 완성의 집착이 아니라, 시행착오 속에서의 통찰이 곧 지혜의 씨앗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도 비슷한 통찰을 얻는다.
예컨대, 어떤 환자가 만성 피로와 소화 불량을 호소한다고 하자. 겉으로는 위장의 문제 같으나, 진맥을 해보면 간기(肝氣)의 울결이 그 근원임을 발견한다. 병의 실체는 하나가 아니라 관계의 얽힘 속에 있다. 이때 의사는 단일 처방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두고 사고해야 한다. 마치 학자들이 브레인스토밍으로 서로의 생각을 부딪쳐 새로운 관점을 찾듯이 말이다. 지혜란 정답의 소유가 아니다.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깨달음의 흐름’이다. 또한 끊임없는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로 나타난다.
주역의 괘상은 늘 상반된 두 힘의 만남으로 이루어진다.
화수미제괘는 불(火)과 물(水)이 어긋나 있다. 그러나 그 어긋남이 통합의 단초가 된다. 서로 다른 성질이 대화할 때 비로소 새로운 질서가 태어난다. 주역은 이를 ‘통합적 조화’로 읽는다. 한의학의 임상도 이와 같다. 한의학은 인체를 음양의 네트워크로 본다. 간과 심, 비와 폐, 신은 각각의 기능을 가지되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따라서 장부의 불균형은 음양의 올바른 교류와 대화로 균형점을 잡는 것이다.
예컨대 불면증 환자가 있다면, 단순히 수면을 돕는 약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火)이 지나치게 떠 있으면, 신수(水)가 이를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때 의사는 화(火)를 내리고 수(水)를 돕는 약재를 배합해 음양을 통합시킨다. 이 조화의 사고는 주역의 괘상과 닮았다. 미제는 아직 완전한 화합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 속에 ‘통합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통합은 언제나 미완 속에서 자란다.
주역의 괘들은 64번째 화수미제괘로 끝난다.
하지만 그 마지막 괘인 미제는 다시 처음의 *건(乾)*으로 돌아가려는 문을 연다. 주역의 구조는 닫혀 있지 않다. 마치 원형의 고리처럼, 하나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이는 ‘지혜의 순환 구조’이다. 현대의 브레인스토밍도 같은 원리 위에 있다. 누군가의 생각이 완전하지 않기에, 서로의 아이디어가 충돌하고 융합되며 새로운 해답이 태어난다. 브레인스토밍을 강하게 하면 지혜가 열리는 이유도 그와 같다.
체질의학에서는 이런 순환적 사고가 임상에서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만성 통증 환자를 치료할 때 단일한 접근으로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침, 뜸, 한약, 심리 요법, 생활 습관 교정이 서로 순환하며 보완될 때 비로소 통합적 치유가 가능하다. 이 순환의 원리는 미제괘의 마지막 효사에 잘 드러난다. “有孚于食, 貞吉(믿음을 가지고 음식을 취하니, 바름으로 길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되, 믿음과 바른 마음으로 임하면 길하다는 뜻이다. 지혜란 모든 답을 이미 가진 상태가 아니라, 끝나지 않은 탐구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이다.
베트남에서 호주인 70대 노인이 당뇨병을 염려하여 내원했다.
그는 오랜 당뇨병으로 인해 팔다리에 냉감이 심하고 수면도 얕았다. 서양의학적 관리로는 수치가 안정되었으나, 피로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당뇨병은 수치관리가 최선이 아닙니다. 기혈순환과 항상성의 안정이 중요합니다.” 괘상주역으로는 화수미제괘가 나왔다. 당연히 당뇨병을 나타내는 괘상으로 심장의 화기와 신장의 수기가 부정의 상태였다.
처방은 맥산통합침법으로 사암침법과 신경침, 기경팔맥침을 사용했다. 맥산처방은 신수(水)를 보하고 심화(火)를 내려주는 처방으로 숙지황(熟地黃)과 산조인(酸棗仁), 황련(黃連)을 중심으로 한 특효제를 복용하게 했다. 그 결과 그는 체내의 음양 균형을 잡았다. 두 달 후 노인은 말했다. “이제야 몸이 나답게 움직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제괘의 지혜이다. 겉으로는 해결되지 않은 듯 보여도, 그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과 외면이 새로 정렬된다. 완결이 아니라 ‘지속되는 통합’이 곧 치유요, 지혜의 본질인 것이다.
주역의 마지막 괘는 끝이 아니라 질문이다.
“너는 완결을 원하는가, 아니면 통합을 배워가는가?” 한의학적 인간관은 이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몸과 마음, 자연과 인간은 하나의 순환 고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지혜란, 서로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지혜는 결론이 아니라 과정이며, 통합은 고정이 아니라 순환이다. 주역이 말하는 최종의 가르침은 ‘미완 속의 완전함’, 한의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치료는 ‘분리 속의 통합’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브레인스토밍이라 부르는 사고의 방식은, 그 옛날 미제괘가 이미 예언한 인간 지혜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끝나지 않은 대화 속에서, 지혜는 스스로를 갱신한다.